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와 쫄보 사이
완주 쉐어하우스 면접을 보고 왔다. 완주로의 이주를 결정할 수 있었던 데에 큰 역할을 해준 쉐어하우스. 쉐어하우스는 보증금 없이, 월 5만원으로 투룸을 두 명의 청년이 나눠 쓸 수 있다. 1년 계약 후 최대 3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아빠와 함께 완주에 갔다. 사업 상 출장이 잦았던 아빠지만 완주는 처음이라고 했다. 고속도로를 나와 완주 군청에 가까워졌을 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낮잠 자고 싶은 동네네." 낮은 건물들이 드문드문 자리잡은 한적한 풍경이었다. 아빠는 이어 말했다. "우리 딸이 이런 곳에서 살 거라니 난 좀 슬프다." 그 말을 듣자 혼자 왔을 때 느꼈던 완주의 소박함, 고즈넉함, 평온함이 영 못미덥게 느껴졌다. 지역을 보는 아빠의 시선이 어떤 건지 알고 있었기에 그럴듯한 언어로 지역으로의 이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내게 어떤 시도인지 포장하여 설득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 청년마을에서 만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귀촌을 한다고 하면 청년의 대표가 되어서 야심만만한 비전을 내세우고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아요. 저는 그런 야망이 전혀 없는데."
서울에서는 소비와 소유에의 욕망이 먼지처럼 꾸준히 쌓인다. 나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인간, 비인간 동물, 땅과 연결되어 살고 싶고, 내가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소규모의 삶을 꾸리고 싶다... 사실 이건 거창하게 포장한 말이다. 완주행은 일종의 실험이자 시도이다. 귀촌이 '일 년살이'가 될 수도 있다. 로컬에 대한 관심이 크고 지역살이에 대한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고 말하기엔 영 멋쩍다. 서울 아닌 곳에서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으므로. 다른 지역에서의 일상은 서울에서의 일상과 어떻게 다를지, 내게 더 맞을지 알아보는 시도.
그렇지만 이런 속내를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빠는 완주행을 도피로 여겨버릴 것이 분명했다. 아빠와 나는 몹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니까. 너 좀 "멋지게" 살고 싶지 않니. 여유롭게,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 에서 좋은 차도 끌면서. 그런 욕심은 없니? 때때로 고급스러운 와인도 마시고 뮤지컬도 보러 다니고. 아빠는 네기 더 나이 먹기 전에 널 완전히 내던지면서 일에 전념하며 커리어를 좀 쌓았으면 좋겠어. 완주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내 진로에 대해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외국에 나가는 건 어때? 차라리 더 큰 세상으로 나가 보는 건 어때? 서울이 싫은 거면 호주는 어때?
완주로 이주를 결심했을 때에 친구들은 대체로 멋있다거나 대단하다는 반응이었다. 그중에는 이미 스무 살 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살기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너는 스무 살 때 이 대단한 걸 이미 했어."하고 말해도 그는 "나한테는 서울로 오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을 뿐이야."라고 대답했다. 귀촌은 상경과 다르게, 당연하지 않은 행보이다. 보편적이지 않기에 확고한 신념과 포부를 가져야 할 것만 같았다.
이주는 진작 결정했으나 쉐어하우스 면접을 보면서 비로소 귀촌을 실감했다. 고봉밥 캠프와 한 달 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자 담당자는 내가 이미 네트워킹이 충분히 되어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그 말에 뜨악하며 내가 정말로 완주에서 살게 되는구나! 현실감이 들었다. 이제부터 연고 없는 지역에서 지금껏 이어온 관계들과 멀어진 채 혈혈단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0부터 새로 일상과 관계를 시작해야 하는 생활의 과제를 맞닥뜨리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새 터전, 새 일상, 새 사람. 기백 넘치는 다짐을 해보다가 쫄보처럼 쭈그러드는 날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