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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잘 가

by 시니

오늘 넌 네가 가야 할 세상으로 갔다

나도 언젠간 가 볼 세상

숨 쉬지 않는 네 육신을 향해 가고 있다

액자 속 넌 건강할 텐데

어떤 모습으로 있을 거니?

퇴근 시간대라 차가 막힌다

내 목도 막힌다

네가 병실에서 보여 준 모습

어렸을 적 기분 좋은 날의 네 모습

시간 선상 없이 마구잡이로 떠오른다

수박, 포비, 커다란 웃음, 환자복, 포효, 눈물, 김치찜, 동그란 동공, 순대볶음, 구두...

어렸을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아는 사람 중 몇 안되는 순수한 사람 중의 너

그래서 병이 찾아온 거야

네가 너무 깨끗해서 찾아온 거야

거짓말도 하고

술수도 쓰고

능구렁이 같이 담 넘듯 넘고

다른 사람 흉도 보고

좀더 이기적이었더라면

그런 병이 안 왔을 텐데 말이다

앞 육교에 주현미 디너쇼 플래카드가 달려있네

네가 세상에 없음을 이 세상은 모르고 있구나

그저 이 차 안 가득한 공기만 알고 있구나


돌아오는 길은 늦은 밤이라 차가 안 막힌다

쌩쌩 달린다

너도 쌩쌩 좀 더 살지 그랬니

긴 터널을 지나면서 너의 터널을 생각해 본다

아이 넷을 키우느라 고생했을 너

근데 넷 모두 다 참 잘 키웠더라

의젓하고 착실해 보였다

막내가 다가와서 네 어린 시절을 묻기에

다 얘기해 주었어

네 연애사만 빼고

처음 듣는 얘기라고 무척 신기해하더구나

너의 영정 사진은 건강하더구나

네 옆에 하얀 국화가 많이 놓여있었어

네가 다른 세상에서 잘 지내길 기도하며

분향도 하고

제일 예쁜 국화꽃도 골라 올리고

두 번의 절도 깊이 했다

친구에게 절을 한다는 게 정말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하고픈 건 다 했다

한참을 앉아서 널 쳐다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하더구나

그래도 조문객이 많아 정신없어 보이는 네 남편이 다행이다 싶더라

네가 남자 보는 눈은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잔소리 한번 안 하고 힘든 과정 속의 널 챙겼잖아

네 남편 손을 잡고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친구야

이제는 아프지 않을 그 세상에서

보고 싶은 가족 생각나면

자주 찾아주렴

나도 조금이라도 생각이 난다면

꿈에 들어오렴

함께 주현미디너쇼를 보든

예전에 갔던

태백산을 오르던

마로니에 공원을 가던

신림동 순대를 먹던지 그러자


친구야, 잘 가

다음 세상에서 만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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