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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16. 2024

이제 시작, 쉐어하우스

전사와 쫄보 사이

완주 쉐어하우스 면접을 보고 왔다.  완주로의 이주를 결정할 수 있었던 데에 큰 역할을 해준 쉐어하우스. 쉐어하우스는 보증금 없이, 월 5만원으로 투룸을 두 명의 청년이 나눠 쓸 수 있다. 1년 계약 후 최대 3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아빠와 함께 완주에 갔다. 사업 상 출장이 잦았던 아빠지만 완주는 처음이라고 했다. 고속도로를 나와 완주 군청에 가까워졌을 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낮잠 자고 싶은 동네네." 낮은 건물들이 드문드문 자리잡은 한적한 풍경이었다. 아빠는 이어 말했다. "우리 딸이 이런 곳에서 거라니 슬프다." 말을 듣자 혼자 왔을 때 느꼈던 완주의 소박함, 고즈넉함, 평온함이 영 못미덥게 느껴졌다. 지역을 보는 아빠의 시선이 어떤 건지 알고 있었기에 그럴듯한 언어로 지역으로의 이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내게 어떤 시도인지 포장하여 설득해야 것만 같았다.


언젠가 청년마을에서 만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귀촌을 한다고 하면 청년의 대표가 되어서 야심만만한 비전을 내세우고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아요. 저는 그런 야망이 전혀 없는데."


서울에서는 소비와 소유에의 욕망이 먼지처럼  꾸준히 쌓인다. 나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인간, 비인간 동물, 땅과 연결되어 살고 싶고, 내가 정성을 다할 수 있는 소규모의 삶을 꾸리고 싶다... 사실 이건 거창하게 포장한 말이다. 완주행은 일종의 실험이자 시도이다. 귀촌이 '일 년살이'가 될 수도 있다. 로컬에 대한 관심이 크고 지역살이에 대한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고 말하기멋쩍다. 서울 아닌 곳에서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으므로. 다른 지역에서의 일상은 서울에서의 일상과 어떻게 다를지, 내게 더 맞을지 알아보는 시도.


그렇지만 이런 속내를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빠는 완주행을 도피로 여겨버릴 것이 분명했다. 아빠와 나는 몹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니까. 너 좀 "멋지게" 살고 싶지 않니. 여유롭게,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 에서 좋은 차도 끌면서. 그런 욕심은 없니? 때때로 고급스러운 와인도 마시고 뮤지컬도 보러 다니고. 아빠는 네기 더 나이 먹기 전에 널 완전히 내던지면서 일에 전념하며 커리어를 좀 쌓았으면 좋겠어. 완주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내 진로에 대해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외국에 나가는 건 어때?  차라리 더 큰 세상으로 나가 보는 건 어때? 서울이 싫은 거면 호주는 어때?


완주로 이주를 결심했을 때에 친구들은 대체로 멋있다거나 대단하다는 반응이었다. 그중에는 이미 스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살기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너는 스무 살 이 대단한 걸 이미 했어."하고 말해도 그는 "나한테는 서울로 오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을 뿐이야."라고 대답했다. 귀촌은 상경과 다르게, 당연하지 않은 행보이다. 보편적이지 않기에 확고한 신념과 포부를 가져야 할 것만 같았다.


이주는 진작 결정했으나 쉐어하우스 면접을 보면서 비로소 귀촌을 실감했다. 고봉밥 캠프와 한 달 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자 담당자는 내가 이미 네트워킹이 충분히 되어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그 말에 뜨악하며 내가 정말로 완주에서 살게 되는구나! 현실감이 들었다. 이제부터 연고 없는 지역에서 지금껏 이어온 관계들과 멀어진 채 혈혈단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0부터 새로 일상과 관계를 시작해야 하는 생활의 과제를 맞닥뜨리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새 터전, 새 일상, 새 사람. 기백 넘치는 다짐을 해보다가 쫄보처럼 쭈그러드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새 집을 지키는 명태(이름은 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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