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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Sep 04. 2024

이름을 묻다.


나는 현관에서 바삐 먼저 집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알차게 보낸 오전 시간 덕에 집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환기도 시켜서 현관에 디퓨저 향이 싱그럽다. 이정도면 갑작스럽게 누구를 초대해도 부끄러울 지경은 아니다.

“들어오세요.”

“아니. 그냥 가는 게 좋겠어요.” 얼떨결에 따라 들어온 진수엄마가 신발을 벗지 않는다. 나는 무시하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결국 진수엄마가 집안으로 들어온다. 

“점심 하려던 참인데. 먹고 가요. 나 손 빨라서 금방해요.”

나는 뼛속까지 시원한 김냉맥을 한 캔 꺼내 손에 쥐어준다. 진수네 집 앞 복도에서 텅터러텅텅! 소리를 냈던 그 초록색 맥주캔이다. 


일단 냄비에 물을 올린다. 모든 요리는 물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물이 끓는 사이 재료 준비를 해야 시간이 절약된다. 해감 된 바지락을 박박 씻고 관자도 물에 한번 헹군다. 그 사이 물이 끓으면 파스타면과 올리브오일 두어 방울을 넣는다. 시간은 8분. 나중에 소스랑 같이 더 익힐 거니까 너무 익으면 퍼진다.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 바퀴 두르고 다진 마늘을 한 스푼 넣고 불을 켠다. 오일이 차가운 상태에서 서서히 볶아줘야 마늘향이 더 진해진다. 마늘이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아 반 스푼 더 넣는다. 왜? 좋아하니까. 한국인은 마늘의 민족이니까. 매콤함을 위해 페퍼론치노...를 넣으면 좋지만 오늘은 없으니까 청량고추를 송송 썰어 넣는다. 이러나저러나 매콤하면 그만이다.


오늘 마실 화이트와인을 전동오프너를 사용해 개봉한다. 해산물엔 화이트와인. 이건 그냥 교과서다. 지금 마실 것은 아니고 바지락의 잡내 제거를 위해 넣을 것이다. 그래서 와인을 소주잔에 한잔만 조심히 따르고 다시 닫는다. 당연히 잠깐이지만 진공스토퍼를 사용해 푸쉭푸쉭 공기를 빼낸다. 언제나 최고의 맛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 


바지락을 마늘을 볶던 팬에 투하하고 소주잔 와인을 붓고 뚜껑을 덮는다. 바지락이 입을 벌린다. 바지락에서 물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소스가 만들어진다. 간도 필요 없다. 조개에서 나오는 짭짤한 바닷물이 간이다. 그래서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오늘의 메뉴는 봉골레 알리오올리오다.


치이-각!! 거실에서 진수엄마가 맥주캔 따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이때까지 망설이다가 딴 거겠지. 나는 모른 척 요리를 이어간다. 


바지락이 입을 벌리고 어느 정도 익으면 뚜껑을 연다. 구수한 올리브 오일과 마늘의 향이 한국과 이태리 중간 그 어디쯤인 듯하다. 이제 파스타면이 다 익으면 그대로 건져내 팬에 투하한다. 면수도 한 스푼 넣고 볶으며 졸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냉동관자를 넣고 같이 볶는다. 관자는 오래 익히면 질겨진다. 딱 색깔이 변할 정도만. 마블링 좋은 소고기랑 비슷한 원리다. 


오늘은 손님이 왔으니 특별히 더 예쁜 파스타 접시를 두 개 꺼낸다. 비록 이케아지만 심플하고 널찍해서 파스타 담기 제격이다. 돌돌 담고 바지락과 관자를 공평하게 담는다. 팬을 기울여 소스도 양쪽에 나눠 담는다.


나는 항공샷을 찍으려다 멈칫한다. 와인잔이 두 개, 파스타도 두 개, 항상 하나였는데 살짝 어색해서 화각을 좀 줄여 한 접시만 찍는다. 목이 긴 와인 잔도 꺼낸다. 혼자 있을 때는 설거지가 용이한 동그란 볼 잔을 더 선호하는데 오늘은 손님이 있으니 목이 긴 잔을 꺼내본다. 

“앉으세요.”

그 사이 진수엄마는 맥주 한 캔을 싹 비웠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 벗은 모습은 거의 처음 본 것 같다. 생각보다 어려 보인다. 나는 와인을 반쯤 따라준다. 

“먹어요. 나 요리 꽤 해요.”

맥주 한 캔을 마신 진수엄마는 고분고분하다. 파스타면을 돌돌 말고 포크 끝에 관자를 콕 찍어 입에 넣는다. 

“정말. 맛있네요.”

나도 한입 먹는다. 내가 만들었지만 팔아도 될 정도다. 신선한 바지락이 한몫했다. 가볍고 달지 않은 차가운 와인이 청량하게 식도를 싹 씻어준다. 

진수엄마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마시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어디 갔다 왔어요?” 나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말을 건넨다. 

“친정에요.”

“아, 좋았겠다. 친정 어디에요?”

“강원도요.”

“와. 좋은 데네요. 저 강원도 제일 좋아해요.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대화가 이어지질 않는다. 나는 그냥 입 다물고 먹기로 한다. 이 여자는 정말 누구랑도 말을 섞기 싫은가. 나는 바지락 속살을 빼낸다. 생물 바지락이 부드럽고 쫄깃하다.

진수엄마는 입을 닫고 와인을 다시 마신다. 이미 바닥이 났다. 이거 굉장하네. 나는 살짝 긴장해서 와인을 따른다. 진수엄마는 술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게 아니라 정말 물처럼 마시고 있다. 내가 한잔 먹는 동안 벌써 세 잔째다. 진수엄마는 다시 와인 한잔을 그대로 털어 넣는다. 이정도면 그냥 병째 마셔도 되겠다. 말없이 그릇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이제 입을 열만큼 취기가 돈 것일까. 와인 한 병이 바닥을 보일 때 쯤 진수엄마가 입을 연다. 

“원래 그렇게 다 친절해요?”

“네?”

“항상 웃고 다니고. 시원이 엄마는. 시원이도 똑똑하고. 남편이랑도 항상 보면 사이좋고. 엄마들이랑도 잘 사귀고. 인사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집도 깨끗하고. 다 좋네요.”

이것은 칭찬인가, 비꼼인가. 분간이 잘 되지 않아서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 그 보다는 와인 병에 집중한다. 안되겠다. 이러다가 내 와인 진수엄마가 다 먹을 것 같다. 경쟁적으로 와인을 한 번에 털어 넣고 다시 따른다. 

“부러워요.” 진수엄마가 와인 잔을 보며 말한다. 표정을 보니 다행히 칭찬이었다. 나는 일어서서 화이트 와인을 하나 더 꺼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얘기나 들어보자.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다 알아요. 시어머니한테 빌붙어서 사는 남편이랑 며느리. 찍소리도 못하고 새벽에 나가서 일 하고. 아마 우리 집 맨날 싸우는 거 다른 집에서도 다 들릴걸요? 그거 갖고도 얘기들 하겠지. 진수는 놀고 싶은데 엄마 때문에 놀이터도 못나간다. 그런 말 나오는 것도 알아요. 어머님도 내가 못 마땅하겠죠. 맨날 피죽도 못 먹은 양 삐쩍 꼴았다고. 남편도..”

진수엄마는 술술술 말을 하다가 아차 싶은지 입을 닫는다. 

“왜요. 더 해봐요.”

“제가 별 얘기를 다하네요. 술 마셔서 그래요.”

“마스크. 술 냄새 때문에 쓰는 거죠?” 

“눈치 챘어요?”

“나도 가끔 그러니까.”

나도 그러니까. 이 마술 같은 말은 진수엄마를 조금 누그러뜨린다. 바짝 선 날이 뭉퉁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시원 아빠는 안 싫어해요? 낮에 술 마시는 거?”

“그걸 왜 들켜요.”

나는 와인 잔을 들고 씨익 웃는다. 

진수엄마는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얼굴이다. 어리석은 중생이여. 오른손에 든 술잔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키친드렁커라는 말 알아요?” 나는 묻는다.

“처음 들어봤지만 알 것 같네요. 저 같은 사람인가요.” 

“뭐 좋게 보는 사람 별로 없겠죠. 하지만 왜요. 담배는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술은 내 간에게만 피해를 주는데.” 

나의 논리에 진수엄마는 고개를 끄덕인다. 

“육아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먹는 것도 아니고, 건강 생각하면서 안주도 거의 만들어 먹고, 밖에 나가서 소주 한 병에 육천원씩 주고 먹는 것 보다 집에서 천오백원 주고 먹고. 이 와인도 와인바에서 먹으면 오만원이에요. 나 행복마트에서 만오천구백원에 사왔어요. 이렇게 가정 경제를 생각하면서 마시고.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도 모르게 먹어요.”

나의 농담같은 진담에 진수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나는 다 해당이 안 되네요. 육아에 지장도 있고. 안주도 그냥 있는 거나 대충 주워 먹고. 싸우고. 남편도 알고. 시어머니도 알고. 이제는 시원엄마도 알게 됐네요.”

술잔을 채우기가 무섭게 사라진다. 잔에 구멍이라도 났나.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 쭈그러진 모습에 점점 화가 치밀기 시작한다. 진수엄마는 가야겠다고 결심했는지 일어난다. 

“오늘 고마웠어요. 나중에 와인 하나 사다드릴게요.”

니가 한 병 반은 먹었어. 이 여자야. 두 병 사와.

“앉아요.”

“네?”

“앉으라고.”

갑작스런 나의 어투에 잔뜩 쫀 진수엄마는 조심스레 다시 식탁의자에 앉는다. 

“몇 살이에요.”

“저... 89....”

“나는 85에요. 말 편하게 할게. 진수엄마.” 나는 와인잔의 와인을 마시지는 않고 코를 박고 숨을 깊게 들이 쉰다. 달콤한 과실의 향이 코로 깊이 들어온다. 알코올 성분이 코의 점막을 자극해 살짝 기분 좋게 따갑다. 나는 잔을 내리고 말한다. 

“진수엄마.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술이 욕을 먹는 거야. 술을 먹고 운전하는 게 술 잘못이야? 술 먹고 운전하는 사람이 잘못이지. 낮에 부엌에서 술마시는 게 술 잘못이야? 술 먹고 자기 할 일 잘못하는 사람이 잘못이지. 나는 한 끼에 맛있는 술을 먹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살아. 술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집안일도 하고, 일도 하고, 엄마도 해. 저 여자는 술 먹어서 저래. 저 여자는 술 취해서 저래. 그런 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 완벽한 키친드렁커가 되기 위해서.”


나도 무슨 정신에 퍼부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진수엄마 속도에 경쟁적으로 술을 마시다가 좀 취한 듯 하다. 감히 키친드렁커를 욕 먹이고 부끄러워  하는 저 여자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고 싶었다. 내가 가꿔온 완벽한 길에 그녀가 만취해서 빈대떡을 부쳐놓은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마구 쏟아 붓고는 진수엄마를 보니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헉.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너무 심했나.

“아니. 울라고 한 소리는 아니에요. 나는..” 

진수엄마는 갑자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엉엉. 시원이도 이제는 저렇게 엉엉은 울지 않는데.. 어린아이처럼 운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휴지를 건넨다. 이래서 내가 혼자 마시는 걸 좋아한다. 윤희는 코를 팽 풀고는 나를 본다. 조금 민망한 얼굴의 나를 보며 진수엄마가 시원하다는 듯 웃음을 보인다. 

“언니.”

“어.. 응..”

“이름이 뭐에요?”


내 이름. 지금까지 쓰는 동안 내 이름을 독자들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내 이름을 말할 일이 없었다. 나는 시원엄마. 시원이를 낳기 전부터 알던 사람들은 나에게 이름을 물을 일 없고, 시원이를 낳고 난 이후에 알게 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시원엄마, 시원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와 관련된 사람들이니까. 병원 데스크에서 내 이름이 불리면 가끔 생경할 때도 있다. 

나는. 시원엄마. 

“이정은.”

“정은언니. 나도 알려줘요. 완벽한 키친드렁커가 되는 방법.”

나는 진수엄마를 본다. 이것은 아까와는 다른 눈이다. 술에 취한 눈이 아니다. 반짝이는 눈에 배움의 열의가 느껴진다. 나는 와인 잔에 와인을 따른다. 남은 건 진수엄마의 잔에도 탈탈 털어준다. 


“너는 이름이 뭐야.”

“장윤희에요.”

“일단 술 좀 천천히 먹자. 윤희야.”


챙.

얇은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맑게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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