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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by 시니

내가 자아를 처음 느낀 것은 국민학교 1학년 5반 안세웅선생님반이었을 때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작가도 국민학교 1학년 때 비 오는 날 친구들과 함께 비를 피하던 중에 자아를 느꼈다고 얘기해서 같은 시기라 깜짝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었다. 물론 나이는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시상식에서의 수수한 한강 작가는 누구보다도 빛났고, 그녀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품격이 부러워서 억지로라도 나도 거기 앉고 싶어졌다. 한강 작가가 자아에 관하여 얘기할 땐 나도 그전부터 떠올려져 있던 생각이 닮아있어 괜스레 덩달아 우쭐해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경우는 이 날이었다.

같은 반이었던 이은형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말수가 적고 낯가림이 심했던 나에 비하여 은형이는 말도 잘하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은형이네 집은 여인숙을 하고 있었다. 여인숙이라는 곳을 처음 따라가 보았는데 일반 주택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오히려 맹숭했다. 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앉아서 은형이는 얘기를 했다. 은형이는 이런 말을 했다.

"내 이름은 인형이 아니고 은형이야. 인형이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지."

등의 서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하는 은형이를 보면서

'아,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니구나. 은형이도 생각을 하는구나. 그럼 앞집 경희도 생각을 하겠구나. 옆짝 윤호도 생각이라는 걸 하겠구나. 누구에게나 생각의 방, 마음의 방이 존재하는구나. 세상은 내가 중심이고 나한테만 마음이 있고 다른 사람은 나를 둘러쌓고 있는 존재인 줄만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구나. 모든 사람들에게 생각이라는 거, 마음이라는 거가있는 거였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존재니 그런 어려운 말을 생각한 거는 아니고 그런 류의 생각을 했다는 뜻이다. 주고받는, 아니 주로 듣는 얘기 속에서 깨달았는데 그때의 느낌이 신기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여 속이 메슥거리고 약간의 구토가 날 것 같기도 한 기분이었다. 세상이라는 큰 덩어리에서 아주 아주 작은 한 조각을 무심코 깨달은 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리막길에 나름 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세상은 과연 무얼까?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사람들의 생각을 안다는 게 나하고는 어떤 관련을 가져오는 걸까? 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날 입었던 은형이의 남색 체크 원피스, 야무진 입매의 웃는 얼굴, 통통한 볼살, 동그란 바가지머리, 툇마루에 쏟아진 햇살이 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이날 난 커다란 망치로 세상을 연 날인게 분명하다.

은형이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면서 살고 있을까?

그날 내가 나의 자아를 깨달은 날인 걸 여태 모르고 어디선가 살고 있겠지.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을 많이 관찰하게 되었다. 물론 내 행동을 더 조심하게 되었다. 내가 깨달은 사실을 다른 사람도 깨달았다면 서로 관찰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날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요즘에 들어서는 이 세상의 중심은 나이고 내 의도를 기반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8세 전 생각으로 돌아간 것 같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존재하지않으면 세상도 존재하지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존중하면서 나의 의도를 펼치는 날을 보내야겠다.

오늘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을 중심으로 오늘도 잘 살아야겠다.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을 어렸을 적 친구 은형이도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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