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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무서워.

가족은 다 적이라고 여겼다.

by 세성

시간이 지나 어느 날, 차단했던 할머니의 번호를 눌렀다.

기록을 살폈다. 알고 보니 그날 이후,

한 번 더 전화를 했었다.

왜? 무슨 이유로 한 번 더 전화를 했던 걸까.


숨이 가쁘게 쉬어졌다.

누군가 목을 조이는 것처럼, 혈액이 머리끝까지 몰려왔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전화기 화면에서 할머니 번호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아빠나 새엄마는 원래 연락이 없었고,

친척들 역시 연락하는 사람이 없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둘째 고모.


대학교 때문에 도시로 올라왔을 때,

잊을 만하면 연락을 주셨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았던 2학년.

그때 나를 집으로 들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3년 동안 고모네 집에서 살았다.

고모부도 함께였기에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두 분 모두 나를 따뜻하게 챙겨주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이곳으로 올라와 일할 때도,

명절마다 반찬을 갖다주고,

집 근처에 오면 밥을 사주었다.


고모와 나는

때론 엄마와 딸 같았고,

때론 친구 같았으며,

무엇보다 정이 깊은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

고모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주먹을 맞은 듯 두려웠다.

눈동자가 떨렸다.


그 순간, 사람이 무서웠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아서.

그걸 듣는 게 두려워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무시하고 싶었다.

'고모'라는 글자만 봐도 숨이 막히고,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 뒷걸음질 쳤다.


어느새 '가족'은 내게 '두려움'이었다.

할머니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은,

다 적인 것만 같았다.


'나한테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날 일을 꺼내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전화를 받아야 할까?'

'받기 싫다. 무섭다.'


하지만 안 받기엔...

고모는 날 딸처럼 챙겨줬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진동이 울리는 짧은 몇 초 동안,

생각들이 교차로 지나갔다.


나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 뒤로도, 한동안

전화기 화면에 '고모'라는 글자가 뜰 때마다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쉽게 밀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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