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애란 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 중에서
선배를 만난 건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그때 나는 너무 많은 사람, 몹시 나쁜 공기, 엄청 많은 상품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물론 교정의 초목과 잘 식은 봄밤 공기는 가슴을 떨리게 하기 충분했다.
- 김애란 단편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 중에서
'잘 식은 봄밤 공기' 이 소설에서 이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봄밤 공기' 앞에 작가가 무심한 듯 툭 던져놓은 수식어가 '잘 식은'이라니! '봄밤 공기'가 '잘 식은'을 만나자, 한 공기 윤기 나는 쌀밥이 되었다. 입안에 침이 고였고 몸안의 다른 감각도 깨어났다. 그래서 살맛도 났다.
선선하면서도 약간 훈훈한 봄날의 밤공기를 마실 때면 이 표현을 떠올리겠지. 더 기분 좋게 봄밤의 공기를 마시며 "오늘 밤의 공기도 잘 식었네" 하고 혼잣말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내 영혼의 살을 찌울 것이다.
김애란 작가의 문장은 참 맛있다. 슬픔도 외로움도 설렘도 모두 저마다의 향기를 입고 소리를 내며 빛을 발한다. 소설집 「비행운」 에 실려 있는 단편,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군침을 돌게 했던 문장을 더 소개하고 싶다.
숨은 그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광합성을 하는 사람에게는 광합성의 빛이, 전자파를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전자파의 빛이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나는 '고맙다'는 글자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만 훑었다.
'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사물에 영원히 달라붙어 버리는 것 같아요.
언젠가 최대한 멀리 나가려 도움닫기 해 올라탄 그네 위에서, 터질 듯한 가슴을 안고 깨달았더랬다. '자란다는 것, 기분 좋은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