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하게 알고 싶다, 그 기준.
광고는 엄격하다. 허위 광고나 과장광고를 통해 소비자를 현혹시켜 잘못된 소비를 일으키면 안된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나도 소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말도 안되는 과장 광고나 허위 광고가 나오면 화가 나니까. 실제로 문제가 생겨서 소비자 분쟁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때문에, 광고 심의는 더 엄격하다. 어린 아이는 직접적인 광고 문구를 말할 수 없다거나, 증빙이 되지 않는 허위 사실은 카피로 쓸 수 없다. 심의의 기본은 ‘증명’이다. ‘판매 1위’를 쓰기 위해서는 판매 증빙 자료를 내야한다. 건강, 의료 관련의 제품들은 유독 더 기준이 혹독하다. 당연히 사람의 건강과 직결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내야하는 자료도 많고, 통과되지 않는 카피도 많다. (상처 완전히 제거! 같은 카피가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 ‘거의’ 라는 불분명한 카피를 쓴다. 수치상으로 100%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광고주는 새로운 것을 원하고, 더 자극적이고 과장된 카피를 원한다. 그래서 AE는 항상 새로운 심의의 산을 넘어야 한다.
내가 담당한 광고주는 유독 ‘세상에 없던’ ‘최초’ ‘최고’ 라는 카피를 좋아했다. 물론 광고주라면 누구나 좋아할만한 카피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카피가 심의를 통과하기에 너무 어려운 카피인 게 문제였다. ‘세상에 없던 제품’ 이라는 카피를 쓰기 위해서는 ‘이 제품이 정말 세상에 없던 제품이었는가’를 증명해야한다. 어떻게 ...?
그동안 세상에 없었다, 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한단 말인가. 카피라이터가 그 카피를 가져왔을 때, 광고주가 그 카피를 통과시켰을 때, 정말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도대체 무슨 말로 심의실을 구워삶아야, 아니, 설득해야 할까.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다 모으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야 월급의 노예, 도비, 직장인. 내가 담당한 제품이 정말, 그동안 세상에 없었던 제품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 세계의 모든 전자제품 사이트를 다 뒤졌다. 이 세상의 모든 전자제품들 중 우리 제품과 같은 제품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글을 알 수 없으니 그림만 보고 비슷해 보이는 건 다 캡쳐했다. 그리고 출력했다. A4용지로 500장이 넘게 나왔고, 그 종이 뭉치를 들고 팀장님과 함께 심의실로 향했다. 꽤 오래 지난 일인데도 그때가 명확하게 기억난다. 심의실로 종이 뭉치를 들고 들어오는 나를 바라보던 심의실 담당자의 황당한 눈빛. 질린다는 눈빛. 그리고 니가 이겼다는 눈빛.
사실 이 종이들로도 ‘세상에 없던’ 것은 증명되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없는 걸 없다고 대체 어떻게 증명하나. 다만, 그들이 심의를 OK 해준 건 그간 내가 한 고생이 갸륵해서였다. 이만큼 해 온 정성이 갸륵해서 통과시켜준다, 앞으로는 다시는 이렇게 해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심의실을 나오면서 심의는 통과되었으나 해냈다는 보람보다는 걱정이 더 커졌다. 아, 이걸로 통과되다니 ... 앞으로도 광고주가 또 비슷한 걸 시키겠네 하는...
다행히 그 이후로는 ‘최초’라는 카피에 대한 심의 기준이 낮아져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또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심의 기준은 엄격했고,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준들도 있었다.
광고 AE를 그만두면 심의와는 안싸울 줄 알았는데,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도 여전히 광고 심의가 내 발목을 잡았다. 그 다음 이직한 회사는 영화 투자배급사였는데 영화 광고를 집행하면서도 나는 심의와 싸워야했다. 특히나 영화라는 콘텐츠의 특성 상 야하거나, 잔인하거나 하는 심의 기준이 강했다. 여배우 의상이 너무 야하다고 반려, 카피가 야하다고 반려, 칼이 나와서 반려, 배우 얼굴이 별로라고 반려. (진짜다, 아주 유명한 배우였고, 약간의 분장을 한 얼굴이 혐오감을 조장한다고 광고가 반려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반려였다. 가장 황당했던 건, 색깔로 반려 당했을 때다.
그 영화는 15세 관람가로 야한 장면과 잔인한 장면은 정말 하나도 나오지 않는 코미디 영화였고, 대한민국 영화 포스터가 으례 그렇듯이 주연 배우 얼굴만이 있는 포스터였다. 포스터 심의는 문제없이 통과했고 그 포스터로 매체 광고를 집행했는데, 광고가 반려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체 이 포스터가 뭐가 문제라서 반려된거에요?”
“배경 색깔이 너무 새까맣다고 ....”
“네?”
담당자의 말을 듣는데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배경에 뭔가 내가 모르는 이상한 요소가 숨어있었나? 욕이라도 써있었나???
배경 색깔이 너무 완전한 검은색이라서, 보는 사람의 불안을 조장한다고
완전한 검은색이 아닌 색을 써달래요.
나는 그 매체* 광고 심의실이 이렇게까지 서울 시민의 정신 건강을 생각하는 지 몰랐다. 그냥 단지 검은 배경이었을 뿐인데, 그 검은 배경이 너무 새까매서 보는 사람의 불안을 조장한다니. 정말 상상도 해본적 없는 이유였다. 밝은 대낮부터 밤에도 네온사인이 환한 서울 시내에 붙어있는 광고인데 검은색이 불안감을 조장한다니. 어디서부터 이 사회는 잘못된걸까.
내가 그 사유를 말하고 수정 요청을 했을 때, 디자이너는 장난을 치는 줄 알고 들어주지 않았다. 몇번을 말하고 나서야 디자이너도 황당해하며 100%의 검은색에서 80%의 검은색과 짙은 남색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광고는 심의를 통과해서 서울 시내 곳곳에 잘 붙었다. 서울 시민의 불안감을 조장하지 않고. 하지만 내 불안감은 조장했다. 대체 어디서 얼마나 또 황당한 이유로 심의가 거절될 지 불안한 마음을.
*방송광고심의실이 별도로 있듯이, 매체별로 매체를 집행하는 회사에서 별도로 심의를 진행한다. 지하철과 버스가 다르고, 버스 쉘터가 다르고, 건물 외벽도 다 회사 별로 다른 심의 기준을 적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