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아버님은 잘 지내시고?

낙하산 입사를 바로 옆에서 보게 될 줄이야

by 재완

한참 취업 준비를 할 때, 그 자리는 이미 정해져있다더라, 누구 라인 타고 가는 거라더라 하는 소문을 참 많이 들었다. 괴소문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지만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왕왕 돌았고, 드라마에서도 종종 나오니 낙하산 취업이라는 게 있긴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마주치는 것은 꽤 다른 일이다. 그게 내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더더욱이나.



나는 첫 입사를 인턴으로 했다. 정규직 전환이 예정된 인턴시험이었고, 이틀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꼬박 내내 시험을 쳤다. 단체 팀 PT와 개인 PT 등등의 시험을 치르고 꽤 높은 경쟁율을 뚫고 정식으로 인턴이 되었을때는 정말 기뻤다. 사실 나는 졸업자라 인턴 지원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었는데, 인사팀에 연락해서 제발 받아달라고 사정을 해서 시험을 치게 되었던 지라 (그런 패기가 마음에 들었다는 말을 면접에서 들었으니, 원한다면 두드리라 취준생들이여!) 더 합격이 간절했다. 당시 인턴 동기는 총 9명. 그 중에서 반 정도인 4~5명이 정규직이 될 거라고 했다. 경쟁자기이기도 하지만 동기이기도 했기에 다같이 과제도 열심히 하고, 재밌게 인턴 기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들과만 경쟁하는 건 줄 알았는데, 입사를 하고 보니 다른 인턴들이 또 있었다. 분명 다른 전형은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날, 같은 파트에 입사한 다른 인턴이 있었다. 광고회사는 종종 광고 공모전에서 우승하면 인턴으로 들어오기도 해서, 그런 사례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례로 입사한 사람은 다른 팀에 배정받은 사람이었다. 좀 이상했지만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새로운 인턴, 그녀와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로 의지하며 힘든 인턴 생활을 버티기로 했다. 그리고 의문점은 첫날 점심시간에 바로 밝혀졌다.



아버님은 잘 지내시고?


인턴 입사 첫날, 담당 상무님과 처음으로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상무님은 우리에게 이것저것 친절하게 물어보시며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하셨고, 그러던 와중에 그녀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그 질문으로 바로 파악된 사실. 그녀는 광고주 상무의 딸이었다. 그래서 전형에서, 면접에서 볼 수 없었구나. 하지만 이때까지만해도 큰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상무님도 그 질문 이후로는 나도 많이 챙겨주셨고, 차별을 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기에 그냥,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며칠 후, 우리는 함께 광고 촬영 현장 견학을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보는 광고촬영 현장. 인턴나부랭이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오라는 팀장님의 말씀에 대리님 한 분이 우리를 데리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도착하자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신기해하며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리님은 우리를 잠시 세워두고 광고주에게 인사를 하러갔고, 대리님과 인사를 하던 광고주가 우리를 보더니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왔다.


니가 00상무님 딸이구나! 아버님 잘 지내시지?


그렇다. 그 광고 촬영현장은 그녀의 아버지가 일하는 회사의 제품 촬영 현장이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광고주는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옆에있는 나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녀를 자기 자리로 데려가서 앉혔다. 그리고는 다른 직원을 시켜 제품 샘플들을 가져왔고, 그녀에게 한아름 안겨주었다. 나는 마치 그림자처럼 그 옆과 뒤에 서서 그들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뭔가 울컥했다. 그래, 이게 사회의 쓴맛인가 하는 그런 울컥함.


미안하다, 괜히 이 현장에 데려왔네.


그런 내 감정을 느낀건지, 우리를 데리고 왔던 대리님이 내 옆으로 다가와 사과를 했다. 그저 우리가 입사하고 가장 빠른 날짜에 잡힌 광고촬영이 이 현장이었고 우린 그 현장에 온 것 뿐인데. 대리님은 마치 자기가 이런 상황을 만들기라도 한 거 마냥 미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고, 뭐 다 그런거 아니겠냐며 괜스레 웃었지만 마음 한 쪽에선 분명,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다. 생색을 내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그저 인턴답게 일도 잘 했다. 나도 그녀와 꽤 사이가 좋은 편이었는데,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일을 하다가도 문득 문득 내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아주 작은 열등감이 있었다. 나에게는 간절한 이 두달이 그녀에게는 그냥 경험의 하나이겠지, 하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내 열등감에 우리는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실제로 그녀는 두달의 인턴기간이 끝나자 바로 그만두기도 했고.



사실 이런 사례는 너무 많아서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낙하산 인턴은 우리 회사에도, 친구네 회사에도, 나의 다음 회사에도 계속 있었다. 거의 일년에 한명씩은 쭉 본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나는 동료로서도, 상사로서도 그들을 신경쓰지 않은 채 그냥 평범하게 대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안하무인의 인턴은 다행히 없었기에, 그저 동등하게 일을 주고, 동등하게 퇴근시켜 보내주었다. 늘 입에 달고 살던 광고주 욕을 그들의 앞에서 조심 하는 것만 빼고, 나는 늘 변함없이 동등하게 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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