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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사팀은 늘 얄밉게 등장할까?

직장 드라마가 숨기지 않는 진실과, 현실이 말하지 못하는 이면들

by MagicSean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그야말로 핫한 요즘이다.

직장인들의 격한 공감과 함께, 녹록치 않은 경쟁환경에서 밀려나는 김부장을 보며 너나 할 것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긴 직장생활의 마무리를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라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그 이야기 속 인사팀장(or 인사임원)은 유난히 얄미울 때가 많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이번 인력 재배치는 회사 전체를 위한 조치입니다”라고 말하는 그 표정,

정기평가 시즌이면 책상 위에 두꺼운 파일을 내려놓고 “성과가 아쉽네요”라고 속삭이는 그 말투,

조직개편 공지가 뜨는 날이면 사무실 어딘가에서 차갑게 미소 짓는 그 모습.


시청자들은 그 장면이 나올 때마다 입을 모아 말한다.

“역시 인사는 비열하고 야비하지.”

“저 사람만 보면 진짜 스트레스 받는다.”


이런 장면을 만든 드라마 작가들이 특별히 ‘인사를 악역화’하려했다기 보다,

오히려 인사가 실제 조직에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워낙 갈등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인사는 악역이어서 얄미운 게 아니라, 맡은 일 자체가 얄미워 보이기 쉬운 구조다.



1. 인사는 늘 두 주인을 모셔야 하는 독특한 조직이다


대부분의 조직은 어떤 일을 하는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비교적 명확하다.

영업은 매출을 올려주는 고객사를 바라보고,

생산은 공장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안정적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재무는 사업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숫자를 관리하며,

마케팅은 제품을 선택해줄 소비자를 분석한다.


각 부서가 바라보는 방향과 ‘업의 본질’이 비교적 뚜렷하기 때문에
그들의 고객도 자연스럽게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인사는 다르다.
인사가 상대해야 하는 대상은 직원 전체이면서 동시에 경영진이다.

이 두 집단은 요구도 다르고, 관점도 다르고, 기대도 다르다.
그래서 인사는 늘 두 세계 사이에 서 있게 된다.


따라서 인사는 언제나 어딘가로부터 불만을 듣게 되어 있다.

경영진에게는 “조직 운영이 너무 느리다”는 말을,

직원들에게는 “왜 인사는 우리 편이 아니냐”는 말을 동시에 듣곤 한다.


이렇게 늘 양쪽에서 압력과 요구가 들어오는 구조에서

인사는 흔히 ‘중간에서 책임을 떠안는 조직’이 된다.

드라마에서는 이 긴장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바로 *“얄밉고 차가운 캐릭터”*다.



2. 회사의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들도 대중에게는 비호감이다


인사가 수행하는 업무의 상당수는 직원의 삶과 커리어에 직접 영향을 준다.

• 승진

• 연봉

• 평가

• 배치

• 징계

• 구조조정


이 중 어느 것 하나 ‘기쁘게 전달되는 일’이 거의 없다.

좋은 소식은 주로 “리더가 직접” 전달하지만,

나쁜 소식은 종종 “인사가 대표해” 전달하곤 한다.


그래서 드라마 속 인사팀장은 종종 다음과 같은 대사를 맡는다.

• “이번에 부득이하게 팀이 조정됩니다.”

• “조직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결정입니다.”

• “이번 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실제 현장에서 이런 문장을 말하는 인사 담당자는

누구보다 긴장하고, 누구보다 고통스럽다.

하지만 시청자 눈에는 이 모습이 책임 회피처럼, 권위처럼, 차가움처럼 비친다.



3. 가장 난감한 순간: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인사는 조직에서 보기 드물게 경영정보와 민감한 인사 정보를 동시에 다루는 직무다.

• 누가 승진하는지

• 어떤 부서가 개편되는지

• 누가 보직 해임될지

• 어떤 조직이 내년에 축소될지

• 어떤 직원이 어떤 일로 그만둘 위험이 있는지


이 모든 것을 직접 핸들링하고 종국에는 공식화 하는 직무가 인사다.


문제는 그걸 알아도 말을 할 수 없고,

모른다고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사는 늘 애매한 표정을 해야 한다.

정확히 알고 있어도 “확정된 건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진짜 모르는 정보도 “추후 공지를 기다려 주세요”라고 표현해야 한다.


이 애매함이 드라마에서는 ‘비열함’으로,

현실에서는 ‘거리감’으로 해석되기 쉽다.



왜 인사는 얄밉게 보일까?


인사가 얄밉게 보이는 건, 인사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직장에서는 누구의 미래를 열어주고 누군가의 기회를 닫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그 두 역할을 한 손에 쥔 조직이 바로 인사다.

어느 한쪽을 만족시키는 순간, 다른 한쪽의 신뢰는 금이 가곤 한다.

이 양면성 자체가 인사를 늘 비호감 구도로 밀어넣는다.


조직 전체를 위해 의사결정을 집행해야 하지만

그 결정은 늘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소외감을 만들고, 불만을 낳는다.

게다가 이 모든 역할을 감정 없이, 차분하게, 일관되게 수행해야 한다.


이 감정의 ‘비대칭’이 쌓이면서

직원들은 인사를 ‘감정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드라마에서는 그 오해를 더 증폭시켜 극적 효과를 만든다.



그래서 인사는 얄밉지 않다.


인사는 ‘사람을 관리하는 조직’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시스템이 사람을 다치지 않게 지탱하도록 만드는 직무’다.


겉으로는 차가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는 다음과 같은 고민이 숨어 있다.

• 누군가의 커리어를 망치지 않기 위한 조심스러움

• 조직의 방향을 틀지 않기 위한 책임감

• 직원의 미래를 건지기 위한 설득과 끈기

• 회사 전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짐


드라마는 이 고민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인사는 누구보다 사람을 깊게 관찰하고,

누구보다 조용히 직원들을 지지하고,

누구보다 무겁게 회사의 내일을 고민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드라마에서 인사가 항상 얄미운 캐릭터로 그려질 때마다

웃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 그 표정 뒤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이 오고 갔는지

드라마는 아직 모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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