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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온다,한강 작가에게 배우는 언어의한계를 다루는방식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언어의 한계를 절감한다. 마음속의 미세한 결, 손끝처럼 떨리는 감정의 진동을 단 하나의 단어나 문장에 온전히 담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단어 하나, 낱말 하나, 심지어 접속사나 조사 하나까지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애쓴다. 이 작은 차이가 독자의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처럼, 조사 하나를 바꾸는 결정 안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문장이 품어야 할 기조, 그리고 작중 인물의 호흡까지 깃들어 있다.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그 미세한 떨림까지 붙잡으려는 이들의 글쓰기는 말의 그림자를 쫓아 진실에 다가가려는 지난한 여정인 셈이다.


그러나 참혹한 고통을 당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언어는 얼어붙는다. 소리치고 고함지르며 울부짖는 몸의 반응이 언어를 대신한다. 언어는 고통의 모든 진실을 담아내기엔 언제나 역부족이며, 문자는 말해지지 못한 것의 그림자만 겨우 포착할 뿐이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고통과 폭력 앞에서는 언어의 무력함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많은 글쓰기가 폭력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하지만, 자극적인 장면의 나열은 고통을 소비하고 피해자를 대상화하는 2차 폭력이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강 문학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그녀는 이 '말할 수 없음'을 억지로 말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말할 수 없음 자체를 기록함으로써 언어가 닿을 수 있는 한계까지 천천히 나아간다. 『소년이 온다』를 관통하는 문장, “말할 수 없는 것을 기록하는 일”은 바로 이런 윤리적 태도와 창작 의도를 응축한 말이다. 한강 작가는 폭력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감정을 과장하거나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멈추고, 침묵하고, 주저하며 언어가 감히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더듬는다.


스웨덴 한림원이 그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문에서 언급했던 '강렬한 시적 산문'은 이러한 윤리적 태도의 발현이다. 불필요한 서술을 절제하고 행과 행 사이에 침묵과 여백을 두는 시적 기법은, 고통을 쉽사리 '이해했다'거나 '서술할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 주저함과 침묵 속에서 비로소 언어의 윤리가 세워진다.


이러한 '윤리적 거리두기'는 폭력의 실체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고통을 대상화하거나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장치가 된다. 한강은 광주의 참혹함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기록한다.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침묵과 공포의 틈을 따라가며, 그들이 끝내 언어화할 수 없었던 그날의 진실을 보여준다. 절제를 통해 진실을 더 크게 외치는 힘, 이것이 그녀의 시적 언어가 가진 깊은 울림이다.


한강 작가는 피와 비명, 분노와 신음 대신 남겨진 육체, 남겨진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몸에 새겨진 상흔, 잔상, 후각 등을 통해 전달한다. 쌓여가는 시신이 썩는 냄새와 같은 원초적인 감각들은 언어가 실패한 지점에서 몸이 외치는 처절함이다. 끔찍한 고통을 묘사하는 대신 피해자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독자가 선정적인 폭력의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고 고통의 심연을 헤아리는 체험으로 이끈다. 육체와 감각이라는 원초적인 증언자를 내세워 가려진 진실을 끌어내고자 한다.


한강의 글쓰기는 상처를 섣불리 치유하려 들거나, 서둘러 결론을 내리거나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고, 성급하게 이해하거나 극복하려는 서사를 거부한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는 그들이 하지 못한 말, 침묵까지도 귀 기울여 들으려 한다. 말해지지 않은 빈 공간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야말로 폭력을 가장 적확하게 증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강 작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지양하고 다인칭 시점을 선택함으로써, 각각의 개별적인 고통을 대변하고 작가 스스로 고통의 현장에 겸허하게 머무르려 한다. 이러한 겸허한 태도와 절제된 방식이야말로 진실을 더 크게 외치는 힘이 되어, 그녀의 글에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결국 한강 작가는 '말할 수 없음'을 기록하는 역설적인 글쓰기를 통해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비로소 윤리를 발견하고 인간성을 복원하려 한다. 그녀의 윤리적 거리는 시적 언어의 함축성을 통해 가장 정직하고 겸손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침묵 속에서 오히려 언어의 윤리가 바로 세워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녀의 글은, 비극을 다루는 작가들에게 던지는 무거운 화두이자 독자들의 윤리적 공명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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