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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결핍과 불안을 해소해줄 타인을 만드는 일 없이

인류애가 사라지는 마음에 대하여

by 안초연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다. 우리가 만난 게 벌써 한 계절이나 지났다며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던 중, 누군가 물었다.


"초연이는 그 후로 아무도 없어?" 엥? 살펴보니 그 자리에서 연애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였다. "그냥 잠깐 만나는 사람 조차 없어?"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그냥 잠깐이고 나발'이고 한 계절 간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집-일-집-일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새삼스러워졌다. "아니, 없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아무도 없다고.


그 후의 대화는 늘 그렇듯 비슷한 레퍼토리였다. 너 정도면 예쁜 편이고, 직업도 나쁘지 않고, 배울만큼 배웠고. 그래서 이상형은 무엇이며 결국엔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소개팅이라면 이미 진절머리가 나는 바 있지만, 그 자리에서는 또 꺄르륵 웃으면서 한 없이 가벼운 말들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영혼은 없었다. 그 일들을 겪는 동안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N번방 속의 봄

N번방을 마주하면서 나는 남자를 옹호하는 세상에게 완전히 질려버렸다. 가해자의 서사는 궁금한 적도 없었지만, 가해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근거로 가득 찬 기사와 방송도 끔찍했다. 무엇보다 하루에도 100번은 더 마주쳤을 것처럼 생긴 남자들이 N번방의 가해자라 생각하니, 온 세상이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다. N번방과 관련된 기사는 정말이지 하나같이 참담했다. 참담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사건의 면면을 끝의 끝까지 마주했다.


아주 긴 시간 나는 무너져 내렸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사소했다. 대통령 청원을 하고, 지인들에게 청원을 독려하고, 사건을 퍼 나르고, 'N번방이 뭔데? 너무 복잡해서 모르겠어.'라는 사람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게 전부였다. 그러는 동안 헐레벌떡 봄이 와버렸다. 밖에는 흐드러지게 꽃이 폈고, 세상은 다시 '바야흐로 연애의 계절'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생각했다. 이런 세상에서 과연 누굴 만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조주빈과 관련된 TMI가 경쟁적으로 쏟아졌고, 기어이 조주빈이 평소 인터넷에 쓴 글까지 읽게 되었다. 물론 그걸 읽은 후에는 더욱 참담해졌다. 인터넷 상에서 그는 정의롭고, 현명하며 용기 있는 청년이었다. 미투를 지지하고 여성 혐오를 혐오하는 이 시대의 몇 없는 남성을 흉내 내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N번방의 선두에 있었다니. 더 이상 남자를 믿을 수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고, 하루 이틀이 지나고 그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N번방 이전에는 소라넷,
그 이전에는 일베,
그 이전에도 수 없이 많은 가해가 있었음에도

사실 N번방이 나온 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N번방 이전에는 소라넷, 그 이전에는 일베가 있었고 일베 이전에도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이런 사건이 나오는 까닭은 이와 관련된 명확한 법규가 존재하지 않는 것, 이를 처벌하고 판단하는 사람 또한 남성이라는 사실이라는 것 또한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과 다른 지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소라넷이 한창 시끄러울 때에도, 일베가 한창 시끄러울 때에도, 나는 계속해서 남자 친구를 갈망했고 갈구했다. 그때는 그랬다.


몰카 속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잠자리를 가졌고, 자주 가스 라이팅을 당해가면서도, 결국 바람이 나 떠나가는 남자 친구에게 '너는 정말 쓰레기야'라고 울면서 말하면서도. 그럼에도 번번이 남자를 소개받았고 끝내 사귀었다. 그랬던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여자다운 여자라는 프레임

아주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가수를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 열두 살 정도였나. 성관계라는 단어가 무슨 단어인지도 모를 나이였고, 어른들이 손가락질을 하니 따라서 손가락질을 했던 기억이 있다. 심각하게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만큼, 남들보다 아주 더디게 성장했던 나는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야 '그 비디오가 그 비디오'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러던 2009년, 우연히 여성학 수업을 듣게 된 나는 이 세상이 불공평하고 조금은 이상한 모양새로 굴러간다는 걸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그 시절엔 어른들도 이런 식으로 말했다. "어디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여자는 여자다워야 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안에서는 또 다른 내가 말을 걸어왔다. 아니, 뭐 혼자 한 것도 아닌데 왜 여자만 욕을 먹어야 해? 남자도 조신하면 안 돼? 몰카 찍는 놈이 쓰레기 아닌가?


그렇지만 그걸 입 밖에 내놓는 순간 '예민한 애' 또는 '별난 애'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 시절에는 그게 속상해, 어렸던 나는 점점 입을 다물어버리곤 했었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초연이는 남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었나.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 그 후로 남자 친구를 사귀는 일에 몰두했는지도 모르겠다. 움직일 때마다 자꾸만 말아 올라가는 치마를 입고, 다리가 가장 예뻐 보인다는 7cm 하이힐을 신고 학교를 뛰어다닌 적도 있었지.


그리하여 사랑받는 여자, 예쁘고 똑똑하고, 정의롭고 의리가 있지만 개념도 있는 여자. 그런 프레임을 스스로에게 씌우며 만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낯선 남자들은 자주 나를 좋아했고, 모임에 가면 처음 본 사람들이 "초연 씨는 정말 예쁘게 생기셨어요."라는 칭찬을 해댔고, 그건 곧 나의 기쁨이 되었다. 더 예뻐지기 위해 필러를 맞았고, 살을 빼기 위해 카복시와 지방분해주사를 맞기더 했다. 관리한 더 예뻐졌고 더 인기가 많아졌고, 남자들이 더 연락을 해댔고 그렇게 어영부영 이십 대 중반이 지나갔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러니 이 모든 원흉은 의미 없는 인정 욕구였다. 하지만 인정 욕구 이전에, 인정을 갈구하게 만드는 세상이 문제였다. 우선 오래 연애하지 않는 여자를 두고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프레임 씌우는 세상이 문제였다. 나아가 남자에게 맞서는 여자는 드세다고 프레임 씌우는 세상이 문제였다. 또 여자에게 여자다움을 강요하는 세상이 문제였다. 그리고 된장녀, 김치녀, 개념녀와 같은 불쾌한 말을 당연한 듯 말하는 세상이 문제였다. 항상 맞고, 틀리고, 성적이 매겨지는 학교를 12년 간 다닌 우리는 '틀린 선택'을 하는 일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아닌걸 아니라고 하면 틀렸다고 하는 세상이 잘못한 거지. 그래서 TK의 아주 보수적인 집안 출신인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


예쁘다는 말이 최고의 찬사가 되었던 시절,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 사진을 자랑처럼 SNS에 올리던 어떤 시절,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은 남자지,라고 생각하며 남자 친구의 바람을 눈 감으려 했던 어떤 시절이 아주 느리게 지나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병신이었구나.


그래.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결국 N번방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가해자를 욕하지 않고 피해자를 욕하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뒤통수를 세게 맞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겨우 그들의 인형 정도였던 건가. 헨리 입센의 「인형의 집」이라는 희곡을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으면서, 왜 기출 변형된 사회에서는 그걸 적용하지 못했을까. 병신이었구나. 병신이 맞았구나. 이래서 페미니즘을 깨닫고 실천하는 건 지능 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구나. 그렇게 겨우 알을 깨고 나오자 눈 앞이 캄캄해져서 아찔해졌다.

자신의 감정적 결핍과 불안을 해소해 줄
타인을 만드는 일 없이

결국 친구가 주선해준다는 소개팅을 거절하면서 생각했다. 우리나라 택시 대수만큼 많은 26만 명의 N번방 관전자들. 그리고 군대용 여자라고 전역 하자마자 나를 차 버린 구남친과, 삼자대면을 하게 만든 바람난 구남친, 그 외에도 뭐 기타 등등의 온갖 별다를 것 없는 남자들. 이번 소개팅남이라고 뭐가 다를까? 다를 수는 있을까. 그를 만나면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아니겠지. 그러니 이쯤 했으면 그만할 때도 되지 않을까. 그들은 언제나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해결해주지 못했고, 마음을 해결하는 건 늘 나의 몫이었다.


무엇보다 한 작가님이 말했듯, 내 마음을 데리고 살 사람은 내가 분명한 데 왜 우리는 자꾸만 확인받고 인정받길 원하는가. 이런 세상에서. 이렇게 공평하지 못한 세상에서. 남성을 위해 축조된 사회에서 '내가 누린 기쁨'의 대부분은 '그들에게 허락된 기쁨'이라고 이제는 단언할 수 있겠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었던 세상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마음을 찾아오는 일이 아닐까. 이 세상에서 내가 잃은 것들을 하나씩 더듬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잃은 것, 앞으로 내가 잃을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내가 잃을지 모르는 건 몇 명의 남자 사람들, 하지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내가 잃을 건 나 자신이 되겠지.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그러니 나는 두려워하지 말고 조금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이상한 프레임에 지지 말아야 한다. 어떤 프레임을 씌우든, N번방보다 이상하고 기괴할 수는 없으므로 괜찮다.


앞으로도 나는 나의 감정적 결핍과 불안을 해소해 줄 타인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봄에 썼다. 그리고 계속되는 N번방의 충격 때문에 어떤 글도 쓰지 못하고 두 계절이 지났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정말 누군가 만나지 않고 올해를 온전히 보낼 수 있을까’ 의심이 들어 이 글을 발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을, 이제는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남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사회를 혐오한다. N번방의 프레임에 갇혀 남자를 일반화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이런 사회에서 여성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작고 비루하며, 스스로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걸 상기시키고 싶을 뿐이다.


N번방이 겨우 몇 계절 전이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 계절의 경악, 충격, 실망, 참담. 서서히 사라지는 인류애. 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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