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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 복이 와요

by 김프로

좋은 배우자의 조건으로 건강과 경제력, 좋은 성격과 함께 유머 감각을 드는 경우가 많다. 유머 감각은 생각보다 큰 대접을 받는다. 유머는 코미디나 개그와 달리 단순히 웃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저속함과 경솔함은 더욱 아니다. 유머는 상황에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자극제이다. 웃음으로 끝나지 않고 건강한 에너지를 교류하며 긍정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머가 긴장을 풀고 신뢰와 사기를 높이며 생산성과 창의성을 증진시킨다는 증거자료는 꽤 많다. 나는 내성적인 편이며 인기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적극적인 유머 예찬론자이다. 유머는 사석뿐 아니라 공석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백익무해(百益無害)하다. 탁월한 유머 감각은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만든다.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엄격한 예의범절을 높이 사고 금욕과 겸손을 중시하여 유머를 경시하는 경향이 약간은 남아 있다. 반면 서양의 문화에서 유머는 찬사의 대상이다. “유머는 인류에게 가장 큰 축복(Humor is mankind's greatest blessing)”이라는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은 유머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조차 유머를 즐기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일랜드 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오역 이슈가 있기는 하지만 묘비에 새겨진 해학임에는 분명하다). 죽음에서조차 유머를 담는 그들의 모습이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오래전 대표적인 국내 영화제 진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담당했다. 당시 영화업계는 약간 폐쇄적이고 배타적이어서 쉽지 않았지만 큰 문제없이 생방송 진행까지 이르렀다. 영화제 행사는 콘텐츠 측면으로만 보면 연출이나 대본보다는 수상자의 연설이 핵심이다. 아카데미 수상식을 즐겨 보는데 수상작에 대한 기대와 함께 수상자들의 매력적인 소감 발표가 시청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수상자는 감사 인사와 함께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상황에 맞는 재치 있는 유머를 넉살 좋게 펼쳐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담당했던 국내 영화제는 수상자 대부분 미리 준비한 메모를 보며 감사를 표하고 그 대상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사 대상이 너무 많아 시청자들이 전혀 모르는 미지의 인물들까지 거론되면 지루함에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게 된다.


프로 농구단의 단장으로 일할 때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드래프트는 꽤 중요한 행사이다. 구단에게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에게는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취업기회이니 행사장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호명된 선수는 큰 박수와 함께 무대에 올라 소감을 발표한다. 대부분 매우 예의 바르고 격앙된 태도로 감사와 향후 각오를 진지하게 다짐한다. 진중한 태도가 이해는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방송에서 지켜보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프로선수로서는 준비가 조금 덜 된 느낌이 든다. 시즌 중에는 매 경기 이후 MVP 선수를 선정해 인터뷰하는데, 다들 정석에 가까운 반듯한 답변만 해서 조금은 고루한 느낌이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선수는 만나보기 어렵다. 인터뷰도 경기의 일부이고 팬서비스임을 인식해야 한다. 예의와 겸손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거기에 재치와 유머를 더한다고 좋은 태도가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재치와 유머가 메시지 전달력을 강화하고 무엇보다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더해주어 더욱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그래도 요즘 배우나 선수들 인터뷰를 보면 감사 인사와 함께 간간이 멋진 유머를 섞어 자신만의 소신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늘고 있어 반갑다. 수상 소감, 인터뷰뿐 아니라 강의, 주례, 연설, 설교, 강연 등에서 적절한 유머와 위트는 청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집중력을 높여주어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힘을 더욱 강화한다.

나는 첫 직장을 일 년 만에 그만두었다. 1980년대 말 처음 접한 회사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매우 경직된 조직이었다. 상하 구분이 엄격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두 번째 직장으로 선택한 광고대행사에 입사하면서도 첫 회사에서 경험한 선입견으로 조직 적응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쉽게 포기하는 나 자신이 나약해 보여서 최소한 3년은 버티기로 했는데 웬걸, 그곳에서 35년을 넘게 보냈다. 상대적으로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 항상 도전적인 프로젝트의 매력도 컸지만,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직문화는 하나의 학문이 될 정도로 심도 깊은 분야이지만, 내게 있어서 조직문화는 웃음과 열정 두 단어로 축약된다. 건강하고 창의적인 조직에는 늘 웃음이 있다. 조직에서 들리는 밝은 웃음소리는 수평적인 문화와 긍정적 에너지, 좋은 팀워크와 활발한 소통의 증거이다.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는 유머를 주제로 한 '유머: 심각한 비즈니스(Humor: Serious Business)'라는 강좌가 있다. 세계 각국의 조사와 분석을 통해 유머가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르친다. 책과 TED 강연을 통해 강좌의 일부를 접할 수 있다. 유머는 개인에게도 조직에도 매우 유용하고 강력한 기술이며, 타고나는 측면도 있지만 학습할 수도 있다.


젊은 시절 고(故) 김태길 교수의 수필을 즐겨 읽었다. 그중 유머에 관한 글이 있었는데 본인에게 유머는 종교와 같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많을 때 특정 종교가 없는 본인에게는 유머가 불안을 진정시키고 삶의 활력을 준다고 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은 적어도 건강 면에서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웃음은 열량을 적지 않게 소모하고 혈압을 낮추며 심장병을 예방하고 면역력과 행복감을 높여준다고 하니 과히 만병통치약이다. 요가를 배울 때도 마지막 정리단계에서 크게 웃는 시간이 있었다(처음에는 많이 어색하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웃으면 정신도 몸도 건강해진다. 웃으면 일에도 사생활에도 활력이 더해진다. 유머 감각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센스 있는 웃긴 말을 잘하지 못해도 유머 감각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많다(거의 대부분이다). 유머를 좋아하고 잘 받아들이고 맞장구치고 즐기면 된다. 얼마나 쉬운가. 유머를 종교로 삼진 않아도 최고의 친구로 받아들이면 일에도 삶에도 언제나 든든한 동지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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