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바나나는 아주 귀한 과일이었다. 당시 흔치 않던 수입 과일인 데다 값까지 비싸,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었다. 탐스러운 노란 자태는 마치 금단의 열매처럼 느껴졌고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열대의 낙원이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져 묘하게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과일이었다.
그 날은 아버지 학부모가 우리 집에 오시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엄마는 집 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부엌에는 간단한 다과상 까지 마련되었다. 우리 자매는 인기척조차 내지 않고 방 안에 머물며 창문 너머로 바깥 상황을 살폈다.
딩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정갈한 차림의 여자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우리 눈은 자연스레 그녀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로 향했다. 보통은 사과나 포도, 감 같은 익숙한 과일이 들려 있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봉지 안에는 노랗고 탐스러운 바나나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우리는 당장이라도 달려나가고 싶었지만, 얌전히 기다려야 했다. 상담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바나나 생각에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그 날 따라 시계는 한없이 느리게 흘렀고 우리는 바나나를 생각하며 가까스로 그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마침내 학부모가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후 집을 떠났다. 대문 닫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주방으로 달려갔다. “엄마, 이거 진짜 바나나야?” “우와, 너무 맛있겠다!.” 흥분한 우리를 보고 엄마는 웃음 지었고, 통 크게 바나나를 하나씩 손에 쥐어 주었다. 부드러운 노란 껍질을 벗기자 연한 속살이 드러났다. 기대를 한 가득 안고 조심 스럽게 한 입 베어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상상했던 달콤하고 부드럽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명 달긴 했지만, 새콤달콤함에 익숙했던 우리 입맛에는 그저 강한 단맛만 느껴졌다. ‘생각보다 별로인데... 왜 이게 이렇게 비싼거지?’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엄마가 "무척 귀한 과일이야, 아껴 먹어야 해"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우리는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맛있는 척 바나나를 씹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학부모님이 찾아오신 이유는 아버지 반 학생이 가출했기 때문이었다. 공부는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평소 말썽 한 번 피운 적 없던 아이라, 아버지와 학부모님 모두 크게 놀라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날부터 학생을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하셨다. 경찰서에 신고하고, 친구들을 동원해 갈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 친구 집에서 아이를 찾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냈고, 다음 날 학교에 나온 학생을 엄하게 체벌하셨다.
당시 남학교에서 체벌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오히려 체벌을 하지 않으면 무관심한 교사로 여겨질 정도였다. 학생에 대한 걱정, 배신감, 그리고 안도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아버지는 매를 드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학생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이 담겨 있음을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사춘기 반항을 무사히 넘긴 그 학생은 졸업 후 대학에 합격했고, 훗날 아버지를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제야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보이셨다.
교사라는 직업은 때론 보상 없는 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식처럼 아끼던 제자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그 어떤 명예나 돈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학생들을 이끌며 아버지는 그렇게 교사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셨다.
그날의 바나나는 내게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었지만, 아버지께는 제자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하루의 상징이었다. 기대와 달랐던 바나나의 맛처럼, 아버지의 교직 생활 또한 늘 달콤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단호함이 있었기에, 아버지는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교사가 지고 가야 할 고단한 책임의 무게를 배울 수 있었다.
이제 바나나를 보면 귀한 과일 대신, 그보다 더 귀했던 교사로서의 아버지의 삶과 사랑이 먼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