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지만, 통증만 더욱 심해진 70대 남성 A씨. 하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어떠한 사과조차 받지 못하자, A씨는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 병원 측으로부터 영업손실 등을 이유로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병원 측은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A씨는 홀로 법정에 출석했다.재판은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판사 : “피고(A씨), 소장은 읽어보셨죠?”
A씨 :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습니다."
판사 : "원고(병원 측)는 피고에게 3000만원 지급을 청구했는데, 여기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되세요?"
A씨 : “저 같은 서민은⋯그런 판단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수술받고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판사 : "그럼 원고 주장에 대해 다투시는 거예요? 인정 못 하시겠다는 거예요?"
A씨 : “판사님이 알아서 잘해주십시오.”
사실, 판사가 '알아서' 해주는 건 민사소송법의 대원칙상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법원이 중립적인 재판을 위해 변론주의 원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변론주의 원칙은 당사자가 주장한 것과 증명한 것만으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즉, 판사는 이 사건에서 A씨가 주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
A씨는 이 사실을 몰랐지만, 병원 측 대리 변호사는 잘 알았다. 변호사는 거침없이 법리적인 주장을 전개했다.
판사 : "원고(병원) 입장에선 손해배상 보다는 추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병원 측 대리 변호사 : "물론 향후에도 이런 일(1인 시위)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간의 1인 시위로 입은 영업 손실에 대해선, 이미 발생한 손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배상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A씨도 변호사가 있었다면, "1인 시위와 병원 측 영업손실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등의 반박이 가능하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가 아닌 A씨는 법리적인 주장을 하지 못했다.
판사는 마지막으로 병원 측에 ‘조정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지만, 병원 측 대리 변호사는 "없다"고 답했다. 결국 판사는 한숨을 쉰 뒤, “다음 달에 선고하겠다“고 했다. 다만 판사는 “선고 전에 조금 더 고민해 보겠다“며 "화해권고결정을 해보든지 생각해보겠다"고 밝혔다. 화해권고결정은 법원이 직권으로 제시하는 중재 형식의 결론이다. 그러나 당사자 중 한쪽이라도 여기에 불복하면, 결국 재판을 통해 결론이 나온다.
재판이 끝난 뒤 A씨에게 “적은 돈이 걸린 재판도 아닌데, 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A씨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변호사를 선임할 돈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판사님이 알아서 해주시리라 믿고 왔어요."
A씨는 홀로 법정 밖을 타박타박 걸어나갔다. 불편한 걸음걸이, 허름한 옷차림. 그리고 A씨를 스쳐지나가는 변호사. 깔끔한 서류 가방에 잘 다려진 양복.
보고, 또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