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피드에 '몇 월 마음가짐 제출'이라는 짤이 주기적으로 올라왔다. 대부분 귀여운 사진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문구나 ‘좀 못 해도 괜찮다’는 응원이었다. 몇 번 보고 나서는 비슷비슷한 느낌이라 그냥 이런 게 유행인가 보다 하고 넘기다보니 SNS 피드에서 ‘누군가의 마음가짐'은 점점 사라졌다.
11월. 그러는 사이 바람은 차갑고 해는 따가워졌다. 여름에 내리쬐던 태양이 이글이글한 강렬함이었다면, 이 계절의 태양은 따스하다기 보단 따가운 쪽이다. 차가운 바람과 단짝을 이뤄 강약 조절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빨리 포근한 집으로 돌아가라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도 싶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2026년을 두 달 남겨 놓은 지금 ‘찬 기운을 등에 업은 따가운 햇살’은 ‘따가운 눈총’이었다. ‘올해 네가 하기로 한 일은 어느 정도 끝냈냐’는 물음을 짐짓 모른 척하는 뒷통수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이었다.
매년 연말병을 앓고 있다. 나이가 드니 이것도 예전 같지 않았다. 어쩌면 무기력일지도. 새해 다이어리를 개시하며 첫 장에 적던 ‘올해의 할 일’ 작성을 차일피일 미루다, 겨우겨우 봄이 오는 소식에 기운을 추스르며 애써 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골똘히 고민해서 적어 놓고선, 개구리 올챙이 적처럼 잊고 살았다. 올해 내가 하기로 한 일들을.
나에게 다이어리는 새해 초반 반짝 쓰다 책장에 진열되는 장식품이 아니었다. 카카오 캘린더를 쓰고 있지만, 다이어리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을 놓을 수 없어 가는 곳마다 들고 다녔다. 한쪽 면에는 주일 설교를 적고, 반대쪽 면에는 그 주 있었던 일을 몰아 적었다. 월력에는 스티커도 붙이며 나름대로 다꾸를 했는데, ‘올해의 할 일’을 적은 첫 장만은 깨끗했다. 신경 쓰지 않 티가 역력했다. 그러니 코끝 시린 바람과 빨리 저물면서 오히려 존재감이 두드러진 햇살이 ‘따가운 눈총’일 수밖에.
'올해의 할 일'을 스토리에 올렸다.
"11월 마음가짐 제출 : 밀린 숙제하기"
할 일 중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건 독서. ‘작년보다 책 많이 읽기’는 한 권만 더 읽어도 성공이니까. 그래도 남은 기간 안에 부지런히 다섯 권이나 읽어야 한다. 얇은 책을 찾는 중이다. ‘10km 마라톤 참가하기’. 참가하고 싶은 마라톤 대회는 대부분 추첨제였다. 원래도 뽑기 운이 없는 편이다. 몇 번 대회 신청에 고배를 마시자 흥미를 잃고 일주일에 하루, 기분껏 달리고 있었다. 대회에 집착하기 보다 혼자서라도 10K를 뛰어보는 것으로, 조금더 기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달려야지.
그 외의 할 일은 올해 안에 완료할 수 없지만, 포기보단 내년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 첫 단추는 꿰어야 하지 않을까. 그중 하나, ‘헌혈하기’. 연 10회 목표가 1회로 줄어든 처참한 상황이지만, 한 번 시작하면 두세 번은 조금 더 쉬울 것이고, 무엇이든 루틴이 생기면 이어가는 걸 잘해내는 성실함을 믿으며 올해 1% 진행률을 만들어 보려 한다.
어떤 이의 마음가짐처럼, 못 해도 된다. 꼭 해내야만 하는 일도,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다. 새해 결심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올해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주어진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해왔고, 여전히 해내야 하는 일이 가득하며 이를 위해 계속 움직이고 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시간도 많았다.
그래서 더, 이 ‘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기 전에 내가 해보고자 했던 일들을. 무기력해진 나를 돌보고자 골똘히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권유했던 일들을 이어감으로써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뒤늦게 마음가짐을 제출하면서, 왜 이런 다짐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한 해 동안 작심삼일도 계속하면 120번의 포기와 재시작을 반복하며 결승점에 가까워진다. 설령 다 해내지 못하고 좀 부족하더라도, 마음가짐을 점검하고 목표를 수정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하나의 유익은, 덕분에 미뤄둔 마음을 다시 꺼내 보았다는 것.
올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11월 마음가짐 제출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