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 | 데이비드 색스 | 어크로스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연결된 세상이다. 클릭 한 번이면 세계 최고의 교향곡과 재즈 명반을 깨끗한 고음질로 들을 수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유럽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한계가 없다. 유튜브 뮤직만 있으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도 대한민국 가정집에서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풍요로움 뒤에는 공허함이 있다. 매달 적지 않은 구독료를 내고 방대한 데이터에 접속하지만, 정작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0과 1로 된 디지털 파일은 손에 잡히지 않으며, 그를 통한 경험은 전원을 끄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술이 완벽해지는 만큼 결핍이 함께 자라는 셈이다.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을 통해 이 결핍의 정체를 생각했다.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삶의 질감을 잃어버렸다. 매끈한 액정 너머 디지털 세상은 완벽한 모습이지만, 그곳에는 무게도, 냄새도, 심지어 손끝에 걸리는 마찰도 없다. 우리 인간에게는 오감이 있다는데, 디지털 세계에서는 시각과 청각을 제외한 나머지는 쓸모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첨단 기술 시대에 불편한 아날로그가 사랑받는 게 아닐까?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 운동이 아니다. 돈 많은 사람의 고상한 취미도 아니다. 단지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실재'를 경험하려는 우리들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아날로그 경험은
디지털 경험이 주지 못하는
실제 세계의 즐거움과
만족감을 준다
마침 지난주 오랜 지인들과 이태원 올댓재즈에 다녀온 참이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진짜 소리를 만났다. 이어폰으로는 들을 수 없는 베이스의 묵직한 진동이 공연장 바닥을 타고 내 몸을 울렸다. '소리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공기를 움직이는 물리적인 힘'이라는 문장을 경험했던 순간이었다.
그중 재즈 보컬로도 활동한다는 드러머의 무대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처비 체커의 <Twist Again>을 불렀는데, 여태 들었던 커버 중 그보다 힘도, 흥도 넘치는 무대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저러다 무대에서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덕분에 평소 내향적인 성격인 나조차 흥겨움을 밖으로 내비쳤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처럼 밴드의 연주와 보컬의 가창을 듣는 재미도 있었지만, 진짜 매력은 사람에게 있었다. 각 곡을 시작하기 전 밴드 리더분이 들려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낯선 음악에 마음 문을 열어줬다. 거기다 곧 있으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한 멤버의 이야기와 그를 향한 축하까지. 인간미가 넘치고 오감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공연장을 찾고 티켓을 사는 건 이런 거다. 누군가는 피곤하고 번잡하게 하나 싶을 거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재생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 대신, 그 시간 그 장소에서만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을 소비하는 것. 이것이 디지털 세상에 날리는 가장 아날로그적 반격이다.
2025년 끝자락, 사랑하는 가족 또는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시기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지이지만, 주말 하루는 정도는 시간을 내서 이런 공연장을 함께 찾아보는 건 어떨까? 괜찮은 선택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