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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이렇게 할 거라면 하지 말자.

by 곽준원
나는 나를 ‘돕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22화까지의 내용에서 저는 ‘당위적 사고’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게 옳다. 그러니 모두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신념은 제가 불안할수록 더 강해졌고, 그 강함은 결국 타인에게 압박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가 더 얹혀 있었습니다. 그건 제 완벽주의였습니다. 이 둘은 따로만 봐도 다루기 어려운 성향입니다. 그런데 제 안에서는 이 둘이 한 몸처럼 붙어 움직였습니다.


당위적 사고 + 완벽주의.


결과적으로 저는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팀을 위해, 회사를 위해, 결과를 위해, 모두가 더 잘하도록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저는 제 자신을 ‘성장을 돕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끌어올리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제 행동을 정당화해 줬고, 그래서 전혀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대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이 시기의 핵심이었습니다.


완벽주의는 언제 처음 모습을 드러났나

저의 완벽주의는 그냥 '난 꼼꼼한 편이야' 같은 귀여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업무에서 그대로 시스템화된 형태로 드러났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템 툴팁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게임 안에는 수많은 아이템이 있었습니다. 무기, 방어구, 소모품, 재료, 강화용 아이템, 교환용 아이템. 이 아이템들마다 툴팁(설명창)이 붙어 있었습니다. 효과가 어떤지, 요구 조건은 뭔지, 어떤 능력치를 주는지, 희귀도는 어떤지. 게임 안에서 이 툴팁은 정보이자 신뢰였습니다.


문제는 오래된 코드와 새 시스템이 공존하는 상황이었고, 아이템마다 출력 방식이 조금씩 뒤죽박죽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이걸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다 갈아엎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툴팁 출력 로직을 싹 뜯어고치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아이템 2000개 전체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체크 방법도 제가 정했습니다. '/createItem' 같은 명령어로 실제 게임 안에서 아이템을 2000개 전부 생성했습니다. 기존 시스템에서 나오는 툴팁과 새 시스템에서 렌더링 한 툴팁이 완전히 일치하는지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2000개.


이건 객관적으로 비현실적인 작업 방식이기도 하고, 동시에 굉장히 비효율적인 집착입니다. 자동화도 없이 거의 수작업에 가깝게 전수 검사에 가까운 확인을 해버린 거죠. 그런데 당시의 저는 이걸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여겼습니다.


“이건 시스템이고, 결과가 틀리면 유저가 혼란을 느낀다. 혼란은 신뢰를 잃게 한다. 신뢰를 잃으면 유저가 떠난다. 유저가 떠나면 회사 매출이 떨어진다. 매출이 떨어지면 우리 팀이 위험해진다. 우리 팀이 위험해지면 나와 내 가족이 위험해진다.”


제 머리는 이미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툴팁 하나가 곧 생계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적당히 합시다'라는 말은 모욕처럼 들립니다. '적당히 한다 = 대충 한다 = 팀을 위험에 빠뜨린다 = 우리를 위협한다.' 그때의 저는 그 정도로 날 서 있었습니다.


완벽주의 뒤에는 공포가 있었다

겉으로 보면 저는 '퀄리티를 올리는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완벽주의의 근본은 공포였습니다. 제가 틀리면, 내가 책임진다. 그 책임은 이번엔 개인 자존심 문제가 아니다. 내 아이에게 가는 문제다. 실패가 곧 가정의 위기와 직결된다는 감각. 그게 제 몸 안에 이미 각인돼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저는 실수 확률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오류도 실제로는 ‘재앙의 전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전수검사를 했고, 반복검증을 했고, 모두 똑같이 했습니다. 제가 살아남으려면 완벽해야 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는 그게 너무나도 논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 완벽주의가 ‘나에게만 적용되는 규칙’으로 멈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걸 남에게도 들이밀었습니다.


'너네도 이렇게 살아야 해'

저는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버티고 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버틴다. 그러니까 너희도 이렇게 해야 버틸 수 있다.” 즉, 제 방식은 단지 제 방식이 아니라 '살아남는 유일한 방식'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제 안에서 그건 거의 의무처럼 굳어져 있었습니다. 이건 아주 전형적인 구조입니다.


나는 불안하다. 나는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특정 방식을 만든다. 그 방식을 따르면 내 불안이 조금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그 방식을 정답으로 믿는다. 이제 나는 그 정답을 타인에게도 요구한다. 겉으로 보면 도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강요에 가깝습니다.


‘내가 사는 방식’을 ‘너도 살아야 하는 방식’으로 똑같이 던져버리는 것이죠. 저는 그걸 진심으로 좋은 의도로 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게 무서운 지점입니다. 강요하는 사람도 자기 자신을 강요한다고 잘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순간의 내 마음속 이름은 ‘지도’이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그건 ‘압박’입니다.


STL 스터디: 의도는 보호였으나, 실제는 통제였다

그 흐름의 결정판이 바로 'STL 스터디'였습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새로 신입이 세 명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스터디를 조직했습니다. 주제는 C++ STL(Standard Template Library). 벡터, 리스트, 맵, 반복자, 메모리 관리, 복사 비용, 성능 특성, 컨테이너 선택 기준 같은 것들을 다뤘죠. 문서상으로 보면 너무 좋은 일입니다.


'경력자가 신입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스터디를 잡고, 언어 레벨을 끌어올리려 한다.'


듣기만 하면 내부 교육 문화의 모범 사례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음속으로 이 스터디에 부여한 목적은 훨씬 더 과격했습니다.


“너희가 지금부터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돼.”

“비효율적인 코드를 팀에 넘기지 마.”

“대충 짜지 마.”

“실수하지 마.”

“업데이트에 구멍 만들지 마.”

“그 구멍이 회사 전체를 위험하게 하면 안 돼.”

“그건 곧 내 생계를 위험하게 만드는 거랑 같다.”


이건 “교육”의 언어가 아닙니다.

이건 “경고”의 언어입니다.


저는 당시 그걸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진짜 그 스터디를 ‘도움’이라고 믿었습니다.


저의 시선:

“내가 챙겨주고 있는 거야.”


신입의 시선:

“왜 나를 이 기준에 묶어?”

“왜 이렇게 숨을 못 쉬게 하지?”

“이건 내 시간인가, 저 사람의 시간인가?”


월요일 저녁은 ‘의무’가 된다

저는 월요일 저녁 시간을 스터디 시간으로 박아버렸습니다. '월요일 저녁은 우리가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합니다. 업무 끝나고 교육 시간 확보. 그럴 수 있죠.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신입들 중 한 명, 혹은 두 명에게 갑자기 다른 일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야근이 생길 수도 있고, 다른 파트 요청으로 호출될 수도 있고, 집안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냥 너무 피곤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사람은 삶이 있으니까요.


“오늘은 조금 어렵습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어떻게 반응했냐면, 참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는 힘들겠어요”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되면, 저는 분노했습니다. 그 분노는 표면적으로는 이런 말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할 거라면 하지 말자.”

그 말은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런 뜻입니다.


“나만 진심이야?”

“나 혼자 이렇게 필살로 버티고 있는 거야?”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넌 안 해?”

“이렇게 대충대충이면 우리는 같이 못 가.”


저는 그걸 ‘각성의 메시지’라고 착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쓴소리라도 해줘야 얘네가 정신을 차리지.'

‘선배로서 해줘야 할 말’을 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이 말이 이렇게 들렸습니다.

'너랑은 같이 있기 싫어.'

'내가 정한 방식에 안 맞으면 너는 가치 없어.'

'나는 네 상황에 관심 없어. 네가 나를 따라오느냐만 중요해.'


실제로는 저는 그 신입들의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겉으로 드러날 때 '너희 문제는 곧 내 문제다'라는 죄책 전가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되면 관계는 더 이상 ‘함께 배우는 사이’가 아니라 ‘검사자와 피검사자’의 사이가 됩니다.


왜 그때 나는 그걸 몰랐나

당시 저는 제 자신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성실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팀과 회사와 결과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

후배를 챙겨주는 사람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할 거라면 하지 말자”라는 말조차도, 결국은 그들을 위해서 꺼내는 말이라고 믿은 겁니다.


“네가 여기서 대충 살면 안 된다.”

“지금 게을러지면 넌 나중에 버려진다.”

“나는 너한테 그 꼴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이게 제 진심이었습니다.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진심은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진심은, 상대를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살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폭력적이었습니다. 내가 산 방식이, 너도 살아야 하는 방식이라고 단정 짓는 순간 그건 조언이 아니라 통제입니다.


내가 살아남은 방법은 나에게 맞는 답이지, 삶의 정답은 아닙니다. 그걸 몰랐습니다. 그걸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정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불안했고, 생계가 걸려 있었고, 실패가 무서웠고, 아이가 눈에 밟혔습니다. 그 공포심이 내 태도를 선택 가능한 제안이 아니라 절대명령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일방적으로 시작하고, 일방적으로 끝냈다.

결국 이 스터디는 오래 건강하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할 거면 하지 말자”라고 말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참 모순적인 장면입니다.


스터디를 시작한 사람 → 나.

룰을 정한 사람 → 나.

열정을 요구한 사람 → 나.

열정을 기준으로 평가한 사람 → 나.

그리고 그걸 접는 선언을 한 사람 → 나.


즉, 모든 게 내 기준 아래에서 일방적으로 열리고 일방적으로 닫혔습니다. 이 구조에서 신입들이 배운 건 STL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배운 건 '저 사람은 자기 기준을 강요한다'였습니다. 저는 그걸 그 당시에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마음속으로는 이렇게까지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 문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헌신이지만, 실제로는 요구입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너도 내 방식대로 움직여야 한다.'라는 건 더 이상 가르침이 아닙니다. 부담입니다.


이제 와서 보는 그 시절의 나

지금의 제가 그 시절의 저를 떠올리면 솔직히 답답합니다. 그 답답함은 미움이 아니라 안쓰러움에 가깝습니다. 그때의 저는 왜 그렇게까지 날을 세웠을까요? 왜 사람과 결과 사이에 숨 쉴 공간을 하나도 두지 않았을까요? 왜 항상 “100 아니면 0”이었을까요? 왜 타협을 배신으로 해석했을까요?


제가 보기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저는 그때, 너무 두려웠습니다. 집이 무너질까 봐. 일자리를 다시 잃을까 봐. 아이에게 미안해질까 봐. '아빠는 왜 안정적이지 못해?'라는 말을 언젠가 들을까 봐.


그 공포가 제 말을 거칠게 만들었습니다. 그 공포가 제 기준을 절대화시켰습니다. 그 공포가 타인의 속도, 타인의 상황, 타인의 체력을 보는 눈을 가렸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붙잡고 싶었던 게 있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결과였습니다. 그게 이 시기 제 한계였고, 동시에 저를 갉아먹던 독이었습니다.





#강요 #압박 #완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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