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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토마토 Jul 16. 2018

미니멀 라이프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지금 당장 쓰지 않는 물건 이더라도 언젠간 쓸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방구석에 던져 놓는 게 내 특기이다. 얼마나 내가 물건을 못 버리냐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쓰던 물체 주머니를 중학생이 돼서야 겨우 버렸다. 물체 주머니를 그렇게 좋아하거나 애정 하지도 않았는데도 버리지 못해 책상 서랍 맨 아래에 오랜 시간 보관을 했다. 그건 아마 내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것들에 대한 미련을 쉬이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쌓여있는 책들, 한 번도 쓰지 않은 텀블러, 맥도날드 해피밀 상품으로 받은 원피스 피규어, 여행에서 사 온 기념품, 살쪄서 못 입는 옷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내 방은 나랑 닮았다. 이미 나와 인연이 끝난 물건들을 미련스럽게 버리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는 내 방은 나를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물건을 위한 공간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물건을 버리고 정리를 하는 일이 쉬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좁은 나의 자취방은 늘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겨우 누울 수 있는 이불 위의 공간만이 온전히 나의 휴식을 위한 장소가 되었다. 


물건으로 가득 찬 방처럼, 내 마음도 오래된 감정들이 겹겹이 쌓아져 포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날 지치게 만드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좀 정리를 해야 내가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을 텐데, 회사를 다니는 나는 내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내 마음을 돌보는 일, 나를 돌보는 일, 행복에 집중하는 일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나의 우선순위는 이번 달 실적, 다음 달 실적, 거래처와 같은 것들이었고 일을 위한 회사를 위한 일들을 처리하는데 모든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해야 했다. 그 소모의 대가가 월급이라고 생각했다. 내 영혼과, 내 삶은 한 달마다 들어오는 고정적인 월급을 위해 존재했다. 이번 달 실적 걱정으로 가득 찬 나의 마음은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 없었다. 회사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의 우선순위는 변하지 않았고 삶은 회사를 위해 굴러갔다. 


외국에서 오는 손님을 픽업하기 위해서 퇴근하고 운전을 해서 인천공항까지 갔었다. 호텔에 차를 주차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넘었다. 주말에 외부 손님을 위한 음식점을 미리 가보라고 했다. 그 비용은 비용 처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상사가 사적인 택배 심부름을 시켰다. 물론 택배비는 받지 못했다.  새벽 1시까지 불필요한 야근을 했다. 상사가 내 억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알겠습니다"를 여러 번 다시 말해보라고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사무실에서 매번 골프 연습을 하던 상사가 영업부 직원들은 무식하고 능력이 없다고 폭언을 했다. 그 폭언의 대상에는 내가 존경하는 선배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술을 마시라고 강요받아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서 토했다. 그리고 다시 회식 자리로 돌아왔다. 주말 야유회를 강제로 참석했다.


이러한 일들이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있었음에도 내 우선순위는 여전히 회사였다. 나는 중요하다 생각해 미쳐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조금씩 용기를 내서 그것들을 버리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이지만 경력을 쌓으면 언젠간 쓸 일이 있겠지. 다시는 하기 싫은 일이지만 이 일을 버리기는 무서우니까 가지고 있자. 상처받는 말을 듣고 부당한 대우를 당했지만 월급이 필요하니 버텨야지. 이러한 감정들과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아직도 방에는 물건들이 많다. 책을 좀 정리해야 하는데 좀처럼 책은 버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예전보다 내 방은 넓어졌고 쾌적해졌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미니멀 라이프가 삶의 옵션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욕심이 많아 그렇게 살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아직도 귀여운 인형을 보면 살까 말까 고민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들에게서 벗어나 조금 여유를 가지고 내 삶을 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비워야 채워지는 부분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를 무겁게 했던 것들을 비워내려고 한다. 그렇게 내 삶이 조금 더 가벼워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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