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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콜>, 슬픔의 숲에서 발견한 두 갈래의 마음

"나쁜 마음"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진실을 위로하다

by 느리게걷는여자

1. 붙잡고 싶은 절박함과 놓고 싶은 간절함 사이의 고백

상실 앞에서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해지는가.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영화 《몬스터 콜A Monster Calls》은 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미로를 코너라는 소년의 눈을 통해 정직하게 따라간다.

엄마의 투병이 깊어질수록, 매일 밤 코너를 찾아오는 거대한 주목나무 몬스터는 단순히 판타지 속 존재가 아니다. 그는 코너의 억압된 내면, 즉 '말할 수 없는 진실'의 형상이다.

코너는 고백한다.

“난 그런 내 마음이 싫은데.......그 마음대로 돼버렸어.

엄만 나 때문에 죽는 거야.”


이 절규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싶지 않은 절박함과, 너무나 고통스러운 현실이 차라리 끝났으면 하는 간절함이 한마음 안에서 충돌하는 양가감정의 극단이다. 우리는 종종 이 모순을 느끼는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 단정하며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그러나 몬스터는 이 모순이 바로 인간의 진실임을 선언한다.

“넌 네 고통이 끝나길 바란 것뿐이야. 그건 너무 당연한 거야.”


이 짧은 문장은 영화 전체의 핵심을 관통한다. 복잡한 감정은 선(善)과 악(惡)으로 나눌 수 없다. 그것은 고통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며, 단죄와 죄책감이 아닌 이해와 위로가 필요한 영역이다.


2. 융의 ‘그림자’, 모순을 직시하는 용기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인간의 성숙은 ‘그림자(Shadow)’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림자는 우리가 외면하거나 억압해온 감정들—미움, 질투, 분노, 책임 회피—의 은밀한 저장고다. 몬스터가 바로 코너의 그림자이자, 코너가 스스로 인정하기 두려워했던 진실의 목소리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말한다.

“진심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지”


이 문장은 양가감정의 본질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다. 사람의 마음은 단선적이지 않다. 사랑과 원망,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제3자(몬스터)가 대신 인정해주는 순간, 코너는 죄책감이라는 가장 무거운 족쇄에서 풀려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감정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이분법화하여 나쁜 감정을 억압하려 하지만, 융이 말했듯 그림자도 내것으로 인정하고 포용할 때 비로소 사람은 하나의 온전하고 입체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코너의 성장은 바로 ‘모순을 직시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3. 장자의 시비론(是非論), 선악의 선을 내려놓을 때

코너의 내적 모순은 동양 철학, 특히 장자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장자는 세상을 '옳다(是)'와 '그르다(非)'로 나누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앎에서 멀어진다고 보았다.


영화 속 왕자와 약제사의 세 가지 이야기는 장자 철학을 판타지적으로 비춰준다.

살인자이면서 동시에 좋은 왕이 된 왕자, 성격은 못됐지만 생각은 옳았던 약제사, 눈에 띄면 더 외로워지는 투명인간, 이들은 모두 경계를 단정지을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실체를 보여준다.


이 모순은 코너의 마음과도 연결된다. 코너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엄마가 고통과 함께 떠나버리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느낀다. 아들이면서 죄인 같은 감정을 느끼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이 관계가 끝나길 바라는 마음은, 인간 삶의 복잡한 층위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것들이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이 말하듯, 나비의 꿈인지, 사람의 꿈인지 분간할 수 없듯 한 사람의 마음 역시 빛과 그림자, 사랑과 미움이 함께 꿈틀거린다. 《몬스터 콜》은 바로 그 모순을 “인간다움”이라는 본질로 옹호한다.


4. 손을 놓지 않으면서, 결국 놓아주는 사랑의 역설

이 영화가 특별히 마음에 깊이 들어온 건 나의 오래된 감정의 지층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진 것 하나 없던 형편에서도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땀에 젖은 소금꽃 핀 작업복을 입고 나를 키워낸 아버지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와 애틋함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날 아프게 했던 말과 행동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깊은 원망과 미움도 공존했다. 감사와 원망, 사랑과 미움이라는 상충하는 감정들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지 오랫동안 나 자신을 탓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쪽 마음을 억누르며 그런 내자신을 미워했다.


그러나 코너를 통해 지금은 안다. 그 복잡하고 상충하는 감정들 또한 '나의 진실'이었다는 것을. 감사와 사랑, 원망과 미움으로 쪼개져 있던 두 갈래 마음을 인정하고 통합했을 때, 비로소 '아버지'라는 '한 사람'을 입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빛나는 순간뿐만 아니라 가장 어두운 층위까지 모두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의 절정, 코너는 마침내 자신의 가장 깊은 진실과 조우하게 된다.

“엄마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냥 끝났으면 좋겠어.”


사랑과 고통이 서로를 끌어안는 이 고백의 순간, 코너는 엄마의 손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엄마를 보내줄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얻는다.


그리고 몬스터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뭘 하느냐가 중요하지."


우리는 누구나 모순적인 마음을 지닌다. 그 사실을 부정할 때 우리는 죄책감에 빠진다. 복잡한 마음의 결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할 때, 우리는 죄책감의 늪에서 벗어나 조금 더 따뜻하고 용기 있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몬스터 콜》은 상실을 다루지만, 결국 '자기 이해'와 '용서'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솔직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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