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80프로 정도의 운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합니다.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도 후천적 장애인이 되어 살아가고 싶은 사람도 없지요. 기후의 악조건과 기근에 시달리는 나라에 살고 싶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예측하기 힘든 우리의 운명에 따라 불행한 인생을 맞기도 운이 좋은 인생을 맞기도 하는 것이지요.
생명의 탄생도 자연의 법칙대로 바라보면 우연입니다. 오랜 생물학적 역사를 타고 내려온 두 남녀의 DNA가 우연하게 운명을 만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누군들 알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역사적 생물학적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진 생물체인지를요.
그러니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잘난 척을 할 일도 위축될 일도 전혀 없는 것이지요. 물론 거기에 노력이라는 플러스 요인이 더해져 더 운이 좋고 아름답고 풍성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지만, 그 노력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에너지(끈기 있는 성격)와 여건(외모, 부모의 재산 등) 또한 타고난 운이 좋아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무쪼록 우리 세상에서는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을 환대하는 것은 맞는 사실이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이 땅에서 태어난 것이 자신이 선택한 일이었던가요? 내가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기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21세기에도 전쟁이 멈추지 않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정말 너무 끔찍하지 않나요? 불평등이 심화되고 정세가 화난 대한민국이지만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일인가요?
재활병원에서 만난 하람이는 희귀병이라고 합니다. 이유로 발달 장애를 겪고 있지요. 엄마가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하람이 동생을 낳을 생각은 없냐고 살짝 물어본 적이 있지요. 현대 과학기술이 참 좋잖아요. 하람 엄마의 DNA와 아빠의 DNA가 만나지 않았다면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았을 일이 두 사람에게 일어나 버린 거라고 해요. 그래서 하람이 동생은 낳을 수 없다고 해요.
하람이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에요. 그러나 아픈 현실이 되었죠. 우리 아들들이 내게 축복이 된 것처럼 하람이도 두 사람에게 축복이어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가끔 이 사실이 슬프답니다. 자식이 아픈 게 나아? 아니면 내가 아픈가 나아? 묻는다면 모든 부모들이 내가 아픈 것이 낫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들은 크나큰 슬픔을 평생 마음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그냥 세상의 굴레가 이럴 뿐이에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세상의 굴레, 인간의 굴레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나라면 그들처럼 할 수 있을까? 아뇨… 저는 그렇지 못할 것 같아요. 아뇨…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저도 엄마니까요. 제가 그들의 내면을 다 알 수 없어서 이런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들을 판단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다른 사람들이 내 내면을 모르고 나의 보이는 모습만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처럼요. 어쩌면 그들의 내면은 엉망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 부모란 그런 것이잖아요. 자식이 잘못되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잖아요.
한 번은 근육병 10대 소녀 가은이 엄마가 제 옆에 앉아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지쳐요. 이젠 지쳐요.” 그러나 가은이 엄마도 병원에 있는 엄마도 늘 밝고 명랑하죠. 그분들에게 저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죠. 아…. 삶은 어떤 역경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살아가면 되는 것이구나. 나름 최선을 다하며 느슨하게 내 보폭대로…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가 아는 하람이와 병원에서 치료받는 많은 장애인을 둔 부모들은 정말 정성 들여 아이들을 양육한답니다. 그럼에도 언제나 긍정하고 유쾌하게. 자신에게 벌어진 사고에 순응하며. 한치의 위축도 없이.
저는 이들의 삶을 보며 자신의 삶에 자만하거나 위축되거나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발견합니다. 지구촌은 연속적 사고의 발생으로 이어져 갑니다. 그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유명 프로그램 게임 까나리액젓 고르기처럼 복불복이에요. 선택의 연속이라는 삶의 굴레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내게 다가오는 사고 같은 것. 지금 내가 안전하다고 해서 내일도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겁니다. 그러니 현재 우리에게 발생한 무엇이 있다면 너무 낙담하지 말기로 해요. 이것은 내가 피할 수 없었던 사고일 뿐이고 세상은 이렇게 순환하며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