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원 아이스크림과 800원 레모네이드
5만 7천 개. 2025년 말 기준, 중국의 현제 음료(Freshly-made drinks) 브랜드 '미쉐빙청(Mixue Ice Cream & Tea)'이 전 세계에 깃발을 꽂은 매장의 숫자입니다. 이는 단순히 중국 내 1위를 넘어, 글로벌 커피 제국인 스타벅스의 매장 수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제국을 지탱하는 핵심 상품의 가격입니다. 단돈 400원인 아이스크림과 800원인 레모네이드. 편의점 생수보다 저렴하거나 비슷한 이 가격으로 미쉐빙청은 어떻게 막대한 수익을 내며 세계를 잠식할 수 있었을까요?
많은 이들이 이를 단순한 '저가 공세'나 '치킨 게임'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미쉐빙청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공급망의 과학'과 대중을 사로잡는 '고도의 심리 마케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만나통신사를 다녀가신 ‘언니’들을 위해, 이 붉은 제국의 성공 방정식을 해부해 봅니다.
1. 공급망의 해자: "브랜드가 아니라 제조사다"
미쉐빙청의 경쟁력은 '판매'가 아닌 '제조'에서 나옵니다. 2012년부터 그들은 브랜드 본사라기보다는 거대한 제조 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프랜차이즈가 원재료를 납품받아 유통 마진을 붙여 가맹점에 넘기는 것과 달리, 미쉐빙청은 농장부터 매장까지의 모든 과정을 수직 계열화했습니다.
그들은 '설왕 농업'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레몬, 찻잎 등 원물을 산지에서 직접 재배하고 수매합니다. 특히 연간 11.5만 톤, 중국 전체 생산량의 5%에 달하는 레몬을 쓰촨성 안위에 등지에서 계약 재배로 조달하며 경쟁사 대비 20% 낮은 가격 우위를 확보했습니다. 이렇게 확보된 원물은 '대가 국제 식품'이라는 자체 공장으로 보내져 잼과 시럽으로 가공됩니다. 심지어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설탕 시럽의 포장 용기, 매장에서 쓰는 설비까지 직접 만듭니다. 현재 가맹점에 공급되는 식자재의 60%는 자체 조달이며, 핵심 재료는 100% 자체 생산입니다. 유통의 중간 단계를 완전히 삭제하여 그 마진을 고스란히 기업의 이익과 가격 경쟁력으로 치환한 것입니다.
여기에 '규모의 경제'가 더해집니다. 전 세계 4만 6천 개 매장의 구매력은 협상의 판도를 바꿉니다. 분유 5.1만 톤, 오렌지 4.6만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는 원가를 극한까지 낮추는 무기입니다. 또한, 미쉐빙청은 SKU(취급 품목 수)를 늘리기보다 소수의 핵심 메뉴에 집중합니다. 메뉴가 단순할수록 단일 원재료의 구매량은 늘어나고, 공장의 생산 효율은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4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팔아도 남는 장사가 되는, 경쟁사들이 결코 넘볼 수 없는 '비용의 해자(Moat)'입니다.
2. 상생의 생태계: "가맹점이 벌어야 본사가 산다"
미쉐빙청의 수익 구조는 독특합니다. 전체 매출의 약 98%가 가맹비나 로열티가 아닌, 가맹점에 파는 식자재와 설비에서 나옵니다. 즉, 가맹점의 장사가 잘되어 재료를 많이 써야만 본사가 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일치는 파격적인 가맹점 지원 정책으로 이어집니다. 미쉐빙청은 중국 업계에서 유일하게 가맹점주에게 '물류비, 공간 디자인비, 홍보물 비용'을 받지 않는 '3무(無) 정책'을 시행합니다. 전국 27개 자체 물류센터를 통해 97%의 지역에 무료로, 그것도 콜드체인으로 재료를 배달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미쉐빙청의 단일 매장 모델은 매력적입니다. 약 30만~40만 위안(한화 약 5,700만~7,600만 원) 수준의 비교적 낮은 초기 투자 비용으로 창업이 가능하며, 중위권 매장 기준 월 250만~600만 원가량의 순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투자 회수 기간(ROI) 역시 평균 1년에서 1년 반 사이로 매우 짧습니다. 96%에 달하는 놀라운 가맹점 유지율은 이 시스템이 단순히 본사만 배 불리는 구조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3. 마케팅의 승리: "가난하지만 행복한 눈사람"
탄탄한 공급망이 미쉐빙청의 '육체'라면, 마케팅은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영혼'입니다. 미쉐빙청은 비싼 연예인 모델을 쓰지 않습니다. 대신 왕관을 쓴 눈사람 캐릭터 '쉐왕(Snow King)'을 브랜드의 영원한 페르소나로 내세웠습니다.
초기에는 못생겼다는 비웃음도 샀지만, 미쉐빙청은 쉐왕에게 철저하게 '인격'을 부여했습니다. SNS 속 쉐왕은 완벽한 마스코트가 아닙니다. 춤을 추다 넘어지기도 하고, 더위에 녹아내리기도 하며, 때로는 짓궂은 장난을 치는 '살아있는 친구' 같습니다. 2022년 여름, 신제품 오디 음료를 홍보하기 위해 쉐왕의 얼굴을 검게 칠한 '흑화 사건'은 웨이보에서 5억 뷰를 기록하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폭발적인 바이럴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니 아이 워, 워 아이 니(당신은 날 사랑하고, 난 당신을 사랑해)"라는 단순한 멜로디의 주제가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수만 가지 버전의 패러디 영상(UGC)을 만들게 하며 100억 뷰에 가까운 노출을 만들어냈습니다.
미쉐빙청이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는 "비록 돈은 없지만 즐겁다(Poor but Happy)"입니다. 400원, 800원짜리 음료를 마시는 행위가 '궁상맞은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유쾌한 소비'로 느껴지게 만든 것입니다. 이는 경제 둔화 시기를 겪고 있는 전 세계 MZ세대에게 깊은 정서적 위안과 공감을 주었고, 식품 위생 이슈 등 브랜드 위기가 닥쳤을 때도 팬덤이 앞장서서 브랜드를 변호하는 기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4. 마치며: 미쉐로부터 얻는 비즈니스 인사이트
미쉐빙청의 성공은 단순히 '중국이라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비즈니스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공급망의 깊이를 고민해야 합니다. 마케팅으로 포장된 브랜드는 오래갈 수 있지만, 제조와 원물까지 장악한 브랜드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핵심 원료의 내재화, 혹은 SKU 단순화를 통한 구매력 집중은 한국 기업들도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전략입니다.
둘째, IP는 자산입니다. 단발성 광고 모델에 의존하기보다, 브랜드 고유의 서사를 담은 캐릭터나 심볼을 키워야 합니다. 잘 키운 IP 하나는 수백억 원의 광고비를 아껴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진출의 언어 장벽을 허무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셋째, 소비자와의 정서적 연대입니다. 미쉐빙청은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위로'를 팔았습니다. 저성장 시대, 소비자는 기능적으로 우수한 제품보다 나의 현실을 이해하고 함께 웃어주는 브랜드에 지갑을 엽니다.
400원짜리 아이스크림 뒤에는 10년 넘게 갈고닦은 공급망의 칼날과, 대중의 마음을 꿰뚫는 따뜻한 눈사람의 미소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쉐빙청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불황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비즈니스 교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