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름다움과 가장 인간적인 틈새에 대하여
파올로 소렌티노의 영화 <그레이트 뷰티>(La Grande Bellezza)는 로마의 찬란한 표면 아래 감춰진 오랜 질문 하나를 집요하게 되묻는다. “과연 이 현란한 세계 속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역설적인 답은, 104세 성녀의 짜증에서 비롯된다.
1. 화려함의 내부자: 젭 감바르델라의 공허
65세의 작가 젭 감바르델라는 젊은 시절 단 한 편의 걸작 소설을 남긴 후, 40년간 글을 쓰지 못했다. 그는 로마 최상류층의 왕이자 냉소적인 관찰자로 군림하며, 파티와 환락, 예술과 명성이 뒤섞인 상류 사회의 소용돌이 속을 배회한다. 사람들은 그를 '우아하게 늙은 남자'라 칭송하지만, 정작 젭은 누구보다 그 화려함의 그림자, 즉 공허를 잘 알고 있다.
그가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재능의 소멸이 아니라, ‘본질적 아름다움’을 좇아 도시를 헤맸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의 밤을 지배하는 시끌벅적한 파티 속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과시하고 소비하는 인간들의 허영을 목격한다. 화려한 조명이 꺼진 새벽, 숙취와 피로가 남긴 적막 속에서 젭은 자신이 쫓던 ‘위대한 아름다움’이 사실은 결핍과 허상의 이름으로만 존재한다는 역설을 직시한다.
2. 성녀의 짜증: 이데아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젭의 방황이 절정에 달했을 때, 104세 성녀가 그의 삶에 등장한다. 세상은 그녀를 신앙심과 기적의 상징, 즉 아름다움과 경건함의 완벽한 표상으로 숭배한다. 그녀는 젭이 평생 찾던 플라톤적 이데아에 가장 가까운 현신처럼 보인다.
성녀는 젭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나는 뿌리만 먹습니다. 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젭은 이 단순한 문장에서 삶의 근원(뿌리)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표면의 화려함(열매)이 아니라, 그 아래 숨겨진 본질(뿌리)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이다.
하지만 영화는 곧바로 이 숭고한 깨달음을 성녀의 짜증으로 전복시킨다. 모두에게 칭송 받는 그녀는 자신을 가장 가까이서 시중드는 이들에게는 가차 없는 투정과 예민한 짜증을 쏟아낸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관객에게 묻는다.
성스러움이라는 '위대한 아름다움'조차
왜 인간적 피로와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성녀의 짜증은 곧 "완벽한 아름다움은 허상이다"라는 선언이다. 이데아적 완전함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으며, 성스러움조차 지극히 인간적인 결함과 공존할 때만 비로소 현실의 의미를 갖는다. 그녀의 짜증은 완벽함을 향한 인간의 모든 강박과 환상을 향한 통렬한 조롱인 것이다.
3. 플라톤과의 대결: 불완전함 속의 미학
<그레이트 뷰티>는 성녀의 역설을 통해, 서구 철학을 지배해 온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정면으로 대결한다.
젭이 40년간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그가 완전한 아름다움이라는 실체를 저 너머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의 파티를 경멸하면서도, 그 파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완벽한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성녀의 짜증이 증명했듯, 아름다움은 고정된 '근원'이나 '실체'가 아니다. 젭이 평생 쫓아온 '본질적 아름다움'도 실체가 아니라, 삶의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순간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다.
4. 현대인의 삶: 위대한 아름다움을 가장한 강박
이 질문은 로마 상류층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완벽한 커리어, SNS 속의 이상적인 삶, 의미 있는 성취라는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좇으며 스스로를 압박한다. 완벽함을 향한 집착은 때로 우리 안의 모순과 틈을 은폐하려 하지만, 결국 우리를 젭처럼 끝없는 공허와 권태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말한다. 바로 그 틈에서만 진짜 아름다움이 스며든다고. 불안의 진동, 흔들리는 선택, 미완성의 순간들. 우리는 완벽함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인간적인 피로(성녀의 짜증)'를 인정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자신의 불완전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5. 결국 ‘그레이트 뷰티’란 무엇인가?
영화의 종반, 젭은 마침내 로마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한다.
“삶은 허튼 소리(blah, blah) 속에 숨겨진 온갖 잡담과 소음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그 허튼 소리 속에는 성녀의 거칠음과 성스러움이 공존하듯, 젭의 방황과 통찰이 하나의 결을 이루듯, 누추함과 숭고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삶의 전체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그레이트 뷰티>는 이데아를 향한 헛된 열망 대신,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며 피어나는 조용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은 완벽한 곳이 아닌, 가장 인간적인 틈새, 즉 우리의 모순과 짜증,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삶의 리듬 속에서 창조된다. 그리하여 삶은 짜여진 틀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선택하고 상상하며 완성해나가는 픽션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