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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게임 개발이 천직일까?

by 곽준원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지점

일본에 3개월씩 붙들려 있다 보면 사람이 조금씩 비어갑니다. 하루 15~16시간씩 공장 라인에 있고, 통역을 기다리며 회의를 하고, 밤에 기숙사로 돌아와 보고서를 쓰고.. 그게 한두 달이 아니라 1년 가까이 이어지니까 마음속에서 한 문장이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더는 못 살겠다.'


그전까진 '돈이 필요하니까', '지금은 버텨야 하니까'로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이 더는 안 통하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가족 관계도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택한 건 다시 ‘원래 자리’를 떠올리는 거였습니다.


“다시 게임업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나한테 진짜 맞는 건 그쪽 아니었나?”


저는 그 생각이 꽤 진지해졌습니다. ‘재미’라는 단어와 가까운 일. ‘사람들과 붙어서 만드는’ 일. ‘화면에 내가 만든 게 바로 보이는’ 일. 그게 저를 가장 덜 외롭게 만든 일이었으니까요.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다

돌아가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예전에 같이 일하던 팀장이었어요. 저한테는 “팀장”이라는 말이 단순 직책이 아니라 '아, 이 사람 옆에서는 내가 좀 살아 있었다'라는 기억이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연락을 드렸어요.


“지금 있는 데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혹시 제가 다시 가면 받아주실 수 있어요?”


저는 사실 마음속으로는 거의 확신했어요.

‘그분은 아마 좋아하시겠지.’

‘내가 여기서 개발했던 거, 그분도 알 텐데.’

‘그래도 그때 나름대로 팀에 기여했잖아.’


팀장님도 처음엔 좋다고 하셨어요.

“나는 좋은데, 실장님이랑 TD님이랑 한번 상의해 볼게.”


여기까지는 다 괜찮았죠. 회사라는 게 혼자 결정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며칠 뒤에 온 답변은 완전히 제 예상을 벗어났어요.


“위에서, 너랑 같이 일하기는 좀 어렵겠다고 하시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딱 크레파스로 줄이 하나 그어지듯이 진짜 기분이 이상했어요. 화가 났어요.


“아니 내가 해준 게 얼만데?”

“그땐 아무 말도 없었으면서 이제 와서?”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그 말은 제 자존심을 아주 정확하게 건드렸어요. 제가 예전에 팀 안에서 밀어붙이고, 완벽주의로 굴고, '이렇게 할 거면 하지 말자' 같은 말을 해서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그게 ‘공식 평가’처럼 돌아오니까 인정하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아… 내가 진짜 그렇게 보였구나.”

이게 뒤늦게 오는 피드백이었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평가’

그때 저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가고 싶다고 해서 그냥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제가 만든 이미지가 이미 그 회사 안에 남아 있었고, 그 이미지는 '기술은 좋은데, 같이 일하기는 빡센 사람'이었던 거죠.


그런 사람은 안정적인 팀, 여러 사람과 함께 협업해야 하는 팀, 서로 붙어서 버텨야 하는 팀에서는 리더 입장에서 '지금은 좀 어렵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의 제가 보면 그게 이해가 돼요. 그런데 당시의 저는 그렇게 생각 못 했어요.


“나도 성장했는데 왜 과거로만 나를 판단해?”

“지금 내 상황은 이해 안 해줘?”

“내가 진짜 돌아가고 싶다는데?”


분노도 있었고, 억울함도 있었고, 동시에 아주 깊은 허무함도 있었어요.


“아.. 게임업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천직이라는 데가 지금의 나를 안 받아주네?”


이게 참 이상한 감정이었습니다. 마치 고향이라고 생각한 마을에 갔는데 '너 그때 여기 사람들 힘들게 해서, 지금은 좀 아니야' 하고 문을 닫아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때 저는 한 가지를 아주 또렷하게 배웠어요. ‘내가 좋아하는 업’과 ‘그 업계가 지금의 나를 필요로 하는가’는 다른 문제구나.


포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래, 그럼 난 이 업계 안 갈래요' 하고 그만둔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는 안 되더라고요.

게임업에 대한 열망이 생각보다 더 단단했어요. 그래서 저는 생각을 바꿨어요.


“그 회사가 안 되면 다른 회사로 가야지.”

“어딘가에는 나를 써줄 곳이 있겠지.”

“내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 돌아가려는 거지, 실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


이건 약간 동아줄을 아무 데나 하나씩 던지는 심정이었어요. 돈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내가 견딜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게 훨씬 중요해졌거든요. 머신비전 회사에서의 1년을 지나고 나니까 '연봉만 높으면 된다'가 더는 통하지 않았어요. 돈은 필요한데, 그 돈이 나를 부수는 구조라면 갈 수 없다는 걸 직접 겪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다니던 회사에 솔직하게 말을 했어요.


“일본 출장 너무 힘듭니다.”

“이 패턴을 계속할 자신이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 물량만 소화하면, 다음부터는 이렇게 장기 출장은 없을 거예요.”


이런 말, 회사 다녀보신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없을 거예요'는 '아마도요'와 거의 같은 말입니다. 경영 환경이 바뀌거나, 갑자기 또 일본에서 라인이 생기거나, ‘이번만’이 ‘다음에도’가 되는 건 순식간이에요. 저도 그걸 알았어요.


“100%”라는 말을 저는 원래 믿지 않는 사람이에요. 개발자니까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코드에서도 100%라는 건 없거든요. 늘 예외가 있고, 늘 변경 여지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회사 말을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 이거 또 길어질 수도 있겠다.”

“그럼 나는 또 가족과 떨어져야겠지.”

“그러면 또 우울해지겠지.”


그러니까 이 회사와의 관계는 이미 ‘언제든 떠날 준비된 상태’가 된 거예요. 마음이 떠나 있다고 해야 하나요.


다시 들려온 반가운 소식

그런 와중에 예전 팀장님이 또 연락을 주셨어요. 이번에는 '우리 말고, 내가 있는 새로운 회사' 이야기를 해주신 거예요.


“지금 모바일 게임 하나 만들고 있어요.”

“C++ 아니고, 유니티로 하고 있어요.”

“C#이에요.”

“액션 RPG 쪽이고, 손맛 괜찮아요.”


이 말 들었을 때, 진짜 심장이 탁 하고 반응했어요.

“아, 나 이거하고 싶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다.”

“이건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다.”


그동안은 '돈을 벌어야 한다'가 가장 위에 있었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만큼은 '아, 내가 이걸 좋아하지'라는 기억이 다시 살아났어요. 게다가 C#…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저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걸 크게 두려워하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게임이라는 도메인이 같으면 언어나 엔진은 결국 도구니까요. 무엇보다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이 이제 막 강하게 올라오고 있는 시기였으니 ‘이쪽으로 넘어가 두는 게 앞으로도 낫겠다’라는 계산도 있었어요.


TO는 없지만, ‘기다릴 수 있는 자리’

물론 바로 자리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지금은 인원이 다 찼어요.”

“근데 곧 사람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때 다시 얘기하죠.”


과거의 저였다면 여기서 조급해졌을지도 몰라요.

“그럼 내가 다른 데도 알아봐야 하나?”

“왜 바로 안 받아주지?”

“내가 누군데?”


이렇게 갔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의 1년이 저를 좀 바꿔놓은 게 있었어요. 내가 아무리 원해도, 지금 당장 갈 수 없는 자리라는 게 있다.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내가 좋으니까 나를 뽑아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오히려 안심했어요.

'아, 적어도 여기서는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타이밍 때문에 못 받는 거구나.'

이건 완전히 다른 말이거든요.


“너는 우리랑 일하기 힘든 스타일이야” 이거랑 “지금은 자리가 없어” 이건 다릅니다. 후자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조금 여유를 갖고 게임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C#도 다시 들춰보고, 유니티 구조도 찾아보고, 모바일 액션 RPG에서 필요한 구조가 뭔지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고요.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여기서 지난번과 가장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어요. 이제 저는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이직은 곧 '내 커리어의 방향'이었어요.


“내가 이게 좋으니까 이쪽으로 가야지.”

“이게 나중에 더 도움이 되겠지.”

“이 회사는 지금 별로야.”


이렇게 혼자 판단하고 혼자 옮겼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었어요. 아내가 있었고, 아이가 있었고, 우리가 이직을 하면 이사를 해야 했고, 제가 직장을 바꾸면 아내의 하루도 바뀌었거든요.


무엇보다, 아내가 제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다 봤어요. 일본에서 전화해서 목소리 가라앉아 있는 것도 봤고, 퇴근 시간 없이 일하는 것도 봤고, 3개월 만에 집에 와서도 어색한 아빠 역할을 하는 것도 봤고, 저축은 늘어나는데 표정은 더 굳어져 있는 것도 봤어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먼저 아내에게 말을 꺼냈어요.

“모바일 게임 만드는 데서 자리 생기면, 그쪽으로 옮길까 생각 중이야.”

“근데 급여는 지금보다 조금 줄어들 수도 있어.”


보통 여기서 반대가 나오잖아요.

“지금도 빠듯한데 왜 줄어드는 데로 가?”

“여행도 못 가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그냥 여기 다녀.”


그런데 아내의 대답은 너무 단순했어요.

“응. 그렇게 해. 당신 지금 거 너무 힘들잖아. 외국 자주 나가면 나도 너무 힘들어.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 말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울컥했어요. ‘아, 이 사람은 내가 돈 더 벌어오는 것보다 내가 사람답게 사는 걸 더 중요하게 보는구나.’ 이게 그때 제일 고마웠어요. 내가 지금 있는 줄의 끝이 아니라, 다시 돌아가고 싶은 줄로 갈 수 있게 옆에서 잡아줘서.


게임업이 ‘천직’이냐고 묻는다면

이쯤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봤어요.

“그럼 게임업이 내 천직이야?”


대답은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았어요.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나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과 일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팀 단위로 '이거 재밌다' 하면서 만드는 문화를 좋아한다. 나는 유저 반응을 보면서 바로바로 개선하는 걸 좋아한다. 이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내가 예전에 남긴 태도는 누군가에게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좋아하는 업계라고 해서 언제든 나를 받아주는 건 아니다. 내가 이 업계를 좋아하는 만큼, 이 업계도 내가 일하기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제 대답은 조금 더 길어요.


“게임업은 내가 가장 덜 외로운 업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절로 맞는 업은 아니다. 내가 맞춰야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업이다.”


어쩌면 이게 진짜 천직일 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그냥 되는 일이 아니라, ‘관계’처럼 계속 맞춰가야 하는 일. 예전에는 게임업을 “내 길”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게임업을 '내가 계속 배워야 들어갈 수 있는 집단'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내가 팀 플레이를 잘해야, 팀도 나를 다시 불러주는 거니까요.



#게임개발 #천직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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