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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학교

by 헬로해피 최유영

자폐스펙트럼 3학년 H를 잠시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H의 지원은 3개월을 못 넘기고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내 지원과 하교 후 ‘방과 후 센터’에 데려다주는 것이 주 활동지원이었습니다.


자폐스펙트럼의 케이스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람마다 성격이나 성향이 모두 다른 것을 생각하면 자폐스펙트럼의 넓은 폭도 가늠이 될 듯합니다. H는 '고기능' 자페스펙트럼이라고 했습니다. 지능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H는 등∙하교나 시간표를 지키는 등 혼자서도 일상적인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과학, 사회)에 한해서는 집중력, 흥미, 성적 모두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비장애 학생보다 더 학습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H에게 부족한 것은 감정 컨트롤과 사회성 부족이었습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공격적인 행동이 주변 친구와 선생님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지난 일을 들어보니 분노조절을 못해 창문을 깨려는, 창문 난간에 매달리는, 거울을 깨려는 등 파괴적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 “칼로 찌를 거예요, 나쁜 놈”, “싫어요”를 달고 사는 부정적인 언어 사용도 문제 행동 중 하나였습니다. H에게 학교 내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필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2가지의 장애물을 넘지 못해 두 달 반개월만에 그만두어야 했지요.


첫 번째는 H 부모와 저의 교육관이 달랐습니다. 부모님은 무조건 아이에게 맞춰주길 원했고 저는 H에게 엄하게 대해서라도 나쁜 건 나쁘다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착화되면 행동 수정이 더 어려운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더 나이 먹기 전에 나쁜 행동 고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보통은 나이 들면 철도 같이 드는데 장애인친구들은 현재의 나쁜 행동이 바로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H 부모는 엄격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 번은 함께 놀이터에 나갔는데 친구들이 미끄럼틀과 그네를 오래 타자 오히려 H 엄마가 유난히 H를 감싸면서 비장애인 친구들의 행동에 대해 비난을 했습니다. 일종에 H에 대한 안타까움, 넘치는 사랑 혹은 피해 의식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기류를 H가 모를 리 없지요. H는 든든한 부모가 있어 좋겠지만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인식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자식을 키우는 모든 부모의 딜레마 같은 것이지요. 내 자식에겐 객관화가 되지 않는 그 안타까운 마음요.


저는 늘 입에 달고 다니는 H의 부정적인 언어로 인해 저까지 피폐해지는 느낌이 들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가르칠 건 가르치며 제 나름대로의 원칙으로 H를 대했던 것 같습니다. H의 응석을 모두 받아 주기보단 무반응으로서,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H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해 주세요. 선생님 자르라고 할 거예요.” 그러는 겁니다. H는 부모님께 제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을 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내일 하루만 H 혼자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하길래 저는 H의 지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해버렸습니다. H에게는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지요. 알고보니 H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서비스를 받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제가 4번째라고 하더군요. 이유가 있겠지요. 저의 변호처럼 느껴지겠지만요.


두 번째,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학교에서의 역할은 무엇인가?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H처럼 돌봄과 보호에 끝나지 않고 학업을 함께 지도해야 하는 경우라면 활동지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H는 등∙하교는 물론 집 근처 미술 학원을 혼자서도 잘 다닐 수 있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은 혼자서도 잘하는 편입니다. 그러므로 H에게 제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는 학교 내 활동지원 서비스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방과 후 센터에 이동시켜 주는 일입니다. 문제는 학교 내에서의 저의 역할이 참 예매했습니다. 제가 할 일은 H의 감정 컨트롤과 부족한 학습 활동을 돕는 것인데, 그게 참 난감했습니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는 보통 1~2개의 특수 학급을 운영합니다. H의 학교는 2반을 운영하고 있죠. 학교 내 장애인 활동지원사나 특수 지도사를 적극 수용하고 있죠. 제가 알기로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학교 내 활동을 반겨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 학교는 장애인 학생에 대한 이해도가 훌륭한 학교라고 여겨졌습니다. 전임 교감 선생님께서 열린 교육관을 가지고 계셔서 만든 운영 방침이라고 합니다.


선생님들께서도 매우 협조적이셨습니다. 솔직히 저라도 외부인이 자신의 수업을 매일 참관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일 것 같았어요. H는 1년 동안 저를 포함 네 분의 활동지원사가 스쳐갔다고 하니 선생님들의 어려움이 충분히 짐작이 되었습니다.


보통 장애인 친구들은 특수학급에서 2교시 수업을 하고 원반(통합수업)에서 나머지 수업을 해야 합니다. 주로 예체능을 함께 하게 됩니다. H의 경우 사회, 과학 과목을 잘 이해할 정도로 학습 능력이 좋기 때문에 국, 영, 수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원반에서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H는 작문이나 필기하는 것을 너무도 어려워했습니다. 아니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와 함께 보낸 처음 며칠은 저의 지도에 따라 글을 줄과 칸을 맞춰 아주 잘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와의 며칠이 지나자 글씨 쓰기와 저의 학습 지도를 모두 거부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조차도 저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 생각을 고수했고요.


초등 3학년 수준은 작문이나 글쓰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H의 학교 생활에서의 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H에게 지원해야 할 제 역할을요.


고백합니다. 저의 부족함이 컸습니다. '싫어요.'가 입에 붙은 H를 비 장애 학생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지도하기란 무척 어렵더군요.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갈까 전전긍긍, H가 문제 행동을 일으킬까 전전긍긍이 학교에서의 제 포지션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 반응, 그냥저냥 넘어가는 것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H를 지도한다는 이유로 큰 소리를 내거나 소란이 일어난다면 다수의 비장애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H가 저의 한계를 모를 리 없었겠지요.


공교육에서의 장애인 교육을 생각해 봅니다. 통합반이라는 공교육 시스템의 가치는 얼마만큼일까.


고기능 자폐 H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 하고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하여 통합반 수업이 필요합니다. 비장애인 학생들이 배려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지요. H에게는 현재의 시스템이 적정할 수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H를 위한 맞춤 교육은 아닌 것이지요. 또 H와는 달리 중증인 정신발달장애인 친구들의 경우, 이것이 참 난감합니다. 중증 정신발달장애인 친구들은 통합교육 자체가 무의미하거든요.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비장애인 친구들의 학습권을 방해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교과학습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은 장애인 친구에게도 힘든 시간이죠.


저는 이렇게 두 그룹의 사회성이 꼭 교과 학습 시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서 저는 특수학교와 일반학교가 한 울타리에 나란히 존재하는 세상을 상상해 봅니다. 학급이 아닌 전문적인 특수학교와 일반학교를 한 울타리 안에 짓는 것입니다. '따로 또 같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지요. 왜 사람들이 자신이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을때 더욱 이해할 수 있고 잘 지낼 수 있는 것 처럼요. 교과 학습은 따로 하더라도 이 두 그룹을 등. 하교시간 또 체육 시간, 쉬는 시간에 자주 마주칠 수 있도록 하고 축제도 함께 하는 겁니다.


혐오 시선은 익숙하지 않음에서 시작됩니다. 이렇게 다른 두 그룹이 자주 보고 익숙해진다면 사회적 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꼭 비합리적인 교과 과정을 같이 해야만 우리가 친숙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합리적으로 자주 보고 자주 부딪힐 시간을 준다면 자연스러운 순간을 맞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H는 비장애인 친구들과 교과과정을 함께 하면서 더욱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친구들과 다르다는 인식이 더 팽배해지고 있었죠. 그래서 더 의존적이고 심성이 더 삐딱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은 S를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픽업해서 치료를 돕고 있는데요, 적어도 장애인 특수학교 아이들은 한결 편안하고 자유로운, 행복한 모습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든 생각은 장애인 친구들에게도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환경에서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 싶습니다. 당연 그들만의 맞춤형 교육법도 필요하고요.


H의 경우, 통합 교육에서 어느 정도 사회성과 학습이 가능하다고 해도 분명히 한계를 느낍니다. H의 엄마 말씀에 의하면 자폐친구들이 보는 시각은 좀 다르다고 해요. 그렇다면 그에 맞는 맞춤형 교육법이 필요해 보입니다. 20여 명의 친구들을 교육해야 할 일반 교사가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돌봄 노동자인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더더욱 힘든 부분이 되겠죠.


그리고 H의 경우, 부모의 마인드도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이 H를 포용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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