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민웅 Nov 23. 2021

아이슬란드 여행

세상의 끝에서 신을 만난 세 사람










"아마 이번이 인생 마지막 모험이 될 것 같다." 여행을 제안하는 K의 카톡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이었다. 그는 대학교 광고동아리 초대 회장으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원대한 꿈을 꾸던 친구였다. K는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사업을 하다가, 돌연 그만두고 공기업에 취직한 후 고향 친구와 결혼했다. 내년에 아이를 가질 계획이라 이번이 친구와 갈 수 있는 마지막 해외여행 기회라는 것이 K의 설명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능력주의에 취한 사람들과, 그들과 마찬가지였던 나 자신에 싫증을 느끼고 한적한 오렌지카운티로 이사 온 직후였다. 이사를 할 때는 오래된 관계 중독과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교외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보다 조금 먼저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사 온 친구 하나는 그다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자아실현이 주던 도취감에서 갓 벗어나 외로움에 취약한 상태였다.


그렇게 K와, 광고동아리에서 만났던 다른 친구 H, 그리고 내가 10월의 아이슬란드에서 만났다. K는 스코틀랜드를 여행하고 아이슬란드로 왔고, H는 한국에서, 나는 미국에서 날아왔다. K와 H는 하루 먼저 도착해 수도 레이캬비크를 관광했고, 나는 공항에서 합류하자마자 그들이 이끄는 대로 동쪽으로 떠났다. 나는 이직과 이사 등으로 정신이 없어 여행 계획에 조금도 참여하지 못한 터라 아이슬란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라 이름과는 정 반대로 그린란드Greenland는 추운 곳이고 아이슬란드Iceland는 초원이라는 걸 들은 기억이 있어 여름 러닝화에 청바지를 입고 갔는데, 혹시 몰라 챙긴 패딩점퍼가 아니었으면 북부를 여행할 때 만난 눈보라에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K와 H가 빌려둔 렌트카에 타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대학 때부터 만나면 실없는 농담이 끊이지 않던 친구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H는 언제나 그렇듯 삶에서 뭔가를 포기한 듯한 표정이었고, K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그런 탓인지 K는 이번에도 여행 계획을 스프레드시트로 촘촘하게 짜 왔다. 계획은 빈틈없고 보수적이었으나, K가 걱정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오로라였다. 오로라는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때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동선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오로라 예보 어플로 오로라가 뜰 가능성이 높은 곳을 최대한 찾아가 보는 것이었다. K는 여행하는 내내 오로라 어플을 초조하게 들여다보았고, 한창 금욕 수행 중이었던 나는 그런 것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며 K의 신경을 긁었고, H는 아무래도 좋은 편이었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은 생각보다도 더 광대하고 압도적이었다. 검은 흙과 형광색 이끼, 주황색 갈대가 섞여 만들어내는 풍경은 현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미친 듯이 절벽을 때리는 파도는 여기가 세상의 끝이자 한계라고 엄포를 놓는 것 같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우리 셋만이 달릴 때는 신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곤두서 있던 날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여행의 목적지인 아이슬란드 동부로 달리는 동안, 나는 이 여행이 신을 만나는 순례 여행이 될 것이라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보통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때는 서쪽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출발해 링 로드를 따라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 걸려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일반적인데, 내 일정 탓에 우리에게는 6일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K는 북부로는 가지 않고 왔던 남쪽 길을 따라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일정을 짜 왔다. 보수적이었던 계획 덕에 일정을 여유롭게 이틀 정도 남기고 원래 계획했던 마지막 목적지 요쿨살론만을 남겨둔 우리는 생각에 빠졌다. 예정대로 왔던 남쪽 길을 달려 수도 레이캬비크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조금 무리일지라도 이틀 만에 북쪽으로 달려 링 로드를 한 바퀴 돌아갈 것인지. 일기예보는 내일부터 북부에 눈이 올 것이라고 하고 있었다. 다소 무모하고 아이슬란드 지리도 전혀 모르는 나는 넌지시 북쪽으로 가보면 어떨까 말을 꺼내봤지만, 우리 중 유일하게 가정이 있었고 어딘가 불안했던 표정의 K는 그럴 수 없다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H는 아무래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요쿨살론에서 본 빙하의 아름다움 탓이었을까? 아니면 거기서 맛본 잊을 수 없는 피시 앤 칩스 때문이었을까? 몇 시간 뒤 K는 요쿨살론의 빙하 호수를 뒤로 하고 다시 말을 꺼냈다. "야 그냥 한 바퀴 돌자." K는 그때 그 말을 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렸다고 회상한다. 그리하여 모험심이 충만해진 서른 초반의 세 남자는 왔던 길로 돌아가려던 원래 계획을 폐기하고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회픈Hofn의 숙소를 떠나 북부로 차를 몰기 무섭게 눈보라가 우리를 덮쳐왔다. 전방 5미터도 보이지 않았고, 왕복 1차로의 맞은편에서 갑자기 트럭이 나타나 옆을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무섭다며 웃음 섞인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얼마 후엔 비명도 잦아들었고,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얼마나 눈 속에 방치되어 있었는지 모를 차가 길 가에 전복되어 있는 것이 보일 때마다, 그리고 기름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갈 때마다, 우리는 정말 조난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전방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데티포스 폭포에 가까스로 도착했을 때는 눈보라 때문에 입구가 폐쇄되기 직전이었다. 때마침 눈보라는 잦아들었지만, 주차장에서 눈길을 뚫고 걸어 폭포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밖에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설원과 데티포스가 주는 장대함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맥이 풀리게 했다. 고요한 눈 속에서 엄청난 양의 잿빛 물이 굉음을 내며 쏟아지고 있었다. 설원을 빠져나오며 서쪽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내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느꼈다. 나는 대자연 앞에서 부인할 수 없는 하찮은 존재였고, 그렇기에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 나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
































데티포스를 떠난 우리는 출국일에 맞춰 서부로 돌아가기 위해 북부의 관광명소들을 대부분 건너뛰면서 링 로드를 거의 쉬지 않고 달렸다. 밤에는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싶어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오로라는 한 번도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무사히 출국일에 서부로 돌아온 우리는 마지막 행선지인 노천온천 블루라군에서 몸을 녹였다. 마지막 날에 노천온천을 즐기는 이 일정은 여행 내내 오로라를 보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K가 계획한 것이었다. 이 날 이 시간에 블루라군 일대에 오로라가 뜰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K와 H는 이날 밤 비행기로 출국 예정이었고, 나는 다음 날 저녁에 비행기가 있었다. K와 H는 블루라군에서도 오로라를 보지 못하면 근처인 공항에서 비행기 시간까지 오로라를 기다리다 갈 계획이었고, 나는 한 시간 거리인 수도 레이캬비크의 호스텔에서 하룻밤 자고 도시를 관광한 후 돌아갈 계획이었다. 행선지가 갈리는 탓에 렌트카 외에 내가 이용할 교통편을 구해야 했는데, 시간이 늦어 저렴한 버스를 이용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K는 마지막까지 오로라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미리 레이캬비크로 나를 데려다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불편한 눈치였다.


블루라군 온천에 들어간 우리 셋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중앙에 있는 바에서 칵테일을 한 잔씩 주문해 마셨다. 물가가 비싼 아이슬란드에서 경험한 가장 럭셔리한 일정이었다. 블루라군의 명물 실리카 머드팩을 바른 K와 H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오로라가 뜨면 소원을 이룬 이무기처럼 K가 발가벗은 채로 온천에서 승천할 거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온천 폐장 시간이 되도록 오로라는 뜰 생각을 하지 않았고, K는 인생 마지막 모험에서 그토록 기대했던 오로라를 못 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적잖이 심란해 보였다. K와 H의 비행기는 몇 시간 남지 않았고, 둘은 계획대로 공항에서 마지막까지 오로라를 기다리다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내가 가는 레이캬비크에는 구름이 많아 오로라가 보일 확률이 희박하다고 했다. 온천을 나오며 레이캬비크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려는데, 갑자기 K와 H가 나를 레이캬비크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K와 H가 나를 데려다주고 다시 공항으로 가면 마지막으로 오로라를 기다릴 두 시간을 포기해야 했기에 사양했지만, 그들은 결심한 듯 보였다.


모험이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여행 내내 오로라에 집착하지 말라며 K를 놀려댄 나지만, 나 때문에 오로라를 기다릴 마지막 기회를 포기한 것 때문에 썩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숙소로 가는 길에 밥을 샀다. 레이캬비크의 호스텔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짐을 트렁크에서 내리고, 여행하는 동안에만 피려고 샀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무심코 하늘을 봤는데, 오로라가 떠 있었다.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어서, 어린애들처럼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면서 길 건너 바닷가로 가 오로라를 보고 또 보았다. 바닷가에는 우리처럼 오로라를 구경하러 나온 관광객이 몇 있었다. 에메랄드 색의 오로라는 보고 있으면 그 모양이 바뀌기도 하고, 사라졌다가 다른 곳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현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지나다녔지만 우리는 너울거리는 오로라를 한참 쳐다보았다. 듣던 대로 거대한 커튼처럼 생긴 오로라가 레이캬비크 밤하늘을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K와 H는, 신의 배웅을 받으며 아이슬란드를 떠났다.


다음 날, 비행기 시간까지 홀로 시내를 걸어 다녔다. 아이슬란드의 주상절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유명한 할그림스키르캬 성당에서는 오르간 연주자가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고, 화산이 폭발하고, 눈 때문에 길이 막혀 일터로 가지 못하는 날이 비일비재한 곳이지만, 여행하면서 만난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가 편안해 보였다. 여행 중에 달리는 차 안에서 오로라 때문에 초조해하던 K를 놀리며 한 말을 곱씹었다. "임마, 현재를 살면, 나머지는 보너스야."






















(정지우작가님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