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2화]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냐.

by 곽준원
안정적인 회사, 그러나 나에게는 불편한 회사

이직 후의 회사는 이전 직장들과 비교하면 거의 다른 행성이었습니다. 이미 라이브 서비스 중인 게임이 있었고,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구조였죠. 급하게 팀이 잘려 나갈 위험도 덜했고, 다음 달 월급이 나올까 말까를 걱정해야 할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버티는 회사'가 아니라 '유지되는 회사'였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이건 제게 축복이었습니다. 아이도 태어났고, 가정의 생계는 이제 제 어깨 위에 있었고, 저는 안정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된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안정성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회사는 오래된 방식으로도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수익이 나오고 있으니까,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꽤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거죠. 조금 불편해도, 조금 비효율적이어도, 그래도 게임은 굴러가고, 회사는 돈을 벌고, 사람은 월급을 받습니다. 그러면 회사는 이런 태도를 갖게 됩니다.


“지금 잘 돌아가는데 굳이 손대야 돼?”


이 논리는 회사 입장에서는 정상입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악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전히 '재미'와 '완성도'와 '더 나은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운영보다 개선에 집착하는 성향. 이미 굴러가는 걸 그대로 두는 것보다, 더 나은 걸 만들고 싶은 성향. 그 성향은 저를 살게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저를 갈등 한가운데로 밀어 넣기도 했습니다.


VS 6.0을 본 순간, 제 뇌는 비명을 질렀다

입사하고 본 첫 풍경 중 하나는 개발 환경이었습니다. 팀은 여전히 Visual Studio 6.0을 쓰고 있었습니다. C/C++ 작업을 그 고대의 IDE에서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이걸 아직도 써요?”


Visual Studio 6.0은 제가 대학생일 때 쓰던 도구였습니다. 오래됐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낡았습니다. 자동 완성은 답답하고, 빌드 시스템은 거칠고, 디버깅도 매끄럽지 않고, 한마디로 개발자의 시간을 세는 기계였습니다.


시간을 자꾸 뺏어가는 도구, 피로를 쌓게 만드는 도구. 저는 그걸 그대로 쓰면서 일한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 도구로 몇 년을 버틴다고? 이 비효율을 그냥 받아들인다고?'

제 머릿속에서는 이게 낭비로 보였습니다.


그냥 낭비가 아니라, 반복되는 손해이자 고통이자 회사의 체력 낭비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로 움직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주변 눈치 보기’ 단계 자체를 거의 건너뛰었습니다.


“이건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바로요.”


저는 Visual Studio 2008을 도입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설치 한 번, 환경 세팅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을 옮겨오면 경고가 쏟아졌습니다. 새로운 컴파일러는 기존 코드에 대해 훨씬 엄격하게 반응했고, 기존의 느슨한 관성들이 경고로 전부 떠올라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약 3주 동안 저는 약 5000개의 경고를 수정했습니다.


이 숫자는 제가 단순히 ‘좀 손봤다’ 정도로 놀다가 끝낸 게 아니라, 완전히 갈아엎듯이 구조를 재정렬해 가며 몰아붙였다는 뜻입니다. 껍데기를 새 걸로 바꾼 게 아니라, 내부에 스며든 오래된 찌꺼기를 닦아낸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그걸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하고, 가능한 한 빨리 해야 하고, 이걸 안 하면 앞으로 더 큰 손해를 본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회사 안의 모든 사람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졌다

제가 몰아붙이는 걸 본 팀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한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이런 사람 처음 봤다.”

“저렇게까지 미친 듯이 정리해 버리네.”

“이거 진짜 편해지겠다. 나도 저렇게 한번 해볼까?”


다른 한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쟤 뭐지?”

“자기 할 거만 하네?”

“다른 사람 합의는 중요한가 보네?”

“혼자만 들이받고 전체 리듬을 흔드는 거 아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누군가에게 저는 '같이 일하면 너무 든든한 사람'이었습니다. 일감을 들고 오면 그냥 날려버리는 사람, 구조를 정리해 주는 사람, 팀의 기술적 체력을 끌어올리는 사람. 근데 다른 누군가에게 저는 '같이 일하기 피곤한 사람'이었습니다.


합의도 없이 자신의 기준을 들고 와서 전체를 휘어잡으려 드는 사람, 조직이라는 생물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효율 하나만 들이대는 사람, 말 그대로 독불장군.


저는 그때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좋아지는 거잖아?”

“효율적이잖아?”

“빨라지잖아?”

“그럼 좋은 거잖아?”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 머릿속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였습니다. 그 ‘당연함’이 문제였습니다.


나를 오래 지배하고 있던 사고방식: 당위

그 시기에 저는 하나의 인지 틀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틀의 이름은 ‘당위적 사고’입니다.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효율이 더 좋은 방향이 있다. 그러면 모두가 그 방향을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맞으니까.) 이건 논리적으로 보면 매끄럽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전혀 매끄럽지 않습니다. 저는 제 기준에서 ‘맞다’라고 판단되면 그걸 의무처럼 생각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회사 전체에 옳아야만 한다’라는 식으로 확장 돼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기대를 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그게 반복되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면,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은 저를 칭찬합니다.


“저 사람은 진짜 제대로 한다.”

“일 욕심 있는 사람이다.”

“저 사람 옆에 붙어 있으면 배운다.”

하지만 나와 다른 결의 사람은 저를 견딜 수 없어집니다.


“너만 중요하냐?”

“네 방식만 옳냐?”

“왜 나까지 네 기준으로 검사하냐?”

“왜 갑자기 회사에 와서 나한테 시험지 들이밀어?”


저는 제 의도가 '팀 전체에 이득'이라고 믿었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그게 압박과 침범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당시 저는 그 사실을 제대로 못 봤습니다. 지금 말하니까 차분하고 분석처럼 들리지만, 그 시기에는 그냥 이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안일하지?”

“왜 이렇게 대충 하려고 하지?”

“왜 이 정도도 안 해?”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냐’

그리고 그 사고방식은 결국 어느 날 폭발했습니다. 우리 팀은 규모가 제법 커졌습니다. 인원이 불어나면서 한 줄에 쭉 앉은 사람들만 해도 10명 가까이 됐고, 전체로 보면 14명까지 늘어났던 시기였습니다.


제 자리는 약간 안쪽이었고, 화장실을 가려면 다른 사람들 자리를 지나쳐야 했습니다. 그 말은 곧, 누구의 근무 태도든 자연스럽게 제 시야에 들어온다는 뜻이기도 했죠.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 신입은 책상에 엎드린 듯한 자세로 기댄 채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굴리며 코드를 보고 있었습니다. 몸은 풀어진 상태였고, 표정에는 의욕이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지금 그냥 시간만 보내는 중'처럼 비쳤습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냥 불쾌했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정확히 언어화하지 못한 채, 그저 뜨거운 화처럼 느꼈습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저건 뭐야?’

‘왜 직장에서 저 자세가 나오지?’


저는 일단 아무 말 안 하고 화장실까지 갔습니다. 스스로를 식히겠다는 최소한의 이성은 있었던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만 해도 이것만으로도 꽤 참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볼일을 보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면서 다시 보니까, 그 신입이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겁니다. 자세도 그대로, 표정도 그대로, 태도도 그대로. 그 순간 제 안에서 어떤 선이 끊겼습니다. 저는 서슴지 않고 소리를 냈습니다. 거의 반사에 가까웠습니다.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냐?”


그 말은 사무실 전체에 울렸습니다. 저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고, 실제로도 여러 명이 들었습니다. 그 신입은 자세를 똑바로 하며 "아니요.."라며 작게 대답했습니다. 상황은 바로 고요해졌습니다. 그때의 제 머릿속은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업데이트에 직결되고, 그 업데이트가 흔들리면 유저 이탈이 오고, 유저 이탈이 오면 매출이 떨어지고, 매출이 떨어지면 회사가 불안해지고, 회사가 불안해지면 나는 또 집에 가서 애한테 미안해져야 하는데...'


'근데 지금.. 이게 뭐야?'

되게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때 제 감정은 진짜 절박했습니다. 제 계산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네 태도 하나가 → 우리 업데이트에 영향 줄지도 몰라 → 그건 곧 내 생계를 건드린다.'


그러니까 저는 업무 태만을 본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생존을 건드리는 위험 요소'를 본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그건 완전히 왜곡된 투사였습니다.


그 신입에게 저는 제 불안을 그대로 쏟아부어버린 겁니다. 저의 체력 부족, 저의 책임감 과열, 저의 생존 본능, 저의 압박감을 그 사람에게 투사한 거죠. 지금 돌아보면 그 행동은 미성숙했습니다. 아주 미성숙했습니다.


좋게 말을 할 수도 있었고, 조용히 일러줄 수도 있었고, 팀 전체 분위기를 지키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방식대로, 제 기준대로, 당위적으로, 한 방에 찍어 눌렀습니다. 그 한 문장은 제 안의 폭력성이 밖으로 드러난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사람’이자 ‘함께하기 힘든 사람’

그 사건은 팀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제 명성을 두 방향으로 갈라놨습니다. '저 사람은 진짜 미친 듯이 일하고, 하나 맡기면 끝장을 본다.' '하지만 같이 일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이건 참 이상한 평판입니다. 능력을 인정받는 동시에 거리 두기를 당하는 사람. 존중과 피로도가 동시에 붙는 사람. 그 구조는 나중에 가면 안 좋게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신뢰는 양면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 잘하는데 무섭다'라는 감정은 시간이 쌓이면 결국 '가능하면 같이 안 하고 싶다'로 변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저 사람, 필요하긴 한데 가까이 두고 싶지는 않아.' 그건 팀에게도, 저에게도 건강한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 시절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너 지금 너무 무서운 상태야.”


표면적으로는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어적인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당시의 저는 생존 때문에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게임이 흔들리면 가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압박감이, 업무 장면마다 섞여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남이 조금만 헐렁해 보여도 그게 그대로 위기처럼 보였습니다. '저 자세 하나 = 내 생계 흔들기'라고 번역되어 버린 겁니다. 지금 보면 말이 안 되지만, 그때의 저한테는 정말로 그렇게 보였습니다. 저는 그 신입의 태도를 본 게 아니라, 제 공포의 그림자를 본 거였습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너는 지금 효율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 불안을 통제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먼저 네 숨부터 고르고, 말을 해라.”

“네가 옳다는 게 상대방에게도 반드시 옳을 필요는 없다.”

“네 방식은 선택지 중 하나지, 명령은 아니다.”

“사람에게 말할 땐 시스템을 고칠 때처럼 밀어붙이지 마라. 사람은 부품이 아니다.”


그 말을 그때의 나는 들을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못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만큼 저는 부딪히며 배우는 타입이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 계기

그 사건 이후 저는 조금 늦게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빨리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느리게 가더라도 같이 가자'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장점: 기술적으로 막힌 걸 뚫어준다.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개선을 현실화한다.

단점: 숨 고르는 시간을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 공감보다 속도를 우선으로 깐다. 기여와 강요를 혼동한다.


저는 그걸 나중에서야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이건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저는 그 단점을 의식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는 것.

그 차이가 나를 조금 덜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위 #이해 #현실 #독불장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1화] 처음 써본 사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