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자주 가던 공원이 하나 있었다. 넓지 않아서, 한 바퀴를 도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공원 끝에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걸어서 5분쯤 가면 벤치가 있는 쉼터가 나왔고, 거기서 더 올라가면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쉼터까지 가는 길은 완만했고, 더군다나 사람도 없어서 자주 머물곤 했다. 가끔은 밤에 올라가 색이 번지는 가로등 밑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 날은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하얀 씨앗을 잔뜩 머금은 민들레를 봤다. 나는 주저함 없이, 허리를 숙여 ‘후~’하고 바람을 불었다. 한 번 불 때마다 씨앗의 3분의 1이 하늘로 날아갔다. 그래서 남은 2번을 더 불어 모든 씨앗을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민들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얗게 흩어지던 씨앗의 모습이 또렷하고, 터져 나온 웃음까지도 마치 어제 일 같다. 가끔은 그 공원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아 그곳을 다시 가진 않았다.
공원 근처에는 찻집이 하나 있었다. 지하철도 가까워 자주 이용하던 곳이었다. 그곳 아르바이트생은 모두 학생처럼 보였는데, 고등학생이거나 대학교 신입생쯤 되어 보였다. 찻집의 내부는 꽤 단조로웠으나, 직원들이 가진 특유의 젊음으로 활기찬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주로 단 음료를 시켰다. 카페인이 맞지 않아서 커피를 즐겨 마시진 않았다. 날씨가 조금 서늘한 날에는 따듯한 유자차를 주문했다. 그런 다음 벽을 등받이 삼아 긴 담소를 나눴다.
걷는 것이 지겨워질 때는 배드민턴을 쳤다. 서브를 넣을 때 바람이 불면, 십중팔구 나무에 걸렸다. 나무의 키가 나보다 한참은 더 커서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드민턴은 운동량이 꽤 많은 운동이었다. 오래 치지 않아도 금세 땀으로 젖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유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하늘이 붉어졌다. 그러면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갔다. 배드민턴을 치다가, 조금 시간이 이르다 싶으면 산을 올랐다. 산 정상에는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가 많았다. 그곳에 앉아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기도 했다.
산에서 내려가는 길에 소나기가 쏟아진 적이 있다. 흠뻑 젖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 젖었다. 평소 비 맞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데, 그날은 기분이 좋았다. 산에서 내려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찻집에 들어갔다. 굵어진 비를 잠깐 피하기 위함이었다.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분위기는 오래된 다방에 가까웠다. 날씨가 서늘한 탓에 따듯한 음료를 시킬까 했는데, 메뉴판 아래에 매직으로 굵게 쓴 미숫가루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의 충동을 참지 못하고 미숫가루를 주문했다. 춥긴 했지만, 달콤하니 맛이 꽤 좋았다.
공원 주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근처에 있는 찻집은 한 번씩 다 가본 것 같았다. 가끔은 조금 불편한 찻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음악이 없어 너무 조용하다거나, 사장님과 손님 간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거나 하는 경우였다. 그럴 때는 곧바로 나오고 싶었지만, 음료값이 아까워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어느 정도 시간을 채우고 나왔다.
추운 겨울에도 어김없이 공원을 돌았다. 한 손은 핫팩을 쥐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의 높이가 서로 달랐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사계절 중에 겨울을 가장 싫어할 만큼 추위에 약한 편이지만, 공원 도는 것을 포기하진 않았다. 그만큼 공원을 좋아했다. 진심으로.
이제 더는 그 공원에 가지 않는다. 아직 그 정도의 용기는 없다. 또한 그 정도로 어른이 되지도 못했다. 지난 계절 민들레 씨앗이 흩어질 때, 사실은 내 몸에도 씨앗 하나가 붙었다. 지금쯤이면 노란 민들레꽃이 피어야 하는데,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이 씨앗만큼은 발아하지 못했다. 아마도 어른이 될 시간을 이미 놓쳤기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