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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마음이 큰 근육병 가은이, 정말 감동했습니다

by 헬로해피 최유영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을 하며 근육병 가은이(6학년)를 알게 되었습니다. 가은이는 말수가 적고 늘 엄마의 품에 안겨서 이동하기 때문에 친해질 기회가 없었지요. 3년을 한 병원에서 오며 가며 만났으면서도 말이에요. 장애인 재활치료 병원, 이곳에서의 에티켓은 서로에게 지나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말을 아껴야 하고 함부로 아는 척 금물! 훈수 같은 건 더더욱 금물!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떠한 불편한 시선도 보내서는 안 된답니다. 이렇게 무심한 척 대면대면 지내다 보면 어느 날 자연스럽게 말도 섞게 되고 서로 스며드는 순간을 맞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통하는 친구 사이로 발전하게 된답니다. 저의 일방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관계들이지요.


그런 대면대면한 환경이었지만 저는 가은이랑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가은이는 손만을 쓸 수 있을 뿐, 목도 가눌 수 없고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늘 혼자 있었거든요. 발달장애 친구들과는 달리 많이 외로울 것 같았습니다. 아! 한 번은 내가 돌보는 주헌이 그림책을 사면서 가은이가 읽을 수 있겠다 싶은 예쁜 동화책 한 권을 사다 준 적이 있었어요. 그게 전부였어요. 그리고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겠더라고요. 주책바가지 아줌마로 보일 가봐서요. 말을 걸어보기도 했는데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더군요. 몇 번 오며 가며 가은이를 마주칠 때면 "가은이 안녕!"이라고 말도 붙여보고 노력도 해 보았지만 영 어색해서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이내 저도 포기하고 말았죠.


그런데 오늘 가은이 엄마가 가은이를 데리고 병원 대기실 제 옆자리로 오게 되었어요. 제 옆자리가 가은이 엄마와 친한 친구 자리였거든요. 그렇게 저는 가은이를 재회?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가은이 엄마도 너무 어렵게 생각했는데 옆에서 선생님 선생님 하며 수더분하게 말을 하시는데 제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입니다. 순간 제가 가은이 엄마를 너무 어렵게 생각했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조금 편해져 가은이 엄마와 친구가 러닝크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몇 번 말을 끼어들기도 하였지요.


그러다 저와 가은이 엄마, 그리고 가은이 셋이 남게 된 상황이 생겼습니다. 한쪽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가은이에게 인사를 했지요.


"가은이! 안녕!"

가은이가 조용하고 맑은 미소로 화답을 해줍니다.


가은이 엄마가 제 옆에 앉아서 말을 합니다. 무슨 이야기 끝에 말을 했던 걸까요? 아.. 제가 가지고 있는 시공 주니어 네버랜드 책이 혹시 필요하냐고 물었던 것 같아요. 가은이가 책 읽기를 참 좋아한다고 들었거든요.


"선생님, 우리 가은이 공부 참 잘해요. 전부 100점 맞아요. 제가 핸드폰으로 기출문제를 사진 찍어 공유해 주면 그걸로 공부해요."

"어머 대단하네요. 전에 제가 사준 동화책이 너무 쉬웠죠? 저는 그것도 모르고 너무 죄송해요."


주헌이 엄마에게 가은이가 참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직접 확인을 하니 너무 미안했어요. 동화책이 예뻐서 유아틱 한 책을 사주었으니 말이에요. 저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어요. 가은이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은이 엄마가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가은이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 것이지요.


"가은아, 너 정말 멋지다. 집에 가면 뭐 하니?"

"기구로 운동해요."

"매일 이렇게 병원에 오는데 언제 공부할 시간이 있었던 거야? 수업시간에 잘 듣나 보다."

"네...."

대답하며 말 수 적은 가은이가 미소를 짓네요.


"가은아, 선생님이 정말 미안해. 네 레벨을 모르고 너무 유치하고 쉬운 동화책을 사줬지?"

"괜찮아요."

"선생님 무안할까 봐 네가 참고 말을 안 했던 거야? 선생님 제 수준엔 너무 유치해요, 라고 말을 했어도 되었잖아..."

"....."

가은이가 다시 미소를 짓습니다.

"가은이 정말 마음도 넓다. 선생님이 다시 한번 미안하다. 그럼 시공주니어 책도 너한테 너무 쉽겠다. 그렇지?"

“네…”“


가은이가 다시 조용한 미소로 화답합니다.


우리는 좀 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가은이가 좋아하는 가수가 정원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수재 가은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사실 가은이는 시험공부에 많은 시간을 매진하진 않는다 해요. 앉아서 공부를 하기에도 힘든 체력일 테니까요. 학교수업만으로 자신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은이의 꿈은 대기업에 취업을 하는 것이랍니다. 가은이의 꿈은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과학기술도 의술도 발전하는 만큼 가은이의 근육병도 호전될 테니까요. 직업의 형태 또한 아주 다양해지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요.


아차.. 어쩌면 가은이는 무거운 책을 손에 들고 책을 읽는 것이 힘들지도 몰라요. 이런 경우엔 ebook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친절을 베프는 것도 자신의 마음만 앞서서 일방적이면 폐가 된다는 걸 배우게 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호의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고 해서 상대의 진심마저 왜곡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가은이는 자기 수준에 한참 떨어지는 동화책을 받아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정말 미안한 일이지요. 그러나 가은이는 제 진심을 더 알아봐 주었네요.


저는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배려할 줄 아는 가은이에게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과거의 못나게 굴었던 저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지인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고 멀리했던 기억요. 선을 넘은 그 마음이 진심이란걸 알고있기에. 제 속이 가은이 보다 좁았던 것이지요. 조만간 제 지인을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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