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장 인간다운 최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

by 느리게걷는여자
SE-5942aa32-d925-473a-ae5b-31eaf26e5ef1.jpg?type=w800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가장 인간다운 최선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제목부터 이미 역설적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말은 언뜻 완전한 만족을 뜻하는 표현이지만, 정작 영화 속 인물들은 부족함, 결핍, 불안, 강박, 상처로 가득 차 있다. 이 제목이 힘을 갖는 이유는 ‘완벽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가장 인간다운 최선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멜빈 유달이라는 기이하고도 매력적인 인물이 있다.


1. 예민함과 결핍으로 구축된 방어막

멜빈은 첫 장면부터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강박적 손 씻기, 타인에 대한 폭언, 반복적인 루틴, 단단한 경계. 하지만 그의 예민함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세계가 준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만든 과잉의 방어막이다. 욕설과 냉소는 타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에게 향한 공포의 증거다. 그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만, 사실 누구보다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멜빈의 변화를 ‘극적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상적 접촉에서 출발시키는 데 있다. 이웃사람 사이먼의 개를 억지로 돌보면서, 멜빈은 오랜 시간 닫아놨던 감정의 근육을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한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개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사람이 만든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작은 계단을 놓아준다.


2. 사랑이라는 변수가 가져온 ‘균열’

캐롤의 존재는 멜빈에게 가장 큰 균열을 만든다. 그녀는 그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그의 방어막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다. 멜빈이 캐롤에게 끌리는 이유는 단순한 호감이 아니다. 그녀 앞에서만큼은 자신이 만든 규칙들이 무너지고, 그 무너짐이 자신의 파멸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처음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가 캐롤에게 “당신 때문에 내가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라고 말할 때, 이는 로맨틱한 고백이 아니라 멜빈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인생 최초의 치료처방이다. 타인을 위해 변하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 내면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다.


3. 가장 인간다운 최선: Perfect가 아닌 Good Enough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완벽함’이 아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을 기대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어설프다. 그러나 영화는 말한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good as it gets)이 존재한다고.

멜빈의 변화는 급격하지 않다. 그는 여전히 불편하고, 불친절하며, 완벽하게 고쳐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완벽한 변화가 아니라 관계를 향한 최소한의 움직임, 그리고 그 움직임이 가져오는 의미다. 인간의 성장은 선형적 진보가 아니라, 끊임없는 실패와 작은 회복이 반복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멜빈은 몸으로 증명한다.


4. 철학적 의미: 인간이라는 존재의 미완성과 그 아름다움

멜빈의 여정은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해가는 운동’과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의 본질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선택하고 만들어간다. 또한 융의 관점에서 보면, 멜빈은 오랜 시간 억압해온 감정성과 타자에 대한 개방성을 캐롤과의 관계를 통해 통합하면서 ‘개성화 과정’을 시작한다.

즉, 멜빈은 완성된 영웅이 아니라 미완의 인간이 어떻게 조금 더 나은 자신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표본이다. 니체의 위버멘쉬가 말하는 ‘자기극복’의 요소가 있다면, 멜빈은 ‘완벽한 인간’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뒤, 그 한계를 조금씩 넘어보려는 너무나 인간적인 자기극복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5. 결론 —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as good as it gets”의 의미

영화의 제목은 완전함을 선언하는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질문에 가장 정직하게 답하는 문장이 있다.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게 해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멜빈은 인간의 결함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지닌 변화의 가능성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의 여정은 영웅적이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사소하고 투박한 시도, 서툰 표현, 불완전한 배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작은 변화의 조각들이 쌓여 인간다움의 본질을 드러낸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찬양이 아니라 아이러니다.

완벽하기 때문에 더 좋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조금 덜 아프게 해주는 순간들이 바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뜻이다. 상처 난 인간이 또 다른 상처 난 인간을 만나, 서로를 조금 더 견디게 만드는 일—그 소박한 기적이야말로 영화가 말하는 최고의 순간이다.


그리하여 As Good As It Gets는 선언이라기보다 질문이며, 결론이라기보다 여정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 덕분에 조금 나아지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선’이란 완벽함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불완전함이라는 사실을.



***명장면: https://youtu.be/0q8RjlnLNeY?si=oP-Kjm1i32bTC0J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더 와이프(The Wife,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