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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내고 싶으시면 다른 사람 찾으시죠

by 시니

이렇게 명쾌한 사람을

잠깐이라도 보았으니 난 행운아다.

144번 시내버스 세 번째 의자에 앉아서 집으로 가는 밤이었다.

교대역 부근 버스 정류장에서

몇 사람을 태우고는

앞문을 닫은 후

출발을 몇 발자국 했다.

갑자기 버스를 세운다.

앞문이 신경질적으로 열린다.

헐레벌떡 20대 초반의 여성이 탄다.

청바지에 티셔츠, 체크남방을 걸쳤다.

백팩을 등에 매고 있다.

운전기사님은

"아! 차 앞을 가로막고 세우면 어떡해요?"

큰소리를 낸다.

체크남방 여성은 아무 거리낌 없이

바로 얘기한다.

"아닙니다. 차 앞이 아니라 차 옆이었습니다."

목소리가 힘차고 밝으며 명쾌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였다.

그러자 버스운전기사는 화가 나서

"아니라고! 버스 앞이었다고!"

라고 큰소리를 쳤다.

체크남방 옷을 걸친 여성은

또 같은 목소리로 응수한다.

"아닙니다. 분명히 버스 옆이었습니다."

기사는

"나원참! 왜 이리 우겨? 어?"

라고 더 큰소리로 외쳤다.

체크남방 옷을 입은 여성은

또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짜증 내고 싶으시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지요."

라고 말하며 나의 바로 앞 빈자리에 앉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휴대폰으로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기사는 화가 치미는지 계속 구시렁댄다.

난 이 30초도 안 되는 짧은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이 여성에 대하여는

마음속으로 우레와 같은 칭찬의 박수를 쳐주었다.

만약 아는 사이였으면

참 잘했다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만약 아는 사이였다면

친하게 지내고 싶은 성격이다.

기사가 내뱉는 불쾌한 표현에

어쩌면 이렇게 당당하면서도

곧바로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건 처음부터 태어날 때부터 가진

DNA일까?

아니면 교육을 통한 학습 효과일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보통 저런 경우에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짜증을 낸다거나 화를 낸다던가 무시를 하던가 당황해하고 언짢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 한수 배웠다.

저 어린 여성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당당함과 명쾌함을

나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꼭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외웠다.

"짜증 내고 싶으시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죠."

몇 번이고 외웠다.


바로 앞에 앉은 여성이

귀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해서

마음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앞으로도

어떤 일에서든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고 명쾌하게 살아가시길...

그걸 방금 배운 저도 그렇게 살아보겠습니다.


어느덧 144번은 집 앞에 도착한다.

그녀와 헤어지는 게 아쉬운지

여운이 생기는 마음으로 내린다.

나는 집으로 향해 걸으면서

오늘도 씽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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