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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C Apr 01. 2020


이별과 억지로 이별하지 말 것

<그리움 하나> 

- 충분히 그리워하지 않고 어떻게 떠난 사람을 잊을 수 있을까.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해야 한다. 더는 아프지 않을 때까지.      

 


    4월만 돌아오면 더욱 먹먹해지는 가슴 때문에 사실 조금 힘들다. 그 안에서 얼른 나오라고 하지 못한 게 전부 내 탓인 것만 같아서 용서를 구할 수도 없을 만큼 미안하다. 죽음은 떠난 이가 아닌 남겨진 이의 몫. 모든 이별에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 왔다가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린데, 전혀 모르는 꽃들의 스러짐에도 이렇게 아픈데, 갑자기 들이닥쳤건 예고된 방문이건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이를 완전히 떠나보낸 경우라면 오죽할까. 하지만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각박한 삶은 죽음을 빨리 잊으라고만 한다. 그야 남겨진 이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그런다고 칠 수도 있지만, 맵차게 정리하지 못하는 게 마치 잘못인 양 함부로 가르치려 드는 건 정말 못 봐줄 일이다. 어느 고명하신 분은 심지어 모멸 가득한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징하게 해 쳐 먹는다”고. 나는 귀를 씻고 싶었다. 그 말을 안 들은 귀가 있다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사고 싶었다.      

    

충재종택

    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몇 년 전 충재종택에 다녀온 후부터 나는 억지로 죽음을 잊으려 하지 않는다. 충재종택에 갔을 때, 그곳 사랑에는 여막(상제가 기거하는 초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버님께서 지난해 여름 돌아가셔서 현재 상중입니다.”

    충재 권벌의 19대 차종손(종손이 상을 당하면 장자가 종손의 지위를 승계하는데, 삼년상을 마치기 전까지 ‘다음 차례 종손’이라는 뜻의 ‘차종손’이라 불림)은 부친이 살아있을 때처럼 아침저녁으로 여막에 들러 문안인사를 드리고 초하루와 보름에 삭망제사를 올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솔직히 요즘 시대에 너무 겉치레에 치중한 과한 상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차종손의 아내인 차종부가 말했다. 

    “헤어지는 데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만 해요.”

    종가의 초상은 대단히 큰 규모로 치러진다. 특히 충재종택처럼 이름난 가문은 더 그렇다. 장례가 끝나고도 끊임없이 조문객이 방문한다. 그녀는 상을 치르고 조문객을 받느라 정신이 없어서 남편이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했다. 삼 년은 그런 남편이 이제는 가고 없는 분을 조용히 기리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 슬퍼하면서 슬픔을 떠나보내는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충재종택의 차종부와 차종손. 삼년상이 끝난 지금 어엿한 종부와 종손이 되었다.

    사실 삼 년은 차종손만이 아니라 남겨진 모든 가족을 배려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차종부에게는 항상 웃는 얼굴로 살갑게 대하며 사랑을 주셨던 시아버지, 아이들에게는 부모 몰래 용돈을 챙겨주셨던 할아버지, 특히 삼남매 중 막내(2007년 일찌감치 종가로 들어온 이후 낳은 아이)에게는 한 알 한 알 돌을 정성스레 닦고 말려서 바둑을 가르쳐주셨던 할아버지이자 재미있고 알기 쉽게 천자문 강습을 해주셨던 할아버지다. 아, 그 천자문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40년 전 이미 차종손이 똑같은 방법으로 배웠던 낡디낡은 책이다. 이렇게 남겨진 것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충재종택

    한마디로 삼 년이라는 시간은 이 가족에게 단지 형식적인 고행의 시간이 아니라 잘 잊기 위한 시간이었다. 충재종택을 방문하기 전까지 나는 안 좋은 일들은 빨리 잊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얼른 기억에서 지워야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일부러 그 일들을 떠올리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충재종택의 가족은 내게 그러지 말라고 했다. 이별과 억지로 이별하려 들지 말라고 했다. 진정 살고자 한다면 이별을 잘 해야 한다, 충분히 슬퍼하고 추억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와서 새롭게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했다.      

    내 4월의 슬픔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스러진 4월의 꽃들에 대한 미안함도 역시 충분하지 않다. 슬픔과 미안함의 힘으로 관례가 바뀔 때, 비로소 나는 충분히 슬퍼했고 충분히 미안해했다고 말할 것이다. 4월만 되면 더욱 먹먹해지는 가슴 때문에 일상이 조금 지장을 받을지라도 나는 더 슬퍼할 것이다. 더 미안해할 것이다.                


#세월호 #그리움 #이별 #충재종택 #종부 #종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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