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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Dec 30. 2020

비대면 졸업식도 졸업식 기분 나는구나

첫째의 생애 첫 비대면 졸업식

어제 첫째가 유치원 졸업식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직접 대면할 순 없어, 아쉽게도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아이도 나도 난생처음인 비대면 졸업식. 과연 비대면 졸업식도 대면 졸업식과 같은 감정들이 일어날까? 비대면 졸업식의 형식부터 그 형식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과연 부모세대의 졸업식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너무 올드한 건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아날로그 세대가 생각하는 졸업식은 부모님의 학교 방문, 기념 촬영,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작별 인사, 그리고 끝나고 먹는 짜장면일 것이다. 나의 경우, 하나가 더 있다. 내가 머물렀던 공간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친숙해진 운동장, 우리 반 교실, 복도, 매점, 등굣길 화단과 나무까지. 추억들이 가득한 공간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고 나면, 진짜 끝인 것 같았다. 나중에 다시 찾아가겠노라고 다짐하지만,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시 찾아가진 않았다. 게다가 내가 다닌 중학교는 1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망해버려 아예 없다.


하지만 첫째의 경우 나와 사정이 다르다. 코로나 시국에 비대면 말고는 대안이 없다. 다만 유치원에서는 전날, 졸업 물품을 받으러 갈 때 유치원 운동장에 포토존을 마련했다. 반별로 물품 받으러 가는 시간을 정해, 다행히도 친구들을 만나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건물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운동장에서는 잠깐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에게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유치원이란 공간에서의 시간이다. 오후의 바람은 차고, 모래들은 차갑게 얼었지만, 아이에겐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들이다. 반 친구가 사슴벌레를 잡았다는 전래놀이터, 하원 후 동생과 함께 놀던 모래 놀이터, 친구와 함께 뛰어놀던 모래 언덕, 모래 놀이 후 손을 씻던 수돗가까지. 어디 하나 친숙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사실 졸업식 전날, 유치원에서 받은 그간의 아이 활동북과 사용하던 물건들을 돌려받으면서 울컥했다. 12 내내 유치원을 가지 못했던 탓에 방과  과정에서 했어야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무드등 만들기, 블록 등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공룡을 좋아했던 아이가 곤충에 빠지게 되면서 아이는 그림  주인공을 바꿔갔다. 친구들이 만화나 동화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따라 그리기 시작해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어 만화도 그리게 되었다. 이의 성장과정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보이는 고마운 자료들이었다.



졸업식에 필요한 물품은 기존 졸업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 하나를 들지먼 DIY 만든 학사모(엄마가 만든) 정도이다.


드디어 졸업식 당일, 10 , 줌에 접속하니 이미  친구들이 많이 접속한 상태였다. 오디오를 열어둔 상태 아이들끼리 하는 얘기들이  들렸다. 아이들은 마냥 신기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바로 선생님이 등장했다. 옆에 도움 주는 분이 계셔서 마스크를 끼고 계셨다. 마지막날인데도 선생님의 노마스크 얼굴을 볼 수 없다니...아이들은 선생님의 마스크 쓰지 않은 얼굴을 올 한해 몇번이나 봤을까. 거의 없었을 것이다 ㅠㅠ


식순에 따른 상장 및 꽃다발 증정식은 부모들이 등장해 아이들에게 수여했다. 식의 마무리는 학사모 날리기. 조금은 허접한 학사모(엄마가 만든^^)를 허공에 던지면서 졸업식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끝날 쯤되니 선생님께서 아쉬웠는지 단체사진을 찍겠다고 하셨다. 아이가 갑자기 사슴벌레 피규어를 들고 나타났다. 아이들이 각자 소중히 생각하는 물건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걸 보더니 사슴벌레 피규어를 준비한 것이다. 이렇게 선생님과 모니터 속 아이들마다 각각의 포즈가 고스란히 담긴 단체샷이 완성됐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모니터가 암전 될 때는 눈물이 와락 흘렀다.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정말 끝이구나라는 감정과 함께 비대면 졸업식이 주는 감동이 대면 졸업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의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끝이 났다는 상황 그 감정 자체가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것이 식이라는 절차를 통해 극대화되고, 우리는 인식한다. 이제 나에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상기한다.(그때는 잘 모르지만)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인지한다.


비대면 졸업식도 나쁘지는 많은 않았다. 비대면이지만 졸업식은 졸업식이다. 하지만 직접 대면을 통해 얻게 되는 느낌들이 아이에게 닿았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이 되니 좋다는 말만 했다. 그런데 전에 졸업식에 쓰일 가족 영상을 보다가 아이가 불쑥 내뱉은 말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영상 속에서 둘째가 "형아 졸업 축하해" 이말을 듣고,


"하마터먼 나 울뻔했잖아"

 

이렇게 무심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될 첫째가 내년에는 꼭 학교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머문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비대면이 대세일텐데 아직 나는 아날로그 엄마라 그런가 ㅠㅠ


 졸업식이라는 의식 자체가 성장의 관문이다. 성장의 관문을 함께 통과하는 이들과 손을 붙잡고, 어깨를 부여잡고, 격하게 함께 물리적으로 느낌을 공유할 순 없지만, 특별한 공기의 흐름이 있긴 있었다. 현장에서라면 더욱 강렬했겠지만, 분명 졸업식 후, 집안엔 다른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따뜻하지만 신선했고, 갑자기 훅 달아올랐지만,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아이의 마음처럼 내 마음은 이리저리 요동치고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던 아리스토 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우리 아이들은 과연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사회성을 쌓은 방법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변화한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아이들은 지금 인류와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될까? 이미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 것일까? 나아가 나 역시 언택트가 적응이 된 건지, 대면 회의로 인해 버리는 이동시간이 이리도 아까운 건가라는 생각에 이르니, 코로나로 인해 미래가 10년 이상 앞당겨졌다는 게 실감이 간다.



비대면 졸업식, 원격 영상 수업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나도 아이들도 변화의 물살 위에서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추억마저 이제는 비대면으로 기억해야하는 세상이 올 것 같다. 우리가 그때 만난 거리, 그때 함께 했던 공간이 아니라, 줌에서 본 너의 표정을 기억한다는 등의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


아무튼, 2020년은 지금껏 살면서 가장 비현실적인 한 해였단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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