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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 never go back home"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던 날은 무더위가 절정에 이른 한여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차에 올랐다. 내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외출에 들뜬 아버지는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흥얼거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마다 짙푸른 가로수들이 생명에의 무서운 집착을 뿜어내듯 우거져 있었다. 그 푸르름은 한겨울 나목처럼 앙상해진 아버지의 몸과 대조되어 묘한 슬픔을 자아냈다.


잠시 후, 아버지의 흥얼거림은 영어 가사로 바뀌었다. 음정도 박자도 제멋대로였지만, 그 안에는 이상한 자유로움이 있었다. 젊은 시절 영어교사였던 아버지는 영어회화에 능숙하셨기에, 나는 그저 무심히 귀를 기울였다. 차가 로터리를 돌아 요양원 건물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 아버지가 마치 예감이라도 한 듯 노래했다.

“I can never go back home. I can never go back home.”


순간,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았다. 치매로 기억이 희미해진 와중에도 알고 있었던 걸까. 자신이 더 이상 예전의 집으로, 익숙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운전대를 잡은 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눈부시게 푸르렀고, 세상은 여전히 분주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단 한 사람만이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경직된 표정으로 요양원에 들어선 뒤에야, 아버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신 듯했다. 나와 동생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눈빛 속에는 어리둥절함과 두려움, 그리고 말로 할 수 없는 불신이 교차했다. 그 순간, 피가 귀 안쪽에서 쿵쾅대며 울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입구에서 안내 직원이 건넨 서류에 사인을 하는 동안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돌봐드릴 겁니다.” 원장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말은 요양원의 공기 속으로 금세 흩어졌다.


요양원 복도는 에어컨 냉기에 눅진한 세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벽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스치는 문틈마다 서로 다른 숨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는 낮잠을 자는 듯했고, 누군가는 텔레비전 소리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한쪽 구석의 노인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죽음을 기다리는 지난한 나날, 달리의 그림 속에서 녹아내리던 시계처럼, 이곳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과는 다른 속도로 천천히 형태를 잃으며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의 끈적한 흐름 속에 발이 붙잡힌 사람처럼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 손을 잡으셨다. 그 손은 따뜻했지만, 알 수 없는 불안이 스며 있었다. 아버지가 물었다.

“언제 집에 가니?”


그 한마디가 심장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이제 이곳이 아버지의 ‘집’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시는 예전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켰다. 명치끝에 걸린 말이 숨을 막았다. 질식할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도망치듯 요양원을 빠져나왔다.


문을 나서는 순간, 후끈한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에어컨 공기와 소독약 냄새로 가득한 실내에서 막 빠져나온 나는, 잠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차에 시동을 걸자 라디오에서 익숙한 팝송이 흘러나왔다.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듯했다.
“I can never go back home...”


나는 급히 라디오를 꺼버렸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손으로 핸들을 꽉 쥐었다. 유리창 너머로 요양원 건물이 점점 멀어졌다. 차가 요양원 담장을 완전히 벗어났을 무렵, 가슴 한쪽이 ‘툭’ 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를 그곳에 두고 온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의 한 부분, 아버지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의 조각들을, 저 차가운 건물 속에 통째로 떼어두고 왔다는 뼈아픈 자각이 밀려왔다.


신호등이 붉게 바뀌었다. 차는 멈췄지만,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목구멍 끝에 맴돌았다.
“아버지, 미안해요.”
입 밖으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차고 축축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꿈을 꾸었다. 눈을 뜬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이었다. 저만치 앞서 걷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버지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동굴 끝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을 향해 묵묵히 걸어 들어갈 뿐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한 뼘마저 어둠 속에 삼켜질 때, 절망적인 사운드 트랙이 울려 퍼졌다.


"I can never go back home."


심장을 옭아매는 선율은 끝나지 않는 노래처럼 무한 반복되었다. 나는 아버지를 부를 수도, 단 한 걸음도 뗄 수도 없었다. 차가운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버지를 차가운 어둠 속으로 밀어 넣은 사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한 사람. 그렇게 나는 죄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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