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는 주말 오후, 별안간 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 벽장 속 고이 잠들고 있던 앨범을 오랜만에 펼쳐보았다. 현재와 비슷하게 남은 이목구비, 옛날에 살던 정겨운 집 안 풍경, 자주 가던 대공원,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의 앳된 얼굴들….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추억의 단맛은 나를 자꾸만 깊이 오래도록 빠져들게 했다. 그러다 내 앨범이 있는 곳에 있던 또 다른 앨범을 펼쳐보니 그곳엔 다름 아닌 엄마의 찬란한 젊은 시절이 담겨 있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그녀의 앳된 얼굴은 꼭 또 다른 나를 보는 듯 익숙했다. 제 나이대처럼 사진을 찍기 좋아하는 소녀스러움과 놀기 좋아하는 발랄함은 새삼스레 그녀 또한 지금 나와 같은 시절을 겪었다는 걸 보란 듯이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 엄마, 아빠에게도 주름살 따윈 존재하지 않던 새파란 젊음을 누리던 때가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 아빠는 나에게 그저 삶이 익숙한 어른처럼 보여서 그들조차 그런 시절을 지나왔다는 게 여태껏 좀처럼 크게 와닿지가 않을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어느덧 엄마가 결혼하던 나이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제서야 겨우 엄마, 아빠의 지나간 청춘과 삶의 애환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의 청춘이 모여 내가 되었고, 그들의 헌신 덕분에 온전히 나의 청춘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청춘을 기꺼이 바치는 데엔 과연 어떤 이유가 필요할까? 나의 청춘을 다 바칠 거라는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그들은 그저 흘러가는 청춘은 그대로 둔 채 이 녹록지 않은 삶을 위해 부단히 애를 썼을 것이다. 그 이유 앞엔 사랑이란 이름만큼 강력한 게 과연 또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그 이유 앞에 감히 사랑이란 이름을 붙여 지나가버린 그들의 청춘을 오래도록 기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