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괜찮아 보이던 시기
그때 제 삶은 바닥을 치던 시기하고는 좀 달랐습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의 대화가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고, 회사에서는 “어려운 거 있으면 저한테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신뢰도 쌓였고, 소울 메이트와의 대화도 있어서 머릿속에 있던 당위적 사고를 하나씩 해체해 가고 있었거든요.
“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수 있지.”
“내가 옳다고 해서 남이 틀린 건 아니지.”
“정의는 여러 얼굴을 가질 수 있지.”
이런 걸 이제 막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그러니까 제 입장에서는 '어휴 이제 좀 사람답게 돼가나 보다' 싶은 구간이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한쪽을 바로잡는 순간 다른 쪽에서 또 문제가 터집니다. 이때는 회사 쪽이었어요.
나도 한 번 주도해서 만들어보고 싶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회사의 구조를 계속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커졌어요. '이렇게 맨날 남이 한 거 뒤에서 따라만 가면 내가 진짜 만들고 싶은 게임은 언제 만들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개발자가 한 번쯤 하는 생각일 거예요.
'내 컨셉으로, 내가 믿는 구조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게임을 한 번이라도 끝까지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 저도 그 시점에 그 욕구가 꽤 컸습니다. 그래서 생각만 하고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제안서를 하나 썼어요.
그 시점 모바일 시장이 어떤 상태였는지, 어떤 장르가 먹힐지, 우리가 가진 인력으로 어느 정도 사이즈까지 가능한지, 핵심 게임 루프는 뭔지, 지금 다시 보면 조악한 문서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때는 진심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남이 던져준 사양이 아니라, 내가 먼저 방향을 던져보고 싶다.'
이 느낌이 강했거든요. 문서를 공식적으로 사업부에 올린 건 아니었지만 사람이란 게 그렇잖아요. 한 번 만든 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한 번 보여주면 그게 '만약'이라는 단어를 불러옵니다.
“만약 이거 진짜 진행되면 누구랑 할 거예요?”
이 질문이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회식자리, 그때의 질문
그날은 비교적 편한 자리였어요. 서로 같이 일해봤던 사람들이었고, '이 사람은 일 잘하지'라고 서로 인정하는 사이들이 모여 있었어요. 술이 한두 잔 들어가고, 회사 얘기가 좀 풀리고, “PC에서 모바일로 이렇게 가는 게 맞냐”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와중에 누군가가 제게 물었습니다.
“형, 그때 그 제안서 있잖아요. 그거 진짜 사업부에서 OK 하면 누구랑 하고 싶어요?”
이 질문의 뉘앙스를 저는 이렇게 받아들였어요.
“네가 생각하는 핵심 멤버는 누구야?”
“너랑 코드 궁합 맞는 사람은 누구야?”
“너라면 어떤 팀을 만들 거야?”
이건 개발자에게 굉장히 달콤한 질문이에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팀'을 말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습니다.
“클라 쪽은 누구, 기획은 누구.. 나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여기까지 말하는 동안 그 자리에 있던 UI 디자이너 한 분이 눈빛이 조금 반짝이는 걸 저는 봤습니다. 아마 '내 이름도 나오겠지?” 하고 기다렸겠죠. 그런데 저는 그때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제 머릿속에는 'UI는 아직 구조가 덜 잡혀서 누구라고 못 박기 어렵다', '아직 스타일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니까' 이런 식의 기술적 이유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냥 이렇게 말해버렸죠.
“나머지는 아직 모르겠어.”
말은 짧았고, 상대의 기대는 컸고, 술자리는 부드러웠고, 그래서 더 크게 박혔습니다.
내가 한 말의 의미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었다
제가 그 자리에서 말한 건 제 입장에서는 그저 '아직 다 생각은 안 해봤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들릴 수 있습니다.
“너 말고.”
“너는 아니야.”
“너는 내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목록에 없어.”
“너는 1픽이 아니고, 후보도 아니야.”
특히 그 자리에 있었고, 평소에 나와 말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내 일하는 스타일도 알고, '함께 일하면 깔끔하게 처리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자기도 불릴 거라고 기대했을 겁니다.
기대가 큰 상태에서는 사실이 칼처럼 들어갑니다. 그 한마디 이후로 그 디자이너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먼저 말을 걸던 사람이 말을 안 겁니다. 예전에는 밝게 답하던 사람이 표정을 굳힙니다. 예전에는 편하게 어울리던 사람이 나를 피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소울 메이트에게까지 이렇게 말할 정도였죠.
“나는 그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 싫어”
이 말은 사실상 선언입니다.
“지금부터 나는 그 사람과 거리를 둘 겁니다.”
“내가 느낀 상처는 그냥 넘어갈 만큼 작지 않습니다.”
그제야 좀 알겠더군요.
“아.. 내가 또 ‘그냥 팩트’로 사람을 베어버렸구나.”
왜 그때 나는 포장을 하지 못했을까
돌아보면 그때 저는 여전히 “솔직한 게 좋은 거 아닌가요?”라는 사고방식이 좀 남아 있었습니다. 누가 더 잘하냐를 숨기지 말자, 실력 있는 사람을 인정하자, 어설픈 사람까지 다 끌어안으면 프로젝트가 망한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를 말하는 게 맞다, 이게 제 논리였어요.
그런데 이 논리는 회의실 안에서는 통할 수 있어도 술자리에서는, 질문한 사람이 진짜 알고 싶은 게 ‘이름’ 일 때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자리였습니다.
게다가 이건 공식적인 PM 인선 회의가 아니었잖아요. 그냥 '만약'으로 이야기하는 자리였잖아요. 그런 자리에서는 정답을 말하는 사람보다 여지를 남겨두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죠.
“일단 이 사람들로 먼저 떠올랐는데, 실제로 진행되면 그때 파트 맞춰서 다시 짜야죠.”
“UI는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달라져서 그때 좀 더 봐야 돼요.”
“지금 이름 못 부른 사람들도 있어요. 생각은 더 해봐야 돼요.”
이렇게 말했으면 그 디자이너는 상처를 덜 받았을 겁니다. 저도 굳이 적을 만들지 않아도 됐고요. 그런데 저는 그때까지도 '틀린 말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드럽게 말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 사건을 겪고 나서 제가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솔직함은 ‘내가 편하자’고 쓰면 폭력이 됩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저는 제 마음은 편했습니다.
“나 거짓말 안 했다.”
“나 아부 안 했다.”
“나 입바른 소리 했다.”
그런데 저는 그날 그 말이 다음날에도 그 사람을 따라다닐 거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에게 제 얘기를 했을 테고 “그 사람이 나랑은 같이 일하기 싫대”라고 말했을 테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또다시 저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을 겁니다. 이게 사내 정치로 번지는 방식이거든요. 정치는 거창한 게 아닙니다.
“누가 누구를 싫어한다더라”
“누가 누구 프로젝트에서 이름을 안 불렀다더라”
이게 계속 쌓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날 제가 한 말은 저한테는 '솔직함'이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공개적 평가'였고, 그 이후로는 회자되는 말이 된 거죠. 그렇게 되면 이건 사실상 폭력입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것
지금이라면 저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먼저 전체를 한 번 감싸고
“사실 지금은 대략적인 그림만 있는 거고요.”
“진짜 진행되면 지금 있는 사람들부터 우선으로 보죠.”
그리고 이유를 붙이고
“UI는 게임 톤이 더 나와봐야 해서 그때 봐야 돼요.”
“이건 아예 별도의 리소스가 필요할 수도 있고요.”
마지막에 출구를 열어둡니다.
“그때 되면 다 같이 논의하죠.”
“그때도 옆에서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상처 안 받습니다. 저도 거짓말은 안 한 겁니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는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뿐입니다. 그때의 저는 ‘사실’과 ‘타이밍’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맞는 말'과 '해야 할 말'도 구분하지 못했고요.
말은 맞았지만, 사람이 틀어졌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적어두는 이유는 제가 그때 진짜 억울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나는 그냥 물어보니까 대답했을 뿐인데 왜 내가 정치의 대상이 돼?”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하더라고요.
'나는 왜 그 사람이 듣는 자리에서 그 사람이 빠지는 대답을 했을까?'
이게 핵심이었습니다. 말은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계에서는 말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누구 앞에서 했는가 어떤 분위기에서 했는가, 그 말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박힐 것인가, 이걸 생각하지 않은 솔직함은 사실상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겁니다. 그게 바로 폭력의 형태이지 않을까요.