나이로비에서 워킹 사파리 하러 가기 - ②
'나이바샤'는 거대한 호수인 나이바샤 호수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그리고 나이로비에서 나이바샤까지는 대략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마타투가 출발했으니 이제 나이바샤까지 가기만 한다면 워킹 사파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올라탄 마타투는 겉은 비교적 멀쩡해 보였는데 사람을 최대한 많이 태워야 해서 그런지 좌석이 꽤 비좁았다. 그래도 인도에서 탔던 콩나물시루 승합차(7인승에 15명쯤 탔던) 정도는 아니어서 나름대로 만족하며 갈 정도는 되었다.
마타투는 나이로비 시내를 빠져나가 북쪽으로 북쪽으로 내달렸다. 가는 길에서 볼 수 있었던 멋진 산과 호수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문득 '어라 이상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바샤 시내에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주변 풍경이 여전히 도시나 마을의 그것이 아니다? 지도 어플을 켜서 보니 우리를 태운 차량이 시내에 들어가지 않고 외곽도로를 달리며 나이바샤를 옆으로 두고 지금 막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나이로비에서 버스를 알려주었던 가이드(?) 아저씨가 이 차량이 나이바샤 다이렉트 버스라고 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버스회사 직원도 나이바샤 시티로 간다고 단언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나이바샤를 지나 다른 도시까지 쭉 달려가는 상황에, 우린 다급하게 운전기사에게 나이바샤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말을 들은 운전기사는 흠칫 놀라며 곧장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길가에 차를 세운다. 그러고는 나이바샤 시내로 들어가 내려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지금 여기서 내리라고 하고는, 여기서 시내가 가깝다고 하고는 다시 차에 올라탄다. '응? 뭐?' 하는 생각에 울컥했지만, 지도를 보니 시내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이기는 하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지만, 뭐 이것조차 익숙해진 케냐 여행 후반부였기에 그냥 내리기로 했다. 우리를 버리고(?) 꽁무니를 빼는 마타투를 향해 나지막하게 욕 한마디를 하고는 돌아섰다.
뭐 어쨌든 일단 나이바샤에 오기는 왔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지 뭐, 하는 생각으로 지도를 보며 방향을 잡고 그냥 걸었다. 마을 외곽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마을 중심가로 가서 <생츄어리 팜(Sanctuary Farm)>으로 가는 마타투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나이바샤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시골이었는데, 그래도 도시(city)가 맞기는 한지 큰 슈퍼마켓도 있고 시장과 상점들도 있어서 필요한 건 다 있었다. 걸어가는 도중 배가 고팠고, 마침 나이바스(케냐의 슈퍼마켓 체인)가 나왔고, 그래서 우린 점심 식사를 대신할 샌드위치와 먹을 것을 샀다. 아침에 마타투 소동 때문에 나이바샤에 다다른 시각이 이미 점심시간도 한참 지나서였기 때문에, 식당에 들러서 따로 식사를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 20분쯤 걸었을까 싶자 드디어 마타투를 탈 수 있는 곳, 그러니까 버스회사 오피스들이 줄지어 있고 이런저런 마타투들이 길가에 줄줄이 세워져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츄어리 팜>에 가려면 어떤 마타투를 타야 하냐고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대답은 해주지 않고 본인의 마타투 회사를 홍보하기에만 바쁘다. 나이로비 갈 때 꼭 자기 회사 버스를 타라며, 바로 저기에 오피스가 있으니까 가서 예약을 도와주겠다며. 우리는 시간이 더 이상 지체되는 건 원치 않아서, 결국 <생츄어리 팜>까지는 우버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금방 도착한 우버 기사는 우리가 차에 타자마자 추가요금을 따로 더 달라고 요구했다. 가는 거리가 머니까 돈을 더 달란다. '뭐래.' 하면서 됐다고, 다른 차 타겠다고 하면서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운전기사가 내리지 말라고 소리치더니 그냥 가겠단다.
마타투에 이어서 우버까지 오늘은 일진이 좀 사나운 날인가 보다. 기분은 이미 상했고, 이제 워킹 사파리건 뭐건 피곤하다는 생각만 들고, 나이로비로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또 이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든 동물들은 보고 가야겠다는 오기 같은 것도 생겼다. 나이바샤 시내에서 출발해 15분쯤 달리자, <생츄어리 팜> 정문 앞에 드디어 도착을 했다. 아침 8시에 숙소에서 나와서 <생츄어리 팜> 정문 앞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2시. 예상했던 것에 비한다면 진짜 기나긴 여정이었다.
정문에서 매표소 직원에게 입장료(1인당 1,000실링)를 내고 들어갔다. 크레센트 섬(Crescent Island)에 들어간다고 하면 입장료는 무료로 해주는 것 같았지만, 우린 공원만 볼 거니까. 그리고 입구를 지나자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하나 싶어서 멈칫 하자, 매표소 직원이 그냥 길처럼 여겨지는 곳을 따라 아무렇게나 쭉 둘러보면 된다고 설명 아닌 설명을 해주었다. 우린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고, 잠시 후 넓은 초원에 무리 지어 있는 임팔라들을 만나게 되었다. 마치 컴퓨터 배경화면 같은 풍경이 눈앞에 계속 펼쳐졌고, 그 안에서 우리는 그저 감탄사만 연발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겪었던 일들이 한순간에 다 잊히고 그저 임팔라 무리가 조용히 풀을 뜯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생츄어리 팜>은 공원이라기보다는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는 그냥 넓은 초원에 가까웠고, 호수에 있는 크레센트 섬에 들어가는 길 말고는 딱히 다른 길도 없었다.
풀숲을 헤쳐가며 동물들이 있는 곳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처음 만난 임팔라 무리는 천천히 걷는 우리의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우리와 일정한 거리만큼 물러나면서 계속 풀을 뜯는다. 좀 더 지나자, 이번에는 얼룩말 무리가 보이고, 그다음에는 한군데 모여서 쉬는 물소 무리를 만나고, 혼자 돌아다니는 누까지 만나게 되었다. 초식동물들이라서 다들 경계심이 크기도 하고, 또 이방인인 우리가 동물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서 되도록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는데도 그 감동은 한없이 컸다. 맑은 하늘 아래 넓은 초원 위에서 여유롭게 거닐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레센트 섬에 들어가는 선착장까지 갔더니 이름 모를 새들의 모습과 호수의 멋진 풍경까지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거나, 아니면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면 크레센트 섬까지 보트를 타고 들어가서, 하마도 보고 섬 안에서도 워킹 사파리를 한다지만, 우린 여기 <생츄어리 팜>만 걸어다닌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화창한 하늘, 맑은 햇살과 푸른 대초원에서 만난 동물들이 보여준 풍경은, 우리에게 정말이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생츄어리 팜(Sanctuary Farm)
Sanctuary Farm, Naivasha, 케냐
: 입장료 1인당 1,000실링
- 생츄어리 팜 - 나이바샤 우버
: 편도 약 410실링
- 나이바샤 → 나이로비 마타투
Kasese Sacco
7CJP+G35, Kenyatta Ave, Naivasha, 케냐
: 1인당 250실링
추가 팁: 나이바샤에서 나이로비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나이바샤에서 출발하는 마타투는 그다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요금도 더 저렴했다. 다만 나이로비로 돌아오는 시각이 좀 늦는 바람에 시내에서 퇴근길에 휘말려 차가 엄청나게 많이 밀렸다. 그리고 마타투는 따로 정류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자기가 내리고 싶을 때 운전기사에게 말을 하면 바로 근처에 곧바로 차를 세워서 내려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잘 몰랐던 우리는 숙소 앞을 지나 극한의 트래픽 잼을 경험하면서 종점인 River Rd. 에서 내렸다.(아무 데서나 내려도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