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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나 Sep 20. 2021

천방지축+좌충우돌, 나의 첫 오프라인 마라톤 도전기!

2020년 10월 잠실, '서울마라톤'의 열기를 떠올리며...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마라톤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었던 2020년.

덕분에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가 편한 시간에 목표 거리를 완주하고 기록을 인증하는 언택트(비대면) 방식의 대회들이 새롭게 생겨났고, 또 각광을 받은 한 해였다.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오프라인으로 열린 ‘서울마라톤’이 개최된 지 어느덧 1년이 되어 간다. 코로나 시국에 마라톤에 입문한 나에게는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오프라인 마라톤 대회인 ‘2020 서울국제마라톤.’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본다.

주최 측에서 멋지게 찍어주신, 달리는 내 모습

오전 8시 시작 조에 참가 신청을 했다. 오프라인 레이스 당일, 여유 있게 7시까지 경기장에 도착하기 위해 5시 30분의 기상령을 넘는 것부터가 고비였다...!

경기장에 설치된 피니시 게이트와 각종 계측기기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경기장에 도착해 손 소독을 마치고, 지정된 자리에 미리 세팅되어 있던 물품 패키지를 확인했다. 내 배번은 '5조-701번'으로, 7번 레인의 첫 번째 주자였다. 배번이 랜덤으로 배정되는 마라톤 대회에서, 레인의 스타트를 끊고 잠시나마 넓은 트랙을 독주하는 1번 주자로 달릴 기회가 내 생애 몇 번이나 찾아올까. 내가 운이 그리 나쁘진 않은가 보다. (물론 이 생각은 머지않아 보기 좋게 산산조각 났지만.)

소지품 보관용 비닐을 살펴보는 내 모습
배번을 착용하고 인증샷! 가장 두근대던 순간

환복, 배번 착용 등 각자의 자리에서 준비를 마치고, 트랙으로 내려와 각자 워밍업을 시작했다. 배번을 옷에 고정할 때 필요한 작은 옷핀이 네 개여야 하는데 세 개뿐인 것을 발견하고 당황했는데, 그냥 세 곳만 고정하고 뛸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첫 번째 대회인 만큼 아쉬움 없이 치르고 싶어 용기를 내어 운영진에게 요청하니 신속하게 해결해주셨다.


워밍업이 끝나고 각 레인별로 일렬로 모였는데, 7번 레인 주자들을 모은 운영진이 우리를 보조경기장으로 인솔하는 것이었다. 궁금해진 나는 '저희는 보조경기장에서 뛰나요?'라고 질문했고, 운영진은 '네.'하고 짧게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나의 질문을 '저희는 보조경기장에서 뛰(기 시작하나)요?'로 이해하고 대답해주신 게 아닌가 싶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나는 단순히 '아, 우리 조는 보조경기장만 열심히 뺑뺑이 돌면 되나 보다~! 주경기장을 달려보고 싶었는데 아쉽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것이 바로 내 비극의 시작이었다. 사실은 참가자 간 거리두기를 위해 조별로 시작 지점을 달리해 출발하는 것이었을 뿐, 모든 러너들이 주경기장+보조경기장을 이어 놓은 같은 형태의 10km 주로를 달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처음부터 7 레인은 보조경기장만을 뛰면 되는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나는 보조경기장 첫 번째 랩에서 주경기장으로 이어진 게이트를 자연스럽게 지나 보조경기장을 한 바퀴 더 돌았다. 하필 시작하자마자라서 지켜보는 운영진이 아직 아무도 없던 사각지대에서 나는 '어? 꼬깔콘이 이상하게 놓여있네?' 하며 오히려 주최 측을 책망하며, 주경기장으로의 방향 유도 꼬깔콘을 멋지게 뛰어넘어 잘못된 주로로 신바람 나게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따로 없네... 왜 보여 줘도 보지를 못하니!

그날의 나의 흔적


그러다 정말 어느 순간, 주경기장과 연결된 게이트에서 우르르 달려 나오는 러너들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주로를 이해하게 됐다. 하... 나는 운명론자도 아니고 또 이게 운명을 탓할 일도 아니지만, '만약 내 앞에 러너 한 명만 있었다면 정말이지 이런 참사는 없었을 텐데. 초심자의 행운을 나는 어디다 갖다 써먹고 온 것일까?'싶었다.


결국 880미터 정도를 더 뛴 채로 나의 랩 1이 카운트되었다. 보조경기장을 한 바퀴 더 뛴 GPS 기록이 지금 다시 봐도 병맛 코미디! 내 서러움을 인증해주는 기록마저 없었으면 세상 억울했을 것이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거리는 10km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직 기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혹시나 중간에 운영진이 이런 나의 딱한 처지를 이해하여 주로를 조금 단축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어이 달리던 중간에 양해를 구해보았지만, 피니시 기록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센서를 소지하고 페달을 꼭 밟아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냥 끝까지 뛰는 수밖에 없겠구나. 기록에 대한 미련을 버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초반에 실수 아닌 실수로 인한 억울함이 경기 내내 지속되긴 했지만 무엇이든 시작보다는 그 마무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며 나 자신을 달랬고 또 자책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달렸다. 그 결과 1시간 5분 29초라는 기록(10.88km)으로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그렇다면 10km의 기록은 날아간 걸까 싶었는데 다행히 스트라바 앱을 살펴보니 10km 컷은 59분 38초로 완주한 기록이 저장되어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모든 것을 잊은 포토타임!

리얼 트랙에서 달리는 마라톤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라 해도 하기 어려울 황당한 실수를 한 것에 아쉬움이 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앞으로의 내 러닝 라이프에서 두고두고 회상하며 이야깃거리로 삼을만한 추억이 생긴 것 같아 좋기도 하다.(정말...?ㅋㅋㅋ)


행사가 끝나고 2주 뒤, 서울마라톤 공식 인스타그램 페이지에는 참가자 및 스태프 중 코로나 확진자 및 감염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잘 지키며 참여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제로'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걱정은 안도감으로 변했고 동시에 놀라움으로 조금은 닭살이 돋은 것도 같았다.

'코로나19 제로' 서울마라톤 오프라인 레이스. 참 다행이다.


주최 측의 노고와 대회에 참가한 모든 러너들의 협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철저한 대회 준비 그리고 참가자들의 엄격한 개인 방역수칙 준수는, 코로나 시대에 오프라인으로도 안전한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기에 더욱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주경기장을 배경으로 찍은 완주기념 메달


어렵고 답답한 상황 속에서 나에게 새로운 도전의 계기를 만들어 준 서울마라톤.

다시 한번 오프라인 마라톤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 서울마라톤.


다음 오프라인 서울국제마라톤이 몹시나 기다려진다.

멋진 사진을 찍어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항상 행복하시길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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