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갓 입사했을 때, 엄마 아들과 엄마 아들 여자친구와 셋이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초년생 월급으로 괜히 허세를 부려서 비싼 걸 먹었던 기억(이런 허세는 아빠를 닮았었다.)이 있는데, 아무튼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시간이 한참 흘러 거의 7년 전이 되었나보다. 그 흐르는 시간 동안 나는 애정하던 나의 오랜 일터를 떠나오기도 했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또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기도 했고, 도시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나있다가 결국 내 욕망을 인정하며 다시 도시로 돌아오기도 했다. 흐르는 세월만큼 나란 사람이란 참 다채롭게 변해왔는데, 신기하게도 동생과 동생여자친구는 그 오랜 만남을 여지껏 참 잘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변화무쌍한 나여서인지, 괜히 그들의 뚝심있는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고맙다고나 할까.
나는 이 커플을 참 좋아한다. 애정한다. 가끔은 엄마 아들의 그녀에게 의문이 든다. 굳이 왜 내 남동생을? 얘가 뭐가 좋을까?..(흠?..;) 내가 모르는 이성적 매력이 동생 놈에게 분명 있는 것이겠지. 그래 그렇게 어렴풋이 짐작하며 동생 놈을 인정하기로 했다. 뭔지 몰라도 그녀를 사로잡을 엄청 대단한 매력이 있긴 하니까 만나겠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니까 미스터리로 남겨두기로...
처음 봤을 때 부터 느꼈지만 사람이 한결같이 해맑고 구김살이 없다. 해맑음과 명랑함이 과하면 멍청함이 되기도 하는데 이 친구는 동시에 야무지고 똑똑하다. 아슬아슬 뭔가 선을 매우 잘 아는 것 같다. 착한데 영리하기까지 하면 싫어할 수가 없지. 그녀를 통해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 내가 이 다음에 나의 남자친구 가족들을 혹 만날 일이 있다면,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밝고 명랑해서 기분 좋지만, 동시에 만만해 보이지 않는 영리하고 야무진 사람으로서의 포지션이라면 이거다.'
동생의 그녀에게 동문이라는 점에서 애정이 매우 쉽게 갔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비록 전공도 학문의 영역도 다르지만 같은 캠퍼스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유대감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사실 그런 감성적인 유대감 외에도, 학벌이 주는 어떤 상징성을 쉽게 신뢰했다. 적어도 충실히 욕망하고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일거란 믿음. 거기에 더해 이 친구, 나와 유머코드가 꽤 잘 맞는다. 내 말에 잘 웃어주는 사람을 참 좋아하는 엔프피로서 아니 왜 그렇게 빵빵 웃어줘 나 설레게. 역시 잘 웃는 사람은 어딜가나 먹을 복이 있다더니. 정말 그렇다니까. 인상 구기고 무거운 척 하고 있는 거보단 확실히 이 편이 더 좋을 수 밖에 없음을 나이가 먹을수록 느껴간다. (나도 어디가서 인상구기고 있지 말고 헤헤헤 잘 웃어야지 다짐하기도 하고.)
객관적으로도 참 좋은 친구이자 멋진 여성인 것 같다. 가끔은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하는 일, 목표와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치열하다. 어쩐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남동생이나 나나 우리는 흐르는대로 흘러온 인간 유형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적당히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나라며. 저 정도로 치열하게 집요하게 살진 않았던 것 같은데 라며. 나이들수록 그냥 팔자에 감사함을 느끼며 우린 겸손하게 살아야된다 싶어지는 것.
주변의 여러 커플을 보며 쌓인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커플의 합 같은 경우 이런 경우가 은근히 많은 것 같다. 한쪽이 목표의식을 집요하고 치열하게 쫓는 편(멋지긴 한데 외외로 약간 고달픈 유형)이라면, 그 옆에는 되려 설렁서렁 느긋느긋 그저 한자리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한심해보이긴 한데 의외로 넉넉한 유형)이 있다. 그런 조합의 커플 모양새. 동생네 커플도 그러하고, 나와 애인도 약간 그러하고, 나의 부모는 더할 것 없이 그러한 커플의 전형. 서로를 이해하지 못함에서 지독한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서로의 그 다른 점이 그들이 서로 끌리고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세상사 이토록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일 투성이. 엄마와 엄마아들의 그녀는 치열해서 고달픈 전자의 유형에 해당하는데, 서로의 상대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 공통점에 서로 폭풍공감하고, 그 옆에서 아빠와 엄마 아들은 매우 머쓱해했다는 후문. 애매모호한 유형의 나는 혼자 생각했다고 한다. 이게 지금 무슨 웃긴 시츄에이션이지.
날이 좋은 사월, 그렇게 가족들은 다 함께 딤섬과 중국식 코스요리를 먹고선, 헤어졌다. 좋은 옷을 차려입고,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걸 함께 먹는 일. 나이가 들수록 뜻깊고 감사한 일이구나. 패밀리 타임을 통해 더 열심히 살아봐야겠단 생각같은 걸 하게 된다. 이 단순함부터가 기분이 좋아. 기분이 좋은 사월의 어느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