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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0으로 수렴했다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어느 날 일찍 길을 나섰던 할아버지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열한 살은 죽음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였다. 엄마의 흰 치맛자락, 고모들의 머리에 꽂힌 흰 핀, 그리고 합창이라도 하듯 울려 퍼지던 ‘아이고, 아이고’의 기이한 곡소리. 장례식장의 풍경은 끊어진 필름처럼 뇌리에 남았다. 내게 죽음에 대한 최초의 이미지는 그렇게 ‘흰색’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별은 갑작스럽게 닥쳤다. 코로나 후유증에 이은 급성 폐렴으로 아버지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아버지의 몸에 부착된 기계들이 일순간 동작을 멈췄다. 생존 여부를 알리던 산소포화도, 혈압, 심박수 모니터가 일제히 0으로 수렴했다. 한 사람의 삶이 정지하는 순간을, 기계가 가장 먼저 포착했다. 의사가 달려왔고, 곧 사망 진단이 내려졌다. 모든 것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아버지는 내 곁을 떠났다.


누군가는 ‘살 만큼 사셨으니까’라며 말끝을 흐렸고, ‘그래도 호상이야’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호상(好喪).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다른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들었던 그 단어가 유독 불편했다. 살 만큼 살았으니 잘 죽었다는 말인지, 자식 고생 안 시키고 떠나 다행이라는 말인지. 그 어떤 의미라 해도, 내 아버지의 죽음 앞에 붙일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난생처음 상주가 되어 상을 치르는 내내, 나는 뿌연 안갯속을 헤매는 듯 멍한 상태였다. 오래전에 앓았던 편두통이 재발한 듯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절차를 따랐다. 영정 사진 속의 아버지는 젊었다. 말끔한 정장과 단정한 헤어스타일. 평생 아버지와 한 몸이었던 그 모습이 문득 생경하게 느껴졌다.


손님을 맞고,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묵묵히 절차를 따랐다. 염을 마친 아버지를 뵈러 갔다. 소실되기 전, 온전한 육체를 마주하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살이 빠져 핼쑥한 얼굴, 뼈만 남은 한겨울 나목 같은 아버지의 몸은 이미 사후경직으로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나와 눈을 맞추던 아버지는, 흰 수의로 몸을 감싼 채 하나의 오브제(objet)처럼 누워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장례지도사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이 그토록 많았는데도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 기존에 알던 단어를 모두 잊어버린 사람처럼, 말은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대책 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사느라 고생하셨어요. 이제는 편히 쉬세요.’ 그 말이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화장장은 발 디딜 틈 없었다. 어디선가 생명이 태어나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생은 소멸되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단어에는 어둡고 축축한 기운이 배어있다. 비틀어 짠다면 검은 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영어의 ‘death’에서는 황량함이, 독일어 ‘tod’에서는 급작스러운 단절감이 느껴진다. 언어는 달라도 소리가 주는 정서는 비슷하다.


화장을 마친 아버지는 한 줌 재로 돌아왔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문턱을, 아버지는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훌쩍 넘어가 버렸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는 휠체어와 색 바랜 잠옷, 낡은 슬리퍼만이 남았다. 더 이상 주인이 입지 않고 신지 않을 사물들. 아버지의 온기가 닿지 않은 물건들은 일제히 생기를 잃었다. 가구와 전자제품은 낯설어졌고, 손때 묻은 사전과 필기도구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유물처럼 스산했다. 낡은 사진첩과 아버지가 쓴 글, 서류 뭉치들은 삶의 잔해처럼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집 전체가 텅 빈 무(無)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무 일도 없지 않았다. 죄책감과 슬픔, 후회가 얼룩진 감정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왔다. 업무를 보다가, 책을 펼치다가, 심지어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부재한 세상이 이토록 낯선데,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갔고 달력은 어김없이 넘어갔다. 누군가의 삶이 저물어도 여전히 해가 뜨고 달이 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난 시간을 복기하며 기억을 붙잡아 두려 애썼지만, 그 모든 노력은 공회전하는 바퀴처럼 헛돌 뿐이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사람은 흰옷을 입고 입장해서 흰옷을 입고 퇴장한다. 갓 태어난 아이는 흰 강보에 싸여 세상의 오염으로부터 보호받고, 죽음은 흰 수의를 입은 채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사는 것은 매 순간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생의 모서리가 닳다가, 종국에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평등한 죽음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꿈을 꾼다. 길고 긴 터널의 끝,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아버지가 천천히 걸어간다. 그 형체가 점차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진다. 어디선가 낮고 묵직한 첼로 선율이 울린다. 첼리스트의 섬세한 활이 스칠 때마다, 현에 잉태된 슬픔이 날카로운 상처에서 배어나는 피처럼 흐른다. 아버지의 몸을 감쌌던 그 외로운 흰 수의 위에도, 첼로 선율 같은 묵직한 슬픔이 내려앉는다.


이제 아버지와 함께한 내 삶의 한 장(章)이 끝났다. 내 앞에는 아버지 없이 보내야 할 새로운 생이 망망대해처럼 펼쳐져 있다. 그 밤, 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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