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수표 하단에 날짜를 적다가 틀리게 만드는, 숫자 1 대신 2를 적는, 이상한 느낌만 있을 뿐'이라고 했지만 그 이상한 느낌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숫자 2를 대변하듯 0과 1, 두 개의 숫자로 자료를 변환하여 디지털화 하는 작업이 밀레니엄을 지나며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친구의 전화번호를 대신 기억해주었고 '전화카드 한 장'과 '동전 2개'는 옛노래 가사로 남았다. 지갑은 작고 가벼워지다가 어느새 핸드폰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전국지도가 담긴 두꺼운 책을 꿀꺽 삼킨 요정 지니가 요술을 부리듯 길을 안내했다. 오솔길 대신 큰 길만을 안내하는 경제적인 요정이었다. 남은 필름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셔터를 누르고 바로 확인을 했다. 이상한 사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 되었지만 우스꽝스럽던 표정을 포착한, 단 한 장만이 가지는 묘미도 함께 삭제되었다. 수십 권의 책도 흑백 크레마 속으로 쏙 들어갔다. '더 작고 더 가볍게' 라는 슬로건이 어디서든 펄럭였다.
내 가방도 가벼워졌다. 비록 앞장만 시꺼먼 불성실한 기록자의 다이어리가 가방에서 사라진 것은 2003년부터다. 똑똑하고 아기자기한 새로운 일기장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추억일기, 사랑일기, 육아일기, 사진일기, 독서일기, 여행일기, 업무일지와 리뷰일기, 삶의 카테고리들은 제법 다양했다. 생의 재산은 추억밖에 없다는 듯, 때로는 자신의 재산을 과시하듯 나의 모든 것을 목록별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늘 다녀갔지만 지저분한 것이나 너무 귀해 남에게 보이기 싫은 건 장롱 속에 잘 숨겨두듯 감추어 둘 수도 있었다. '조승희의 작은 집'에는 음악이 항상 흘렀고 나는 그 집에 오래 머물렀다.
새로운 디지털 일기장들이 속속 세상에 선보였고 '작은집'의 독보적인 인기도 사그라들었다. 나는 오래된 연인과 결별하고 새 애인에게 가듯 네이버 블로그로 이사를 갔다. 언제나 꺼내보는 종이 일기장처럼 비밀번호만 잊지 않으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내 집이라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새로 부는 바람을 향해 사람들이 떠나갔다. 휴전선이 그어지며 하루 아침에 출입금지 구역이 되었던 북한처럼 그 마을은 폐쇄되었다. 피난 갈 사람은 짐을 챙겨 떠나라고 대대적인 방송을 했다는데 그런 소식들에 둔해서 내 재산을 챙기지 못했다. 두드릴 문은 사라져버렸다. '행복은 다른 걸 갖는 게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걸 갖는데 있다는 걸 난 그때 몰랐어.'*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쉽게 걸릴 낮은 턱 같은 문장에 눈이 머물렀다.
"우리가 처음 소개받았던 밤에 갔던 곳이 송도해수욕장 맞지?"
얼마 전 송도로 산책을 나서며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닐텐데, 처음 만난 날 왜 거길 갔겠어?' 하며 반문했다.
"편의점에서 산 병 유자차를 호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건네준 거 기억 안나?" 특별한 날의 기억을 잊은 남편에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송도가 아닌 것 같은데'란 남편의 저항에 순간 내 기억에 자신할 수 없었고 '일기장만 남아 있었더러도 확인해볼 수 있었을 텐데'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전화번호를 더 이상 외우지 않게 된 순간부터 점차 퇴화되어가던 기억력 탓일까. 사진과 일기로 복습을 할 수 있는 다른 시기에 비해 그 시절의 기억은 더 많이 바래고 흐릿해졌다. 나의 천국이자 지옥이기도 했던 스물 다섯에서 서른 다섯의 추억들은 오로지 내 기억에만 의지한 채 불씨가 꺼져가고 있다. 마음으로 봐야 더 잘 보이고 더 오래 남는다는 말은 신뢰하기 힘들다. 대체로 눈에만 마음에만 담았던 것들은 그 위로 쌓이는 생의 무게에 짓눌려 더 깊숙이 가라앉는다. 죽는 순간 펼쳐진다는 삶의 파노라마 속에서만 재생될지도 모른다.
며칠 전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다보면 문득 차창 밖으로 뵈는 풍경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잖아. 오늘이 그러하네'란 메시지와 함께 선물을 하나 받았다. <인생에 늦은 때란 없으니까, Not too Late Diary>란 제목의 책. 70에 글을 배우고 80에 시인이 된 90세 황보출 할머니와 함께 쓰는 다이어리북이었다. 2023년, 이제 1보다 2가 더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손글씨로 ㅇㅇ에게 란 서명을 한 책을 건네고 다이어리를 내민다. 아날로그 일기장도 언제든 물에 잠길 수도 불길에 휩싸일 수도 있겠지만 올해는 다시 공책에 펜을 꼭꼭 눌러가며 일기를 쓸 생각이다. 작고 예쁜 나만의 노트가 검은 글씨와 알록달록한 것들로 어우러져 가득 차는 상상을 하면 쾌감이 느껴진다. 2024년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도 오히려 멋스럽지 않은가, 하고 제멋대로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그러면 뭐 어때! 나는 1978년생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