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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있었다' 시를 선물받았습니다

by 글쓰는 민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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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읽은 아이가 시를 선물했습니다.

안희연 시인의 '불이 있었다'를

태어나서 가장 정성껏 쓴 글씨로 보내주었습니다.

시집 한 권 통째로 읽기 수업을 하며

'그대에게 보내는 시'를 받은 적이 있지만

덩치가 나보다 1.5배는 더 큰 남학생의

'그대'가 된 것은 처음이라 마음이 화끈거립니다.


어떤 사연인지 몰라도

며칠 학교를 빠진 아이에게

첫 시간에 고른 시집을 다시 건네주며

천천히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봐

하고 말해준 것뿐인데

부끄러운 선물입니다.


시인의 시도 좋았지만

이 시를 여러 번 읽고 느끼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이 넓어졌다는 그 말이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될 거란 생각에

한없이 나른해졌습니다.



불이 있었다

- 안희연


그는 날이 제법 차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금 외롭다고도


오늘은 불을 피워야지

그는 마른 장작을 모아다 불을 피웠다


불아 피어나라 불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불을

꿈꾸었다


삼키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

태우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


이런 곳에도 집이 있었군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호주머니 속 언 손을 꺼내면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손금이 뒤섞이는 줄도 모르고


해와 달이 애틋하게 서로를 배웅하고

울타리 너머 잡풀이 자라고

떠돌이 개가 제 영혼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가

내 안에서 죽은 나를 도닥이다 잠드는


불은 꺼진 지 오래이건만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

불은 조금도 꺼지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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