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자본> | 김지수 | 포르체
매일 새로운 신상과 트렌드가 타임라인을 폭격하는 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조건반사처럼 반응한다. 깊은 고민 없이, 그저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지갑을 열고, 카드를 긁는다. 그저 알고리즘이 골라준 물건을 취향이라 착각한다. 남들이 환호하는 찰나의 유행을 좇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김지수 작가의 <감각자본>의 지적처럼, 반짝이는 유행은 소비되는 순간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것은 찰나의 자극일 뿐, 결코 자산이 되지 못한다. 영수증은 켜켜이 쌓이는데, 내면에 공허함은 점점 커지는 역설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축적 없는 삶을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이해한 해결책은 명확하다. 그저 통장을 비울 목적으로 소비하지 말고, 내면에 자산을 채울 목적으로 소비하라는 것이다. 뺄셈이 아니라 덧셈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핵심은 '고뇌'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그것이 좋은 이유와 맥락을 생각하면서 구매하라는 말이다.
누군가는 물건 하나 사는데 그렇게까지 신경 쓸 일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생수 한 병 사는데 그런 고민은 사치일 것이다. 하지만 가벼운 물건 하나라도 사기 위해 비교하고 공부하는 건 해볼 만한 일이다. 그런 시간은 결제와 함께 증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단단한 앙금으로 남아 취향이라는 지층을 만들고, 더 나아가 그 안목은 본인만의 서사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벼려진 안목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다. 요즘처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진짜'를 낚아채는 힘.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평범한 속에서 비범함을 읽어내는 것. 그런 훈련된 안목이야말로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하고 희소한 자본인 셈이다.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말해 준다
이는 고상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쉽게 생각하면 '덕질'이다. 이 덕질이야말로 감각 자본을 쌓아 올리는 가장 적극적인 실천이다. 왜냐하면, 덕후는 대상을 그냥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의 역사와 맥락, 이면에 있을 땀방울까지 탐구한다. 한마디로 '진심 어린 사랑'과 다름없다.
내게는 가수 윤하가 첫 번째 덕질 대상이었다. 노래를 잘하고, 음악성이 훌륭한 것도 큰 이유지만, 그가 보여준 팬들을 향한 마음씀씀이가 더 주요했다. 2012년 부산 RUN 콘서트 때다. 무대 말미에 윤하가 팬들에게 '어디 가서 윤하 팬이라는 게 자랑스러운 가수가 되겠다'라고 말했었다.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 그날로 팬이 됐다.
덕질이라고 해서 대단한 걸 하진 않았다. 하나는 당시 발매된 그녀의 모든 음반을 수집한 것이다. 한국 앨범은 물론, 일본 싱글 앨범까지 초회반으로 구했다. 정식 출시되지 않은 비매품 음반도 종종 있었다. 거기다 고3이던 해 연말 콘서트 티켓값과 교통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당시 최저 시급이 5,000원도 되지 않았지만, 꽤나 즐거웠고 또 버틸 만했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저 경험은 돈이나 시간을 낭비한 걸까? 당연히 아니다. 커머스 회사를 거쳐 광고대행사로 옮겼음에도 변하지 않는 건 내 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 일을 할 때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행동으로 옮긴 경험 그 자체가 자산이다. 그러니 어찌어찌 지금도 밥벌이는 하고 있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작년 윤하의 데뷔 20주년 콘서트에 다녀왔다. 사람들로 빈틈없이 꽉 찬 객석을 보며 묘한 감회에 젖었다. 10년 만에 공연장을 찾았는데, 그동안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뮤지션이 됐기 때문이다. 소극장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최근 접했는데, 모처럼 가볼까? 그 열렬한 마음을 간직한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