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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Feb 15. 2018

가족같은 회사, 그런데 가족끼리 왜이래?

여기가 가'족'같은 회사인가요?



얼마 전, 영국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다 우연히 한국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 내 표정과 달리 동료들의 표정들은 매우 심각했다.


새벽에 나가서 어둑어둑할때 쯤에야 들어오는 평일근무의 일상, 모든 관계에 수직을 매기는 것이 당연한 근로 환경, 직장상사의 답.정.너 강요로 인한 회식, 처음부터 거절할 수 없게 핸드메이드된 동료의 업무 부탁. 쓸데없이 사적인 공간을 파고드는 동료의 난감한 질문 세례 등... 유럽의 근로환경에서 나고 자란 그들의 눈에 이런 한국사회가 얼마나 워킹데드급 잔혹 픽션같은 일일까 생각하니 그들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가만히 듣고있던 그들은 내 이야기가 끝나자 물었다.



넌 그럴동안 아무 이야기도 안한거야?


그렇다. 난 아무 이야기를 안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였다. 마치 검은색 바탕의 도화지에 노란색 점을 찍는 것처럼. 다수의 비상식 속에 상식은 쓸데없이 눈에 튀는 정직함일뿐이었다. 내가 어떤 반발이나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면 결국 그 손해는 내가 오롯이 받게 되기 때문이다.


갑을관계가 어디에나 얽혀있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 물결을 고작 나라는 개인이 거스를 순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연어이기보단, 내가 좋던 싫던 남들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는 멸치 정도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었다. 넓은 바다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존재인, 그래서 아무 결정 또한 내릴 수 없는 멸치 말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짤. 우리가 넵을 많이 쓰는 이유.



요즘 현대인에게 유행이라는 넵병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사가 어떤 부탁을 하든 하급 말단은 넵~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병. 그렇게 예스맨들의 리그에서 나만 놉! 이라고 단호하게 외칠 수 없었던 나는 모든 회사의 회식과 일터에 끌려다니곤 했다. 싫은 업무 떠넘기기도, 성과 가로채기도, 잠잘 시간도 없는 날의 회식 강요까지도 나는 모든 것에 대해 내 의지에 반해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가족같은 회사. 하지만 가족끼리 왜이래?


지금 생각하면 ‘내게 꼭 그래야만 속이 후련했냐!!!!!!’ 라고 그들의 멱살이라도 잡으며 묻고 싶다. 가족같이 아끼고 대우한다면서, 명절에 나오는 샴푸세트 정도가 회사가 내게 선사하는 것 중 최고의 복지이자 보상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꼭 다 가져가야만 했냐!!!!!!!!!!!!!!!! 영화 '해바라기'



인턴 때는 정규직 전환을 빌미로 최저 시급에 겨우 커트라인을 맞춘 열정페이를 강요하더니. 정규직이 되고 나면 야근 수당이나 제대로 된 휴가도 없이 날 부려먹었다. (고생 끝에 얻은 휴가 날에 끊임없이 파일 보내달라 연락하던 상사가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제일 환장하는 대목은 그 모든 부당함을 알면서도 찍소리 못하는 사회의 분위기였다. 우린 모두 애사심이 넘치는 가족이니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부려먹어도 된다는 그 암묵적인 분위기가 날 괴롭게 했다.


아들 같아서 부려먹고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요즘 갑질 관련 뉴스에 많이 등장하는 권력자들의 최애 변명이 이따위인걸 보면 '서로를 가족같이 여기자'는 말이 나의 예전 직장에서만 유행했던 것이 아닌가 보다. 다들 누군가의 부모가 되고 싶어 안달난 세상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말이 현대사회에 탄생한 제일 똥같은 소리들 중 2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독보적인 1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은 왠만한 헛소리론 범접할 수 없는 레벨이다. 응용 및 심화과정으로 1위와 2위를 합치면, '아들같아서 부려먹고 딸같아서 성희롱 하지만 아프면 청춘이라서 그런거니 당연한거다' 라는 뜻이다.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성희롱에 시달리는 여주인공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


영국에 와서 나는 두번째 회사로 이직을 했고 여기서 일한지 어느덧 1년 가까이 접어들고 있다. 지금의 회사에 이직하기 직전에 일했던 나의 첫번째 회사를 기억하면 꽤 추억이 크다.


사실 회사를 떠나며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였다. 이전에 한국에서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을 할때면 ‘아디오스! 다들 영원히 이젠 다시 보지 말자!' 혹은 '농담으로라도 한번쯤 사무실에 놀러오란 말을 꺼낸다면 지금 당신을 부숴버릴테야’ 같은 마음을 담은 눈빛과 함께 작별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달랐다. 그들과 작별하던 순간, 정말 미숫가루를 한 사발을 들이킨 듯 텁텁한 감정이 밀려오며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동료 스타일리스트들, 컴맹인 나 때문에 매번 한사코 달려와줬던 IT 팀의 친구들, 항상 아침마다 담소를 나눴던 경비팀 아저씨들까지. 이별에 대한 슬픔과 함께 그동안 함께해줘서 고마웠다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진심으로 내 직장 동료를 그리워할 수 있겠다 싶은 기분. 도대체 이유가 뭘까. 나는 한국 회사에서 못된 사람들만 만났던걸까? 내가 잘못된 회사들을 다니기만 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그냥 감정 따윈 없는 무정한 사람이였나? 갖은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게 아니였다.



눈 오는 날의 출근, 영국 2017



내가 영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받은 최고의 복지는 '칼퇴'였다. 일단 업무시간의 시작과 종료가 칼같이 지켜져 직장에서 내 일상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것이 아니니 회사와 동료들이 지긋지긋해지지 않았다. 예전처럼 잘 시간도 부족한데 회식자리까지 강요당하는 강압적 문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내가 진심으로 즐기고 싶을 때만 사적인 이벤트에 참석할 수 있었다.


절대 팀이 감당하지 못할 과중한 업무는 내려오지 않았고, 그러기에 휴가내는 문제로 서로의 눈치를 보는 일, 남에게 자신의 일을 떠맡기는 부당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근무시간이 끝나면 상사든 동료든 업무에 대한 연락을 일절 하지 않기에 예전엔 내 일상이나 다름 없었던 '카톡 지옥'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모든 현상의 공통점은 내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여건, 그리고 내 개인적 의사를 남과 상관 없이 충분히 전달 할 수 있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환경이 뒷받침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말을 함부로 갖다 붙이며 을의 입장인 사람들의 바운더리를 파괴하고 부려먹는 환경과는 달리, 서로의 사적인 영역을 존중했다. 또한 전체의 방침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눈치를 주는 것 대신, 의견을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잡혀 있었기 때문에 정말 왠만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서로를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었다.





개인차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가족 같은 동료사이를 원하지 않는다. 이십년을 넘게 서로 모르고 산 생판 남들에게 갑자기 일상의 7할을 부대끼고 살며 회사를 가족같이 여기라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가족이지 않으면서 가족같음을 강요하는 것은 누구나 겪어야 할 보통의 일이 아니다.


나는 동료를 사랑으로 대하고 싶다. 하지만 사랑이란건 여유라는 공간이 있어야 존재한다. 자신을 챙길 수 있는 범위, 그 공간이 생길 때 나를 넘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무조건 가깝게 지내지 않는 것 처럼, 회사에도 선이 필요하다. 그 선을 지우고 항상 서로에게 가깝기만 했던 때, 그때와 비교하자면 차라리 난 지금의 동료들이 낫다. 딱 적정선이 있는 동료들. 그냥 무조건 가'족'같은 동료들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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