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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양갱

by 시니

난 연양갱을 좋아한다.

아니 어쩌면 싫어한다.

아니 진짜로는 좋아한다.


어렸을 적 큰엄마의

넓적한 등에 업혀

눈물 자국 흥건히 메말라

왼손에 꼭 쥔 연양갱


이사준비에 바빠

5살 된 어린아이를

큰댁에 맡겨두니

눈물로

하루종일을 보낸다.


집에 가고 싶고

큰엄마도 싫었다.

큰엄마는 좋으신 분인데

왜 싫었을까?

내가 집에 못 가는 게

큰엄마가 돌봐줄 수 있었음이

싫었나 보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오히려 큰엄마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큰엄마의 체취가 생각난다.


매일 낮동안

갈색 얼룩무늬 블라우스에

감청색 긴치마를 입고

파란 슬리퍼를 신고

우는 날 업고선

점방에 가셨다.

난 어김없이

연양갱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러고선 올 때 또 운다.


저녁때가 되면

일터에 나갔던

큰아버지

큰 사촌오빠

작은 사촌오빠가 들어온다.

그때부터는 마음이 편해진다.

낮에 큰엄마와

둘만 있는 게

많이 불편했나 보다, 아마도.


밤이 되면

작은 사촌오빠가

해 주는 팔베개에

잠이 들곤 했다.

오빠의 팔은 아늑했다.


그런 날이 반복되다가

2주일 후에

우리 집이 이사를 마쳤는데

우선은 큰집에서 함께 살기로 되었다.

먼저 와서 살게 된 나는

마치 주인인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큰언니, 작은언니, 남동생에게

넓은 집을 구경시켜 주었다.

큰엄마는 더 이상

내게 연양갱을

사 주시지 않아도 되셨다


나의 어렸을 적

홀로 큰집살이는

이렇게 끝났다.


생각해 본다.

왜 연양갱이었을까?

말랑하고 달콤해서 맛있어서였을까?

그걸 물면

엄마의 젖을 물듯

부드러워서였을까?

손에 쥐기 쉬워서였을까?

기다랗게 생겨서

하루 종일

손에서 놓지 않고

먹을 수 있어서였을까?

선택의 이유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도 연양갱을 좋아한다.

가끔 사 먹기도 한다.

슈퍼에서 연양갱을 보면

큰엄마가 생각난다.

따뜻하고 듬직한 품을 지니셨던 큰엄마!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가셔서

다시는 볼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사진첩 속의 큰엄마는

여전히 후덕한 웃음을 웃고 계신다.


그 당시에 불안에 떨던 나에게

위안을 준 것은

연양갱과 작은 사촌오빠였다.


지금은 불안한 시기가 오면

위안이 되는 것은

연양갱도 아니고

미아리에 사는

나이 든 작은 오빠도 아니다.

책 읽기, 글쓰기와 걷기이다.

그리고 음악 듣기와

마음 편안해지는 이와의 대화이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이 힘들 때면

연양갱을 먹는 대신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다.

툭툭 떨어지는 면과

밍밍한 국물을

한 사발 다 들이켜고 나면

웃고 싶어지고

기분 좋게 살고 싶어진다.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닌

평범한 날이지만

집에 가다가

슈퍼에 들러

연양갱 하나를 사가야겠다.

가족에게 나눠주면서

연양갱에 대한

어렸을 적 얘기도 들려주고 싶다.


큰엄마!

미안했어요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내년 추석에는

아빠 큰아빠 큰엄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함께 계시는

의성 탑리를 방문하여

꽃을 선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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