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사유, 닫힌 텍스트
이번 달 독서 모임은 황정은 작가의 산문집 《작은 일기》를 다루었다. 평소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문체와 독특한 문제의식에 매료되어 왔으나, 이번 책은 묘한 불편함을 남겼다. 그 불편함은 책이 은연중에 풍기고 있는 '정치적'인 뉘앙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글'을 선호하지 않는다. 작가의 주장에 동의하느냐 여부와는 별개로, ‘정치적’인 글이 가진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정치적 글은 대체로 ‘내 편/네 편’을 전제로 움직인다. 분명한 선과 악이 존재하고, 저자가 정해 놓은 ‘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든, 비동의하든 독자는 일방적인 주장을 수용하거나 반박하는 위치에 머무를 뿐, 스스로의 세계를 넓히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친다.
독서는 본질적으로 텍스트를 통해 자기 사유를 심화하는 과정인데, 편향적인 주장이 강한 글은 독자를 저자가 구축해 놓은 닫힌 세계 안에 가두어버리는 셈이다. 이렇듯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으로 사유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글에는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역설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사실이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였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을 만큼 행동하는 양심으로 이름이 높다. 그의 작품들은 당대 최고의 '정치적 글'이며, 그의 관심은 명백히 '정치 체제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와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뉘앙스에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오웰의 글에는 깊이 매료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답은 오웰이 '정치'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오웰의 글이 불편함을 주지 않는 이유는 그의 비판이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다는 데 있다. 그는 자신이 속했던 상류계급의 위선을 가차 없이 비판했고, 그가 옹호하고자 했던 피지배계급의 속물근성이나 심지어 자신이 지지하는 이념 내부의 모순과 위선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의 비판의 칼날은 '네 편, 내 편'을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정직하고 전방위적인 비판은 독자에게 일방적인 주장을 강요하는 대신, 스스로의 위치와 시대의 보편적인 모순을 성찰하게 만든다. 그의 텍스트에는 명확히 정해진 '적'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나약함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그려져 있다.
오웰의 글 속에서 '정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오웰에게 ‘정치’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을 말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는 특정 사상이나 진영을 옹호하는 데 글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념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훼손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정치적 장치를 빌려온 것이다.
그의 관심은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러한 체제 속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 개성이 어떻게 파괴되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었다. 그의 글의 궁극적인 중심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을 읽을 때 독자는 강요나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조건을 향해 더 넓고 깊은 사유를 확보하게 된다.
결국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정치적 글'과 오웰의 위대한 '정치적 글' 사이에는 근본적인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는 정치적 주장이 글의 중심이 되어 독자의 사유를 닫아버리는 글인 반면, 다른 하나는 인간의 본질과 보편적 가치를 논하기 위해 정치적 현실을 도구로 사용하는 글이다.
《작은 일기》를 읽으며 느꼈던 불편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황정은의 글이 다루는 현실의 무게나 문제의식은 충분히 공감되지만, 그 이야기가 독자의 사유를 확장시키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결론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반면 오웰의 글은 ‘정치적 사실’을 말하지만, 그 사실을 통해 독자가 더 넓게 생각하도록 여지를 남긴다.
오웰의 통찰이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의 글이 낡아버릴 수 있는 특정 이념이나 진영의 주장을 넘어,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인간'이라는 영원한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글을 좋아하느냐 아니냐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글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얼마나 품고 있는가, 독자에게 생각의 공간을 얼마나 남겨주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좋아할 글의 기준도 조금 더 분명해질 것 같다. 정치의 언어를 쓰더라도 인간을 잊지 않는 글, 이미 답을 정해놓지 않고 독자와 함께 사유의 길을 걸어가는 글. 그런 글이 결국 나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