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이럴 거면, 1인 1닭 합시다.
우리 어머님은 먹는 것에 진심이시며, 손이 참 크시다.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가 너무 많아 어떤 이야기부터 적어나가야 할지 어려울 정도인데, 천천히 하나씩 풀어보겠다.
때는 어머님과 같이 살기 시작한 첫 해 여름이었다. 둘째 출산 후 첫여름,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여름의 초입이었다. 어머님께서는 자식들에게 맛있는 것 좋은 것 해먹이시는 걸 좋아하고, 요리도 좋아한다. 더위를 나려면 몸보신을 해야 한다고 본가에서 귀한 삼과 약재, 찹쌀 등 부재료를 바리바리 챙겨 오셔서는 삼계탕을 해주시겠노라 하셨다. 그리고 나는 마트에서 파는 가장 큰 토종닭을 준비하였다.
토종닭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자면, 나의 본가(친정)에서는 삼계탕을 할 때 1인 1닭으로 준비한다. 맛알못(?)인 우리 가족은 작은 사이즈의 영계가 맛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 남편의 본가(시댁)에서는 삼계탕을 할 때 가장 큰 장닭 1마리를 준비한다. 맛잘알(?)인 시댁 식구들은 입을 모아 큰 토종닭이 훨씬 맛있다고 한다. 이 부연 설명은 아래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적어도 나의 본가(친정)에서는 삼계탕의 닭다리 논쟁은 불필요했기 때문에, 내가 고작 닭다리 하나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정말로, 예상조차 못했다.
초대형 곰솥에서 삼계탕이 폭폭 끓어올랐다. 삼계탕 특유의 진득하고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피어 흐른다. 나는 호불호가 특별히 강한 사람은 아니라 대부분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편이지만, 굳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삼계탕은 나에게 ‘호’의 음식이다. 오랜만에 친정에 내려가면 엄마가 꼭 해주는 음식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냄새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은 남편이 야근으로 늦게 귀가하는 날이었고, 나와 첫째 아이 둘만 식사를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어머님은 건강 문제로 종종 저녁 식사를 거르신다.) 식사를 준비할 때면 보통 주식(이를테면 국이나 고기, 메인반찬)은 어머님이 직접 그릇에 옮겨 담으신다. 그렇기에 나는 밑반찬과 수저, 물 등을 차리며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어머님은 삼계탕을 담을 대접을 꺼내놓고도 솥 앞에서 한참을 그냥 서계셨다.
“오늘 먹을 건 네가 펄래? “
“네? “라고 돌아본 순간, 어머님의 불편한 얼굴이 보였다.
“닭이 너무 커서 어떻게 퍼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먹을 사람이 퍼는 게 좋을 것 같지 않니.”
“아이고, 대충 퍼 주셔도 되는데요 어머님, 하하”
웃으면서 국자를 넘겨받았다. 큰 솥을 뒤적이며 내 손바닥보다 훨씬 더 큰 닭다리를 뚝 잘라 퍼 올리는 순간까지, 어머님은 내 곁을 떠나지 못하셨다. 갑자기 다급하게 뱉으신 한 마디.
“그 닭다리는 리리(첫째 아이)꺼지?! “
어머님의 눈빛에서 불안을 읽었다. 그제야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닭다리를 내가 먹을까 봐, 불안하셨던 거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을 위해 닭다리를 남겨놓고 싶은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 야근하고 오는 아들 가장 귀한 부분 내어주고 싶은 그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그 마음에 직접 닭다리를 따로 떠
놓자니 속없이 나쁜 시어머니가 되는 것 같았을 테고, 또 그런 마음에 내 그릇에 모른 척 다른 부위를 담으려니 미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내게 직접 퍼 담기를 권하셨겠지….
어머님의 불안한 마음을 읽어버린 그 짧은 순간에 삼계탕을 기다리며 설레던 마음이 짜게 식어버렸다.
“아, 네. 이건 리리 주려고요. 하나는 리리 아빠 먹게 남겨 놓을까요? “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요 며칠 본 중 가장 온화한 미소였으며, 갑자기 긴장이 풀어지고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럴까 그럼(환한 미소, 밝아진 목소리)”
빈말이라도, ‘에이, 그냥 너 먹지 그래’라는 말이 안 나오시나 보다.
조금만 이해해보려 하면 사실 별 것 아니었다.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표독스러운 시어머니처럼 ‘아니, 닭다리는 당연히 우리 가장이 먹어야 하는 것 아니니, 너는 요기 요 퍽퍽 살이랑 죽 먹으렴.’하며 쏘아붙인 것도 아니었지 않나. 그러나 그때 나는 해산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고,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매일매일 기분이 들쑥날쑥했다. 평소에 크게 개의치 않았던, 무심결이었을 어머님의 지난 행동들 까지 되짚어졌다. 남편의 고깃국에 훨씬 많은 고기가 들어있었다거나, 맛있는 반찬은 남편과 가까운 쪽에 놓여있었던 것 같은, 남편의 엄마니까 무의식에 나왔을 그런 사소한 행동까지 되짚어지며, 기분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우리 엄마였다면, 어떤 상황이었어도 사위에게 가장 귀한 부위를 내어주었을 것이다.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 엄마였다면 …’이라는 생각이 삼계탕 한 그릇을 다 비워낼 때 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만약 남편이 자리에 있었다면, 서로 ‘이거 당신 먹어’라며 양보하다가 결국 나는 남편에게 그 닭다리를 내어주었을 것이다. 어머님이 식사를 같이 하시는 상황이었다면, 먼저 어머님께 닭다리를 권했을 것이고, 어머님이 거절하시면 그다음 남편에게 권했을 것이다. 그렇듯 나는, 삼계탕의 닭다리가 너무 귀하니 그것을 내가 꼭 먹어야겠다고 욕심 내어 눈치게임을 시작할 작전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 귀한 것에는 스스로 눈길조차 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놈의 닭다리가 뭐길래 말이다.
이럴 거면, 1인 1 닭 합시다.
아이가 태어나고서 우리 부부는 보통 닭다리를 아이에게 먼저 내어준다. 나 역시 아이들이 귀하고 소중하기에, 맛있고 먹기 좋은 그 부위를 먼저 내어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친정 엄마, 시어머니모두 그러하다. 손주에게 먼저 내어준다.) 우리 어머님에게 며느리도 귀했겠지만, 아마 그 귀함의 순서가 한참 뒤 쪽이었나 보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한번 더 마음을 다졌다.
나에게 혹시 며느리가 생기면, 나는 삼계탕은 꼭 1인 1닭 할 거야. 치킨 닭다리도 꼭 그 귀한 아이 먼저 내어줘야지.
차라리 담백하게 혹은 무심하게 ‘리리 아빠 오늘 야근인데 닭다리 하나 남겨 놓을까?’라고 말씀하셨다면 더 나았을 뻔했다. 그랬다면, 그냥 ‘아들 먹이고 싶으신가 보다, 역시 시어머니’하며 서운함이 잠깐 스쳐 지나가고 말았을 별 것 아닌 사연이었을 텐데. 그때의 어머님은 아마도 밉상 시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잠시나마 며느리에게 미안했으리라. 그렇지만 며느리 스스로가 귀한 것에 눈길조차 주지 못하게 된 그 상황이 어쩐지 두고두고 마음 한켠에 남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