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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타임>우리는 모두 '시간 여행자'다

실패해도 괜찮아: B와 D 사이, '선택'을 다시 쓸 수 있는 용기

by 느리게걷는여자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이라는 환상적인 장치를 사용하지만, 정작 영화가 우리를 데려가는 풍경은 화려한 세계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이다. 작은 실수부터 하이킥을 날리게 되는 순간들까지,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로 넘쳐나는 우리네 삶에 대하여 영화는 다정한 방식으로 묻는다.

“만약 되돌릴 수 없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따뜻한 반짝임이다.


1. 실패해도 괜찮아: B와 D 사이, '선택'을 다시 쓸 수 있는 용기

주인공 팀 레이크에게는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남다른 능력이 있다. 벽장 같은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 주먹을 쥐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바로 그 기억 속의 자신으로 돌아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 사춘기 시절의 파티처럼 보잘것없는 기억부터, 사랑하는 메리를 만나기 위한 절박한 반복까지. 그는 되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다시 선택하는 삶’을 산다.


흥미로운 건, 그가 돌아가는 순간 대부분이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말 한마디의 어색함, 타이밍을 놓친 고백, 사소한 오해 등. 팀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완벽한 결과'를 만들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깨닫는다. 삶은 커다란 선택보다도 ‘작은 선택과 우연들의 집합’으로 만들어지며, 완벽하게 통제될 수 없다는 것을.


사르트르가 “B(탄생)와 D(죽음) 사이에는 C(선택)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팀의 시간여행은 결국 '더 나은 선택'을 찾는 과정이다. 그 선택은 언제나 마음을 반영한다.

우리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되찾고 싶어 하는가?

선택은 그 질문에 대한 조용한 대답이다.


2. 시간의 '여행자'와 삶의 '독자' ― 삶이라는 원고를 함께 읽는다는 것

팀과 메리의 만남은 단순한 로맨스 이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가 만나는 장면처럼 보인다.


팀은 시간을 되돌리며 순간을 ‘바꾸려는 사람’이다. 더 좋은 행동, 더 나은 말, 더 완벽한 타이밍을 찾아 조정한다. 그는 삶을 직접 고쳐 쓰는 사람, 즉 시간의 여행자다.

반면 메리는 출판사에서 원고를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다. 이미 쓰인 문장을 읽고 그 속에 담긴 마음을 해석하려는 사람이다. 그녀는 삶을 ‘해석하고 음미하는 사람’, 즉 성찰하는 독자다.


이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꾸리는 과정은 마치 “오늘이라는 미완의 원고를 함께 읽고 완성해가는 작업” 같다. 팀이 결국 시간여행 능력을 쓰지않고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기로 결심할 때, 그는 비로소 메리에게서 배운 ‘독자로서의 태도’를 장착한다. 삶을 수정하기보다 현재의 순간 자체를 읽고 느끼는 방식을 받아들인 것이다. 더 이상 되돌리지 않는 대신, 메리처럼 그 하루를 “있는 그대로 읽는다”. 어떤 문장은 슬프고, 어떤 문장은 따뜻하며, 어떤 문장은 그냥 평범한 문장일 뿐인 것처럼.


3. 마지막 페이지에서 던지는 물음: 위대한 유산은 무엇인가?

영화 후반부, 팀의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찰스 디킨스의 문장을 읽어주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서를 가장 잘 보여준다. 이 장면은 디킨스의 소설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의 주제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소설 속 핍이 거창한 '특별한 유산'을 좇아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놓칠 뻔했듯, 팀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리적인 초능력 대신 진짜 '위대한 유산'을 남긴다.


그 유산은 바로 '좋았던 순간을 천천히 음미할 줄 아는 마음'이다.


팀이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와 마지막 산책을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서로의 손을 맞잡은 온기, 해변의 바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짧은 침묵. 죽음-소멸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떠나지만, 그 순간만큼은 팀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온기가 된다. 팀은 알게 된다. ‘위대한 유산’은 일상의 작은 반짝임들을 음미하고 소중히 하는 태도라는 것을.


4. 결국, 우리는 모두 '시간여행자'다

영화 속 팀의 시간여행 능력은 사실 우리 모두가 가진 능력, 즉 기억과 성찰을 은유한다. 우리는 실제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향기 하나, 음악 한 소절, 누군가의 표정만으로도 과거로 이동한다. 기억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시간을 움직이고, 그 기억 덕분에 오늘의 선택이 달라진다.


팀은 아버지의 조언대로 “하루를 두 번 사는 실험" 을 해본다. 첫 번째 하루는 늘 그렇듯 분주하고 성급한 '성찰 없는 삶'이었다면, 두 번째 하루는 시선이 달라져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면, <어바웃 타임>은 바로 그 성찰을 통해 삶을 깊이 이해하고 누리는 다음 단계, 즉 '음미'를 제시한다.


두 번째 하루, 그는 점원의 지친 얼굴을 알아보고, 동료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창가로 스며드는 조용한 햇살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영화 속 팀은 초능력을 빌려 다시 보게 되지만, 사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시선을 조정하면 이미 우리가 매일 발견해 낼 수 있는 것들이다.


결국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안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삶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작은 문장들의 연속이다. 우리는 언제든 '오늘'이라는 문장을 다시 쓰고, 다시 읽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는 작품의 작가이자 독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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