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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가정 자녀가 연애 할 때

결핍 위에 핀 사랑

by 세성

연애는 나조차 몰랐던 나를 마주하게 했다.

나는 연애를 통해 내 안의 결핍들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고,

그 차가운 부족함을 온전히 마주하면서, 서서히 따뜻해졌다.







처음엔 단순한 마음이었다.

'이제 연애라는 프로젝트를 마음 속에 넣을 공간이 생겼다.'

당시 병원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분에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된 시점이었다.


지인도 많지 않고, 모임도 좋아하지 않으며, 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 성격.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나같은 사람은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인연이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B야, 주변에 누구 있으면 소개 좀 해줘."


그게 시작이었다.

대학 친구 B가 소개해 준 그녀의 중학교 친구라는 남자.

그와 밥을 먹고, 카페를 갔던 첫 만남.

그날 이후 1000일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연애를 하고 3년이 가까워진 지금.

많은 것이 변했다.

누군가와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이 어색했던 나는 이제 내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게 되었고,

상대방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도 배웠다.

내 의견에 돌아오는 거절도 꽤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예전처럼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고, 감정을 더 부드럽게 표현하게 되었다.


밝아졌다.

차갑고 날이 서 있던 마음과 표정이 어느새 따뜻해졌다.


내가 사랑을 몰랐다는 사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많이 울고, 상처 받고, 슬퍼했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사랑을 표현하는 법도 몰랐다.

감정을 누르고 삭이는 게 익숙했던 나는, 감정을 말로 꺼내는 데 서툴렀다.

건강한 다툼의 방법을 몰라서 다툼의 순간엔 눈물로 화를 냈다.

혼란스러웠고, 무너졌다.


그가 가진 것과 내가 가지지 못한 것

화목한 가정의 남자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특히 명절이면, 더 그랬다.

어느 명절엔, 그의 가족과의 영상통화 뒤에 혼자 방에 들어가 울었다.

그날만큼은 그가 밉기도 했다.


내 성격적인, 환경적인 결핍들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나 자신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상적인 모습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짜증도 났다.

그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자꾸만 바꾸고 싶었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완벽함을 덜어낼 줄도 알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의 모습을 존중할 줄도 안다.

좋아한다고, 행복하다고 표현도 한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솔직하게 감정을 전달한다.

또, 그의 가족이 부럽기는 해도 질투가 나지는 않는다.

그저 '나도 그렇게 화목한 그의 가족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사랑이 나를 자라게 했다

연애라는 것은 완벽한 서로가 앞을 향해 달려 가는 것이 아닌,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서로 채워주면서 마주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힘들어도,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금 짜증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나고 보면 즐거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단 한 사람의 힘

한 사람이 주는 영향력은 참으로 컸다.

맞춰주고, 잡아주고, 도와주던 그 덕분에 나는 많이 변했고 인격적으로도 성장했다.

혼자였다면 하기 어려웠을 일들을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됐다.

정말로 고맙다. 내가 흔들리고 아파하는 동안 곁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어준

그에게 한없이 감사하다.


나도 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이렇게 좋은 영향을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나는 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부족하지만, 사랑을 줄 수도 있는 사람.

그리고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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