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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멀리 떠났다 돌아왔을 때야 비로소 깨닫는다.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by 안초연
당신들이 히말라야라고 부르고 있는
그 산은 사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안나푸르나의 트레킹 난도는, 한라산이나 지리산보다 낮은 편이다. 그렇지만 ABC 트레킹이 쉽지 않은 까닭은


첫째, 산 너머 산이라는 것과

둘째, 고산병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포카라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여름에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의 눈이 몽땅 녹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눈 덮인 산을 보려면 건기가 적기였다. 또 하나 내가 간과했던 것이 있는데 그건 준비물이었다. 우기 때 트레킹을 하려면 패딩이나 등산바지보다 절실한 것이 바로 거머리를 죽일 굵은소금이라나. 당연히 나에게는 패딩도, 등산화도, 굵은소금도 없었다.

맨 몸으로 나야풀에서부터 차근차근 걸었다. 산을 넘으면 그 보다 조금 더 높은 산이 나왔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구간도 이어졌다. 우기의 산은 유난히 안개가 잦다고 했다.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 모두 자욱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고, 그런 까닭에 나는 자주 넘어졌다.


포터와 동행은 혹시라도 내가 고산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나도 내가 염려되었다. 동행은 산을 뛰어다닐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았고, 포터는 10년 이상 포터 일을 할 만큼 노련했다. 나는 자주 뒤처졌고, 올라가는 일도, 내려가는 일도 모두 지겨워졌다. 그쯤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포터는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지금부터는 고산병과의 싸움이라고. 혹시라도 감기 기운과 비슷하게 으슬으슬하거나, 구토 기운이 있다면, 자신에게 말을 하라며 신발끈을 묶었다. 수건을 탈탈 털면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사이에는 롯지가 없어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말을 들으니, 괜스레 괜찮지 않은 것도 모르고 괜찮아하는 걸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런 걱정을 은연중에 짊어지고,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한 호흡에 올랐다. 안개가 자욱했고, 키가 낮은 꽃들은 향이 진했다. 우리는 말없이 오르고 올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고산병의 낌새를 발 빠르게 알아차리기 위해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롯지에 도착하니 몸이 시렸다.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도 보였다. 눈 속에 눈이 낀 사장님은 레몬티를 내어왔다. 저 눈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갔을까. 다시 보지 못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레몬티를 마지막으로 롯지 뒤의 산을 올라간 사람들 중 몇몇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몸을 녹인 뒤, 나는 롯지 뒤편을 산책했다. 뒷마당에는 거대한 돌무덤이 있었다. 무덤에는 정복하기 위해 올라갔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작은 제단도 마련돼 있었다. 그들은 대개 유명인이었고 산에 대해 무지한 나조차도 여러 차례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을까. 저 위에는 대체 무엇이 있길래. 그리고 뒤를 돌아 올라온 길들을 바라보았다. 굽이치는 산자락마다 흐린 구름이 걸려있었다. 너무 아찔한 높이가 아닌가. 한국에서 가장 높다는 산보다 1000m 높은 산을 올랐는데도, 마음은 단정해지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 포터는 A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로 내려갔다. 고산병이라고 했다. 동행은 방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내가 벗어준 후리스를 입고 밤새도록 고산병을 견뎠다고 했다.


나는 너무나도 안녕했다. 내가 안녕한 게 이상했다. 아픈 지 오래돼서 아픈지도 모르고 견디고 있는 건 아닐까. 아픈 건 언제나 나의 몫이었는데, 내가 아프지 않으니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아픈 시늉이라도 해야 하나, 하고 말이다.

아무리 멀리 떠난다 해도
마음이 그곳에 있으면
영영 이곳에 도달할 수 없는데,
괜찮을 수 있을까.

히말라야는 올라가는데 4일, 내려가는데 2일이 걸린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단 수월했지만, 넘어지지 않도록 허벅지에 힘을 단단히 주어야 했다. 그동안의 단련된 힘이 나를 지지했다. 모든 상처들이 온 힘을 다해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매 순간 펄럭이는 너의 죽음, 너의 죽음, 너의 죽음

내려가는 동안은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더듬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 그 자리에 충실히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됐을까. 내려가는 동안 나는 이따금 명왕성까지 다녀왔다가, 여기가 어디지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발을 내디뎠다. 고작 한 걸음 내딛는 일이 한 세기가 걸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내려가는 길에 깨달았다.


S가 죽은 뒤, 나는 사람들과 너무 많은 시차를 가지게 되었다. 내 손을 잡으려면, 누군가는 날짜변경선을 지나 한 시절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해야 했다. 그때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손을 잡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번번이 부재중이었다.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괜찮았다. 그렇게 나는 산을 오르내리는 마음으로 꼬박 2년을 떠돌았고, 2년을 더 방황했으며, 2019년 이제야 여의도에 있는 그럭저럭 번듯한 회사에 취업을 했다.


2015년, 죽고 싶은 마음으로 천천히 산을 타던 나는 요즘, 9호선 급행열차를 타면서 조금씩 자라는 중이다. 방송국 막내에서 직장인으로 환승하는 날들. 결국 행복은 찾지 못했으며, 너를 잊지도 못했다. 우리가 그려온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상상도 못 할 내일에 적응하는 중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9호선 급행열차를 견딜 수 있는 작은 힘이 생겼다. 그건, 마음이 여기에 있으면 어디에 가도 내가 찾는 무엇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산을 타는 마음으로 이번 생을 계속해서 올라가 본다. 이따금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히말라야라고 불렀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의 난도가, 한라산이나 지리산보다 낮았던 걸 알았을 때의 어떤 배신감을 기억하면서


첫째, 산 너머 산이라는 것과

둘째, 예측 불가능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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