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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몇 해 전,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다 낡은 등산용 장갑 한 쌍을 발견했다. 손끝이 닳고 가죽이 바스러진 장갑 안에는 오래된 흙먼지가 남아 있었다. 그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오른 산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 장갑을 손에 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산, 설악은 단지 산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닿을 수 있었던 유일한 자유의 풍경이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산을 유독 좋아하셨다. 방학이면 늘 배낭을 챙겨 혼자 산으로 향하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곳은 설악산이었다. 특히 겨울 산을 좋아하셔서 12월 초가 되면 등산 준비에 분주했다. 간단한 식량과 버너, 등산 스틱, 아이젠, 식기도 꼼꼼히 챙기셨다. 눈 덮인 설악은 높고 험하며, 날씨 변화도 심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일수록 아버지는 오히려 더 설렘과 도전의식을 느끼셨다. 출근 전 새벽마다 조깅을 하고, 주말이면 근처 산을 오르며 체력을 다지셨다. 겨울 산은 그만큼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눈 내린 설악을 오른 적이 없다. TV나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이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방학 때마다 산으로 향하던 아버지를 그저 무심하게 바라봤다.


세월은 무심히 흘렀고, 아버지는 더 이상 겨울 산행을 위한 배낭을 꾸리지 않으셨다. 거실 한편에 세워진 등산 스틱에는 먼지가 내려앉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상쾌한 겨울 공기 대신 스산한 적막함이었다. 아버지는 종종 창밖을 보며 “무릎이 시리다”는 말을 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산에 대한 그리움의 다른 표현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TV에서 설악산의 설경이 나오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자리를 뜨곤 하셨다. 그 뒷모습에서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실감을 읽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에게 산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가장으로서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한 인간으로 숨 쉴 수 있는 자리였다. 노화와 건강 악화로 내려놓은 산행은 곧, 자신을 조금씩 포기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비로소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만의 시간’, 오롯이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그것이 고작 아이를 재운 뒤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였다면,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바로 겨울 설악이었으리라.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라는 이름 아래, 아버지는 당신의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창을 스스로 닫아버리신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아버지가 앓아누우셨다. 큰 병은 아니었지만 예전보다 부쩍 약해진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의 시간이 더 흘러가기 전에 그 산에 올라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가 바라본 그 풍경을 내 눈에 담아 와야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고, 속초 출신인 남편은 내 뜻을 알아차리고 함께 가기로 했다. 아버지의 낡은 아이젠을 꺼내 발에 맞춰보며, 방수 등산복을 고르며, 생전 처음으로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마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잠시 엿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등산 날 아침, 아버지는 말없이 내 배낭을 들어 차에 실으셨다. 그리고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 하셨다.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대청봉에 오르면, 내 안부도 좀 전해주고.”
무심한 듯 들렸지만, 그 말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겹쳐 있었다.

겨울 설악은 상상 이상으로 웅장하고 경이로웠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지만, 눈앞에 펼쳐진 순백의 세계는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듯했다. 나는 아버지의 발걸음을 상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눈길을 헤쳤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터질 듯 고통스러울 때마다, 왜 아버지가 이 힘든 길을 사랑했는지 곱씹었다.

정상에 가까워졌을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그 무게를 다시 짊어질 힘을 얻었던 것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어보는 경험,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감. 그것이 아버지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으리라. 아버지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 떠났던 것이다.


하산길의 발걸음은 처음보다 훨씬 가벼웠다.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전해야 할까. 설악의 눈부신 설경을, 칼날 같은 바람의 감촉을,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알게 된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나는 말없이 아버지 곁에 앉아 그 손을 가만히 잡았다. 아버지는 내 손을 바라보다가 나직이 물으셨다.
“그래, 내 안부는 전했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눈가에 희미한 물기가 맺혔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 나는 설악산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어떤 말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산은 이제 내 마음속에도 뿌리내려, 영원히 푸른 겨울산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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